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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효니 Jul 31. 2018

멀고, 험난, 그래도 좋아.  모로코로 가는 길.


Tokyo, Japan

Dubai, UAE

Casablanca, Morocco


40L짜리 배낭을 사이좋게 짊어지고, 우리의 네 번째 신혼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갈 것인지, 배낭여행을 짊어지고 갈 것인지 정말 많이도 고민했다. 사전에 정보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일찌감치 친구에게 배낭을 빌렸다. 그러나 모로코가 어떤 나라인지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은 남편은, 내가 혼자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 거리기만 했다. 여러 번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까, 이젠 이 사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안다. 말만으로는 모른다, 이럴 땐 영상을 보여주는 게 빠르다. 모로코가 등장하는 영상을 보고 난 뒤에서야 남편은, 배낭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1주일 전, 서둘러 1만 엔 정도 하는 배낭을 구입했다.



처음 타 보는 에미레이트 항공, 하늘 위의 특급 호텔이라는 별명이 달렸다는 초대형 여객기. 이번 비행은 이코노미 클래스로 가게 되었지만, 슬쩍 보이던 2층의 호화스러움이란.. 그 자리에서 우리의 버킷리스트에 추가가 확정되었다.

이렇게 긴 비행을 경험한 건 사실상 처음일지도 모른다. 도쿄에서 두바이, 두바이에서 모로코까지 이동시간만 20시간. 이런 여행을 경험하는 것도, 젊으니까 가능한 특권이겠지.


여행은 항상 비행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동 항공사는, 모든 것이 신선 그 자체였다. 모래 언덕을 넘는 사막의 바람을 상징한다는 하얀 천 장식의 승무원 유니폼도, 어쩜 그렇게 예뻐 보이던지. 사진 한 장 남겼으면 좋았을 것을, 비행 중 조금이라도 자느라 바빠서 한 장도 사진이 남지 않은 게 조금 아쉽다.



중동 항공사답게, 당연히 기내식도 할랄 푸드였다. 처음 먹어보는 할랄 푸드, 그것도 기내식으로. 남편은 기내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숟갈 뜨다가 말았지만, 나는 꽤 맛있어서 깨끗하게 잘 먹었다.


두바이에 도착한 건 새벽이었다. 기념품 가게 하나 빼고는 볼 곳도 별로 없었던 공항. 4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긴 비행 때문에 지쳤기에,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다. 다행히도, 긴 의자를 발견했고, 그대로 뻗었다. 새벽 4시, 공항 내에 무슬림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알림 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이국적인 소리다. 앞으로 열흘 간은 매일매일 듣는 익숙한 소리가 되겠지.



하늘 위에서 구경하는 사막의 풍경. 하늘 여행은 이래서 창가 쪽이 좋다. 조금 더 잠을 자야 할 텐데, 마음이 설레어서 여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도착하기 1시간 전,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가이드 북을 가져가길 정말 잘했지. 영어에 더해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등장했다. 영어밖에 못하는 우리, 모로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Mohammed V International Airport

Marrakech


무하메드 5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말 한마디 주고받을 것도 없이 금세 끝났다. 입국 신고서 하나로 별문제 없이 통과되나 보다. 출국 전 환전하지 못했던 엔화↔모로코 DH 환전은, 입국 후 바로 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유로로 바꿔 올 필요가 있지 않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아프리카 대륙, 이 나라가 안전한지 어떤지 불안함으로 가득해 잔뜩 긴장했던 나. 일단, 우리의 첫 번째 숙소가 있는 마라케시로 이동해야 한다. 숙소에 도착해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


이동은 ONCF라는 모로코의 국철을 이용한다. 공항에서 카사블랑카 시내로 이동하는 전철은 운행수가 많지만, 마라케시까지 가려면 운행 수도 적고, 이동시간도 길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미리 티켓을 예약할 수 없었기에, 혹시라도 티켓이 매진되지 않을까 하고 조마조마했다.


