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의 칼럼

속일 수 있는 자유

완벽한 정직함의 부재

by 도쿄프리 Tokyofree


누가 내게 ‘사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한때 유행하던 성공학 강의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가르침을 건네겠다던 사람들. 나만 따라 하면 유튜브로 월 100만 원은 금방 벌 수 있다거나, 자동화 블로그로 월 200만 원 벌기, 스마트스토어·쿠팡 따라잡기 같은 문구가 넘쳐났다.


그 강의들이 유독 사기처럼 느껴졌던 건 단지 허황돼서가 아니다.

강사들은 자신이 이만큼이나 성공했다며 진실인지 불분명한 지표를 내세웠고, 그럴듯한 말과 사례로 사람을 설득했다. 하지만 막상 핵심은 늘 흐릿했다. “결국은 실행이 중요하다”, “노력하면 된다” 같은 문장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남아 있었다. 결국 여러 강사들의 거짓 이력이 실제로 들통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산업은 사기에 가까운 형태로 기억됐다.


여기서 사기의 특징을 뽑아본다면 이렇다. 거짓말 그 자체라기보다 '왜곡'에 가깝다. 상대가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비틀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남는 건 불신이다. 한 번 속은 사람은 다음에는 더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기를 떠올릴 때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건 '거짓말을 했느냐'만이 아니다. 더 자주 벌어지는 건 사실의 일부만 말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꺼내고 불리한 정보는 덮고 싶어 한다. 어떤 거래에서든 우리는 상대의 ‘속내’를 찾으려 애쓰지만, 그 속내는 대부분 선택적으로 편집된 형태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로 옮겨온다.

세상에 완전히 솔직한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회는 그 사실을 전제로 굴러간다.


어떤 거래를 생각해보자.

파는 사람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말할 수 있는 것 중 일부를 숨긴다.

사는 사람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불편한 징후를 일부러 못 본 척한다.

이해관계가 성립하면, 서로는 ‘적당히’ 넘어간다. 우리는 그걸 사기라고 부르기보다 세상 물정이라고 부르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 적당히의 범위다.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포장과 상대의 판단을 망가뜨리는 기만은 다르다. 전자는 사회가 굴러가기 위한 현실적인 불완전함에 가깝고, 후자는 상대를 속여 돈을 빼앗는 행위다. 둘은 종종 같은 언어로 설명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속일 자유’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건 "속여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완벽한 정직함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가 서로의 포장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에 가깝다. 순진한 이상주의를 버리고 trade-off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성숙해진다는 건 완벽을 포기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포기가 무뎌짐이 되지 않으려면 한 가지는 분명해야 한다.

‘적당히 괜찮은’ 현실과 타협하되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


우리는 욕심 때문에 100% 솔직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는 어느 정도의 '포장'을 용인하며 굴러간다.

속일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그럴수록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시민 의식.

그리고 해쳤을 때 책임을 지게 만드는 사회적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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