매거진 그의 칼럼

90년대생인 나를 위한 변명

그땐 그랬어

by 도쿄프리 Tokyofree


부모의 결핍은 아이의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과 그 사이 대학에 가 승승장구하는 같은 세대 다른 사람들을 보며 결핍을 느꼈었나 보다. 밥을 굶었어야 했던 결핍, 돈이 부족해 진학을 하지 못했던 결핍, 주어진 것이 달라서 대학에 못 가 가진 바가 벌어졌던 결핍. 그중 손에 닿을 듯 끝내 닿지 않았던 대학에 대한 결핍이 가장 컸으리라. 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엄청난 교육열로 이어진다.


그들께서는 우리에게 공부하기를 종용하셨다. 다른 건 괜찮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대학을 가고 나면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나 보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막상 내게 공부를 꼭 해야만 하는 결핍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 덕분에 밥을 굶지도 않았고, 잠을 잘 때 더위에 찌들거나 추위에 떨지도 않았다.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은 전부 누리며 자랐다. 가끔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결핍을 모르고 자랐다. 감사한 일이다.


그 때문일까.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이 아닌 부모님의 결핍에 의해 공부를 하도록 떠밀어졌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컴퓨터로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동네에 있는 오락실이나 놀이터에서 모이는 또래 애들과 친해지고 다 같이 모여 놀기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걸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님이 원하는 공부를 먼저 완료해야 했다. 그마저도 하루에 놀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학창 시절의 메인 이벤트는 항상 공부였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만큼 부모님께서 노력하셨던 것을 알았기에 나는 거기에 크게 토 달지 않았었다. 하기 싫다고 입으로 매번 투덜대며 어떻게든 공부를 하긴 했다. 하기 싫어서 토라져 있으면 어머니께서 탁상에 같이 앉아 교과서를 같이 읽어주셨다. 시험기간에는 문제집을 사오시고, 내가 그걸 풀어가면 채점해주시며 같이 답안지를 봐주시며 공부했다. 그렇게 지극하셨던 부모님의 정성을 무시하지 못하고 계속 공부했던 것 같다.


내가 공부를 잘하면 대체로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주변 친구들에게 무시받지 않았다. 선생님도 좋게 봐줬다. 내가 정말로 하기 귀찮았던 것을 제외하면 그 시절 내게 공부를 한다는 선택지는 썩 괜찮은 선택지였다.


거기에 운이 좋게도 내게는 공부에 나름 소질도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그렇게 공부하기 시작해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나는 학교 내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마침내 꽤 괜찮은 대학에 성공적으로 입학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굉장히 해피한 스토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내게 공부는 억지로 해야만 하는 하기 싫은 일이었던 것이다.


사회에 나와보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사회에서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참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이며 동의하면서도 마음속 한 켠으로는 생각한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평생 하기 싫은 일만 하다가 가야 하는 건 아닐까?


공부에 대한 결핍, 나아가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등은 어렸을 적 내게는 없던 것이다. 애초에 부족한 것이 없었기에 결핍이라는 것을 몰랐다. 다만 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러다 대학에 턱 하고 들어가고 나니 이젠 나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도 괜찮은 내 대학에 맞는 괜찮은 기업에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내가 남들에 비해 특별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마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비웃을 것이다. 겨우 그깟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게 너의 어려움이냐고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세상에 더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도 많다.


다만 보편적으로 내 또래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이와 비슷하게 내 부모님 세대에도, 할아버지 세대에도, 그리고 내 다음 세대에도 각자 나름의 힘든 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내 또래의 어려움은 이런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다.


내가 느끼지 못한 결핍을 강요받으며 공부했고, 항상 남보다 내가 더 잘하기를 기대받았다. 지금 내 근처 세대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성인이 되면 본인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힘들다고 해서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각자 나름대로 억울한 일들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누군가 헤아려주고 토닥여주길 기다리기만 해서는 본인의 인생만 낭비될 뿐이다. 심지어 개인주의가 만연해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재 내 위치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점점 살기 팍팍해져 남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이때, 나라도 나에게 변명을 해주고자 끄적끄적 적어보았다. 나름의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다양한 사람들 모두 힘내시길 바란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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