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억지로 이어온 학교 공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나만의 꿈 같은 게 생겼다.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하며 살고 싶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몰랐다.
하나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무언가를 이뤄내는 데에는 결국 꽤 많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고, ‘눈치’라는 작은 마찰 하나 제거됐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꿈이라는 게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삶’을 어딘가에 품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 고민하는 경험을 제대로 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도, 집도 이런 걸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들 바쁘게 굴러가다 보니, 꿈을 찾는 연습을 할 기회 자체가 없이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그런 고민을 한다.
아니면 취업해서 몇 년 일하고 난 뒤에서야 문득 뒤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오고, 사회에서 3년 넘게 일하는 사이 어느새 10년이 지나 있었다.
이쯤이면 나도 내 꿈이 뭔지 알아야 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참 난감한 일이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한 가지 생각은 조금 선명해졌다.
모두가 거창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 더 위를 바라보며 뛰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큰 목표를 향해 간다.
반대로 현상 유지와 안정이 중요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꾸준히 살아내는 데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둘 다 괜찮다.
사회적 시선만 걷어내면, 오히려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런데 사회는 끊임없이 뒤에서 속삭인다.
“우리는 큰 꿈 가진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해야 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실패자야.”
이 말이 참 무섭다.
이상한 기준 하나 때문에, 꿈 없는 사람이 곧 실패자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회라는 건 다양한 사람이 있어야 굴러간다.
모두가 사장이면 직원은 누가 하고, 모두가 리더면 실무는 누가 하겠는가.
모든 역할에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일하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게 그 사람의 삶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런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바라는 게 작은 사람은 그 바라는 걸 채우는 순간의 충만함을 더 쉽게 느낀다.
행복은 결국 바라는 것과 가진 것의 간극을 좁히는 문제이니까.
어렸을 때는 ‘안분지족’ 같은 말이 노력하기를 포기한 자의 변명처럼 들렸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예전에 쓴 글에서 말했는데,
지금의 나도 결국 그 타협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하다.
나에게 더 맞는 행복의 형태는 무엇일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아마 지금도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인지 모르겠다.
조금 더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