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 되면, 주방 가득히 진득한 커피 향과 함께 눈을 뜨는 날이 많았다.
커피 중독, 엄마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이 되면, 여유롭게 커피를 내려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도 좋다고.
너무 향긋하고 맛있지 않냐고.
어린 나는 검정콩의 맛이 뭔지 몰랐다.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돼.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유년시절,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지금보다 더 커다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하는 데로 따라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커피는 지금부터 마시면 안 된다.
어른이 되어서 마시는 거다.
라고 당부했지만, 엄마 몰래 커피잔에 남긴 검정 물을 훔쳐 마시곤 했다.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커피뿐만이 아니었다.
맥주, 그 쓰다지 쓴 거품 물이 뭐가 맛있는지.
어른들 혓바닥은 우리와 다른가 봐.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커피가 맛있다고 느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졸음을 쫓기 위해 수험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지만,
그때부터 커피가 맛있다고 느꼈던 건 아니었다.
아마, 일본에서의 타지 생활을 시작했던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유난히 잠이 많았던 내게, 수험시절 엄마는 매일 아침 모닝콜을 해 줬었다.
세상에 어떤 IT기술로도 대신할 수 없는, 엄마표 모닝콜.
일본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내게, 매일 아침 듣는 엄마의 목소리도,
토요일 주말 아침에 들리던 라디오 소리, 커피 향,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그 어떤 것도 사라진, 무(無)의 세계.
가족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까지 좁히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른이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싶다
가 아닌,
어른이 되어야겠다.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라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곤란에 처했을 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기대는 건 어렵다.
아무리 사람이 좋다고 해도, 타인밖에 없는 곳에서는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쓰디쓴 경험도 했고, 아프디 아픈 기억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하지 않았던가.
죽을 것 같이 힘들 던 때가 지나면, 달콤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하는 일, 주변의 눈치 보며,
비싼 단가로 일하는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일어서야 한다는 중압감과 싸워 이겨야 했다.
어릴 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면 엄마가 나를 지켜줬다.
내가 방황할 때, 아빠가 날 바로잡아줬다.
위험 앞에서 맞서야 했고, 싫은 일도 참아야 했다.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몇 번의 고난 뒤에는 반드시 가슴 뜨거운 성취감과 만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 라는 행복감에 더해,
무언가를 해내었다는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쓰디쓴 경험을 한 후에 맛보는 행복의 달콤함을 안다.
이 맛을 안다는 것은, 즉, 우리가 어른이라는 게 아닐까.
어릴 적, 커피는 그저 쓰다 쓴 검정 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씁쓸한 맛 뒤에 따르는 향긋함과 달콤함을, 어른들은 안다.
인생을 논하기에는 아직 살아간 날들이 많지 않지만,
커피 맛을 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왠지 어른이 되어간다고 실감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커피는 인생의 쓴맛들을 넘어선 어른들에게 내린 선물이다.
커피는 어른이 되어서 먹는 거다 라고 엄마가 했던 말들은, 어쩌면.
지금은, 내가 너를 쓰디쓴 사회로부터 보호해 줄 터이니, 안심하고 살아가렴.
그리고 어른이 되면 그때는 너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고,
그에 대한 선물로 커피 한잔의 시간을 즐기렴.
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머그컵 가득 담긴 커피 한잔과 함께,
엄마의 모닝커피 향을 떠올리는 일요일 저녁.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경영&IT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고, 멘토링 목적의 희망 포스팅을 위주로 글을 올립니다.
소통위주의 블로그.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요즘은 한일 커플 포스팅이 많습니다.
리얼타임으로 일상 사진을 제일 먼저 올리는 인스타그램.
한국어/일본어로 포스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