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의 칼럼

사람은 필요한 만큼 약해진다

by 도쿄프리 Tokyofree

개인적인 이유로 기존에 하던 프리랜서 일을 그만둔 지 벌써 5개월째.


이전에도 반년 넘게 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것을 체감하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쉬는 기간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미리 돈을 준비해둔 훌륭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이것저것 계산해서 최대 8개월 정도 쉴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두고 쉬는 중이다. 안락한 부모님의 품에서 살았다면 무기한의 시간 동안 여유롭게 살 수 있었겠으나, 아쉽게도 직접 월세를 내며 근근이 먹고사는 자취생이기에 이런 공백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에 어딜 나가는 일도 약간 조심스러워진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앞으로 다가올 금전적 부담이 걱정된다고 해야 할까. 괜히 나가서 돈 쓰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자. 그렇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데 굳이 나가서 돈을 더 써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사람이 집에만 있다 보면 약해진다고 했던가. 이전에도 매일 출근하며 다가오는 AI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건만 이게 웬걸. 미래를 준비해보고자 일을 그만두니 걱정이 줄어들기는커녕 수입이 끊긴 만큼 걱정이 가중되고 말았다. 게다가 집에만 있다 보면 사람을 덜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일을 할 때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이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 생각이 있으니 그게 바로 '사람은 필요한 만큼 약해지는구나'였다.


사람의 뇌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예전 수렵 생활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뇌는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서 뇌는 항상 에너지를 온존하기 위해 게을러지기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고난을 겪고 있다면 힘들어하는 만큼 그 환경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적응하려 노력한다. 반대로 말하면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이 반복된다면 거기에 맞는 에너지만 사용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뇌의 자연스러운 적응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 당장의 생존 위협이 없는 환경에서 뇌는 더 이상의 노력을 요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분명 세상에는 지금이 고되지 않음에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어지간한 사람은 지금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노력만 하려 애쓰는 뇌를 가지고 산다. 딱 현재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노력하고 그 이상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딱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내자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나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약해진다고 표현하겠다.


이걸 타파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선은 나 자신을 어느 고난에 툭 떨어뜨린다는 선택지가 있겠다. 결국 농땡이도 먹고살 만하니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정말 하루하루 목구멍에 끼니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힘들어진다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하려 들 것이다. 다만 이건 굉장히 극단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해서 한번 포기해버리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다음으로는 평소 만나고 연락하는 주변 사람들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사람은 자신 주변 5명의 평균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의미이다. 주변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로만 채우면 '다들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내 뇌도 나를 그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도록 바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2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주변을 바꿀 사람들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어둠 깊은 곳에 틀어박힌 사람이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주변을 이렇게 바꿔버리면 타인과 현재 자신을 비교하며 더욱 틀어박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방법은 그저 조금씩 행동을 늘려가는 것이다. 평소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만 있었다면 오늘은 집 앞에 산책이라도 10분 정도 나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 지속하면 딱 10분 산책할 정도의 체력은 마련될 것이다. 그럼 그다음에는 산책 시간을 늘린다거나 책을 한 줄이라도 펴보려고 하는 등의 작은 행동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참 좋으나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그다음에 갈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현재의 내가 그런 상황이다. 매일같이 점심즈음 일어나니 해를 보는 시간도 적어지고 삶에 점점 의욕도 떨어지는 것 같아 기상 시간을 의식적으로 앞당기려 노력한다. 문제는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없다 보니 다시 자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회사들의 공고에 지원을 넣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봐도 크게 와닿는 것이 없다. 이건 내가 어떤 길을 걸을지 바로 한 걸음 앞이라도 결정한 방향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산책은 해야지 하며 산책할 의욕과 힘은 내봤는데 막상 가고 싶은 곳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 힘내서 문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가도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적지다. 오늘은 집 앞 카페에 가서 책을 한 챕터 읽어보자, 내일은 AI에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이 있을지 물어보자, 같은 것들. 어쩌면 그렇게 하나씩 목적지를 정해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가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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