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일본, 봄과 함께 찾아오는 우리가 잘 모르는 어두운 일면.
처음 동경에 이주해 왔던 것도 바로 이 맘쯤이었다.
벚꽃이 막 꽃 망우리를 터뜨릴락 말락 할 때였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4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3월은 많은 변화와 함께 활동량이 증가하는 시기이다.
대학 진학, 취직, 인사이동 등의 이유로 이사를 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시기이고, 입춘과 동시에 따뜻해진 봄 햇살을 찾아 야외 이벤트, 벚꽃놀이(お花見)등의 이유로 외출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난다.
여기저기 이삿짐센터 트럭들이 보이고, 시부야, 신주쿠, 긴자 등의 시내로 나가면,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의 따뜻함이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활동적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동경의 전철을 타면,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수두룩.
감기일까, 인플루엔자일까, 노로 바이러스 예방책일까.
범인은 바로 꽃가루 알레르기(花粉症)다.
한번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면 완치하지 않는다는 악마와 같은 병.
병원마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약국에는 마스크 판매대가 입구 제일 가까운 곳에 배치된다.
2월 말부터 3월 말에 걸쳐서 공기 중에 대량으로 떠도는 삼나무 꽃가루.
국내의 꽃가루 알레르기 인구는 2000만 명을 뛰어넘어, 5명 중 한 명 꼴이 되었다.
일본의 국민병이라고 불리는 꽃가루 알레르기, 발단은 폐전 후 국내의 산림을 구성하기 위해 농림수산성이 앞장서 삼나무를 심었던 것이 문제였다.
일본에 왔던 첫 해,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한 달은 넘게 감기와 같은 증상과 싸우는 대학 친구들을 보면서,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그랬던 것이, 맙소사.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차, 긴 시간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니, 토종 한국 사람인 내게도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꽃가루는 체내에 축적된다더니, 이 놈이 드디어 왔구나 싶은데, 정말 서글퍼서 눈물이 다 날 지경.
진짜, 그놈의 삼나무를 몽땅 다 뽑아버리면 좋을 것을..
정말 서명운동이라도 벌여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 사회는 정확하게 짜인 시간 안에 움직인다.
버스도 전철도 매일 같은 시간, 정해진 시각표 예정대로 반드시 온다.
그래서 만약 예정대로 전철이 오지 않을 때면, 동경이라는 대도시는 작은 혼란에 휩싸인다.
한 겨울에 대설이라도 오면, 정말이지 난리가 아니다.
3월이 되면, 전철이 제 시각에 오지 않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다.
그것은 바로, 인신사고(人身事故).
8년 전, 통학길에 타고 가던 전철이 갑자기 멈췄을 때, 인신사고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전철에 몸을 던져 자살하거나, 실수로 전철과 접촉해 사람이 부상을 입은 경우의 사고를 인신사고라고 한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찌나 아찔하고 무섭던지.
그 날은 부들부들 떨면서 등교했던 게 기억난다.
일본 생활 9년 차, 이제는 인신사고 정도에는 꿈쩍도 안 한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전철에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철도 관계자에 의하면, 3월은 인신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달이라고 한다.
3월 결산기에 겪는 사회인의 스트레스,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의 좌절, 단 한 곳도 손을 내 밀어주지 않았던 취준생들의 고뇌.
졸업식과, 결산기와 같이, 한 해의 마지막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달이기 때문일까.
4월부터 밝은 한 해가 시작되기를 기대했건만, 상상치 못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 소중한 생명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져 사라져간다.
나는 그간 계속,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나 전철에 투신자살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대로, 정해진 규칙대로, 일본이라는 질서 정연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지키는 일본 사람들.
매일매일 생활하기는 정말로 쾌적하고 편안하지만, 무언가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어릴 적부터 누누이 교육받고 자라온 일본 사람들.
투신자살이라는 길을 택한 그들이 인생의 막을 내리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출근길 열차의 다이아를 뒤흔들고, 1만 명 가까운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 최악의 방법.
오늘 아침에도 나는, 동경 어딘가의 열차가 인신사고로 멈춰있다는 전광판을 바라보면서, 이 따뜻한 동경의 3월에,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엿보게 된 것 같아 발걸음이 무겁다.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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