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지 않는 건 소재가 없어서가 아닐까?"
'매주 글 한 편씩은 써서 브런치에 올려야지.' 그렇게 다짐한 게 대체 몇 번인지 양손의 손가락을 전부 모아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며칠 만에 솜사탕 녹듯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감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변호인처럼 내세웠다. 그럼 마음속의 법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그래, 쓸 말이 떠오르면 쓰겠지 하고.
그러나 그들의 아량도 한계가 다가왔다. 여기서 나는 묘안을 떠올린다. 나의 노션 페이지 속에 잠자고 있는 몇백 개의 메모들을 짝지어 글감을 만들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글감이 샘솟는 분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AI의 도움으로 혼자 사용할만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감은 어림잡아 13만 개. 그중 500개 정도를 AI에게 선별해달라 요청했다. 이제는 글감이 없다는 핑계마저 댈 수 없게 되었다. 정말 써야 할 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깜빡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한 글자도 나아갈 수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작은 개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원인을 분석했다. 처음에는 글감만 있으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생각들을 엮어 글감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다른 핑계를 찾고 있다. 이런, 그냥 내가 게을렀기 때문인가.
"근데 지금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이 글을 한 개도 적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건 정말 써야 한다고 몸이 달아오를 주제가 떠오른 날에는 어김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들겼다. 그때와 13만 개의 글감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 대해 깊게 생각하던 중 최근에 받고 있는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렇게 무턱대고 써 내려간 글을 좋게 봐준 분들이 있는 덕분에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명찰을 달고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 느끼기에 아직 한참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기에, 자주 가는 책방을 통해 에세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수업에서 배운 바로 에세이란 작가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나며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라는 점을 배웠다.
그래, 경험. 글이라는건 누군가 주제를 '턱'하고 던져준다고 해서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안에 그 주제와 관련된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이 남아있어야 비로소 글이라는 형태로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13만 개의 글감을 만들어 낼 때에는 그 점을 간과했다. 내 노션 속 메모들에는 아이디어는 있었을지언정, 내 지문이 묻어나는 경험은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글감에 목말라 있는 나는 항상 머릿속에서 쓸만한 내용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머릿속 풀장을 아무리 헤집어봐도 쓸만한 글감이라는 보석은 찾아내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집 안에 박혀 찾을 수 있는 글감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경험을 쌓는 것. 지루한 일상이라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런 '경험의 축적'들이 글쓰기에는 필요했던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의 전환이 된 뒤로는 조급했던 마음을 달래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경험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하루의 마지막.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그날 하루를 돌아봤을 때 '오늘은 그래도 이런게 새로웠지' 라며 돌아보는 나날을 쌓아가다 보면 나도 마음속에 글감이 메마르지 않은 분수를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