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vs 잘하는 것
-> 내 선택은 잘하는 것
굉장히 오래 고민해왔던 문제인데, 단순한 생각 하나로 풀렸다. 내가 23년도 초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한창 자기개발서 등을 읽으며 뽕에 차있을 때, 앞으로는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며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 생활을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 나 자신을 갉아먹히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그때 당시의 내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없듯이, 회사원들 중 회사생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겠지만 말이다.
그때 자기개발서를 손에 집히는 대로 읽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시도해보려 노력했다'는 표현을 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해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 유일한 성과였을거다.
개발자랍시고 어플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은 아이디어의 부재로 흐지부지 되었다. 수익 블로그를 통해 돈을 벌어보고자 했던 시도는 내가 유행의 흐름에 타서 남들에게 어필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깨닫고 포기했다. 정확히는 안쪽에 내용물도 없는 주제에 마치 내게 뭐라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남을 속이는 글을 쓰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즈음에 봤던 일본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대사를 보고 마침내 그런 성공팔이 류의 이야기에서 벗어났던 것 같다.
'코모리랑 거긴 말 자체가 달라. 사투리 같은 거 말고. 자신의 몸으로 뭐든 직접 해보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런거잖아.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거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굴면서 잘난 척만 해. 천박한 사람들의 멍청한 말이 질리더라.'
그럼 이런 것 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차에 친구의 권유로 프리랜서 개발자를 시작해서 2년 정도 일했었다. 그 사이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끝없이 찾아 헤맸지만 결과적으로 발견한 것은 없었다. 하기 싫어하는 것은 늘어나도 정작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찾을 수 없었다.
작년에 AI를 대비하기 위해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구직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다. 이제는 시간도 생겼고, 당분간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구직 활동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찾아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열심히 흘러갔을 뿐 내게 원하던 깨달음이 다가오진 않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 밤늦게 유튜브를 보던 중 부쩍 작은 깨달음이 왔다.
머니그라피 채널의 박혜진 편집자님이 나온 B주류초대석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출연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민음사에서 일하는 두 분과 예술가로 활동하시는 두 분의 이야기였다. '달과 6펜스'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나. '월급 반토막 하고 싶은 일 vs 하기 싫지만 연봉 두 배'의 밸런스 게임이 나왔다. 나는 당연히 예술가 그룹이 전자, 회사원 그룹이 후자를 고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예술가 그룹 두 명이 다 후자를 택한 것이다. 거기서 '김간지'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근데 여러분 조금 잘못 생각하는 게 있는데, 뭐든 하고 싶은 일은 돈과 결부되면 하기 싫은 일로 바뀌어요.'
그리고 후에 예술에 관련된 담론이 이어질 때 래퍼 '허키'님의 한마디에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맸던 내 노력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예술은 그냥 돈 안 벌어도 되거든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바꿔도 결국 남에게 돈을 받고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하기 싫은 일로 바뀐다. 정확히는 남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그걸 싫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재화는 주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대신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돈을 주는 사람은 돈을 받는 사람의 결과물에 참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고 싶었던 일이라 해도 남의 간섭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계속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책임감과 스트레스로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거기에 '좋아하는 것을 일로 바꾼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가 이미 자본주의에 찌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에 돈벌이가 결부되지 않아도 되듯,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돈이 되든 안되든 지속하면 된다. 돈벌이가 결부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잘할 필요도 사라진다. 그저 스스로 즐길 수만 있으면 되는거다. 다른 사람의 인정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수준이 된다. 돈이 되고 안되고, 타인이 알아주고 아니고는 자본주의 적으로 해석하기에 들어온 개념이고, 스스로 즐기는데 있어서는 부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주제로 돌아가보자. 일을 고를 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제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나는 잘하는 것을 골라 벌어먹고살며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삼겠다. 만약 좋아하는 것을 남들에게 공유했을 때 커져서 그게 나의 밥벌이에 일부 들어올 수 있다면 그건 굉장히 운이 좋은 것뿐이다. 그걸 굳이 노력해서 나의 지갑에 편입시키려 노력하지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기준이 명확해졌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려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하는 것을 택했다 해도 그걸 지속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내가 지속하려는데 몸서리치지 않기만 해도 먹고사는 일로써는 충분한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내가 이렇게 몸부림쳐왔던 것의 원인이 보였다. 나는 매일 출퇴근하는 그 틀에 갇힌 생활이 그렇게나 싫었던 것이다. 내게 주체성이라고는 1도 주어지지 않는 그 환경이 나를 옥죄어 오는 듯했다. 스스로 남들보다 더 회사 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은 그런 감정에서 온 반발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않을테니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약한 소리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럼 최종적으로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우선은 시간과 장소, 업무 형태 등의 여러 제약들을 하나씩 지워낼 수 있는 직장이나 일거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 없다면 실력을 기를 수 있는 곳에서 실력을 키운다. 그러다 재택이 가능한 회사를 간다면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운이 좋아 재택형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시간의 제약마저 일부 사라진다. 정말 운이 좋아 내가 썩 괜찮은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면 업무 형태의 제약도 지워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창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제약들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수단을 목적에 끼워 맞추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생기듯, 그때에는 또 다른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제약들을 양쪽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보면 된다.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인가. 여기까지만 와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제는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족적을 돌아보며 깊게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