긴 줄, 나는 여전히 긴장 때문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그때였다. 현지인인 듯한 할머니 두 분께서, 갑자기 긴 줄 옆으로 새치기를 하고 들어왔다. 와.. 그것도 우리 바로 앞에서. 난감했다. 그런데, 남편이 할머니들께 사뿐하게 먼저 사시라고 양보를 하더라. 신경질이 확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반대로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풀렸다. 아, 아무리 여기가 외국이라 하더라도, 같은 사람인데 조금 상냥하게 대해도 되겠구나. 내가 너무 현지인을 경계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무하메드 공항에서 마라케시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린다. 긴 비행이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열차는 예정 시각대로 달렸지만, 구간 구간 뛰어 내려서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을 정도로 느릿느릿했다. 공항철도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는데, 구글 지도가 현재 위치를 잘 잡지 못했다. 프랑스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을 보고 내려야 할 곳에 가깝다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언제 내려야 할지, 아직 환승역에 도착하지 않은 건지 지나친 건지.. 불안한 마음에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 말을 건넸다.


"CASA VOYAGEURS역은 어디서 내리면 되죠?"

물론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마라케시! 카사 보야지!라는 단어를 연발했을 뿐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이것저것 답변을 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말 조차도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가 안 통해..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게 여행의 즐거움의 하나인데,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게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CASA VOYAGEURS야!"

열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자, 우리가 내려야 할 환승역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우리가 내려야 할 역을 알려주신 아주머니께, 유일하게 할 줄 아는 프랑스어. "Merci"라는 한마디로 감사를 표했다.


배워야 할 언어가 정말 많다. 상해 여행 때도, 중국어를 못한다는 게 그렇게 답답하더니.. 이번에는 프랑스어다. 같은 사람인데,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통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이다.



환승역인 카사 보야지 역. 생각보다 큰 역이었지만, 공항에서 마라케시로 향하는 이들밖에 이용하지 않는 걸까? 사람이 별로 없다. 환승시간만 1시간 가깝게 기다린 것 같다. 오늘은 이동만 하다 날이 저물 겠구나.



밤 9시 가까이 되어서야, 마라케시 역에 도착했다. 예정대로였지만, 25시간 연속으로 이동만 했더니, 몸이 너덜너덜, 체력은 밑바닥을 쳤다.

저녁을 먹을 시간을 놓쳤기에, 역 내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저녁밥을 사 가기로 했다. 이 시간에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올 체력도 남지 않은 우리.

그래, 이런 생고생은 청춘이니까 하는 거야. 무거운 몸을 위로해주는 건 오로지 '청춘'이라는 한 단어뿐이었다.


맥도널드에서 산 저녁을 들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 택시에서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지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역에서 나오면, 몇몇 아저씨들이 몰려와서는 자기 차에 타라고 권유를 해댄다. 여기까지야 예상했던 일이기에, No라고 냉정하게 거절을 했다. 그리고는 도로로 나와, 스스로 택시를 잡았다.

"마라케시 구시내로 데려 가줘요"

"좋아, 타."

"미터기 보여줘요."

"마라케시까지는 15DH으로 태워줄게"




이때, 멈췄어야 했다. 미터기를 숨긴 택시에 올라타다니.. 지친 대로 지친 우리도 이성적인 판단력이 떨어졌었나 보다. 수십 곳이 넘게 있는 리야드(숙소)를 택시기사가 알 일도 없었다. 정말 헤매는 건지, 이상한 길로 돌아가는 건지,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를 헤매는 아저씨. 아랍어로 뭐라고 계속하는데, 우리가 알리가 없었다. 우리의 영어 또한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냥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요금.


"50DH"

"아까 15DH이라고 했잖아요"

아뿔싸. 피프틴이 아닌 피프티라는 거다.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후. 바가지 택시 기사에게 50DH를 뜯겨먹고,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야 우리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Welcome!!!"

이 얼마나 따뜻한 말일까. 기나긴 이동 끝에, 우리의 첫 번째 숙소, Riad Dar Yema에 도착했다.

리야드의 오너인 벤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모로코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리야드(숙소)라고 생각했기에, 몇 개월 전부터 열심히 웹 서칭을 해서 고른 숙소였다.




"민트 티 어때?"

공항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통하는 제대로 된 영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모로코 사람들은 민트 티를 즐겨 마시고, 손님에게 민트 티를 내어 주는 건 그들의 최선의 대접이라고 한다. 이 날 처음 마셨던 민트 티의 맛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는..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거다. 타지에 와서 처음으로 받는 환대, 모든 긴장이 추욱 풀리면서, 내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모로코에 왔어 라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꼬르륵..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있었지.

"저녁으로 햄버거를 사 왔는데, 여기서 먹어도 될까요?"

조금 식었지만,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팠던지라..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일심뿐.


"오....노... 맥도널드~~"

벤씨가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모로코에 왔는데, 햄버거라니.."

"아.. 시간이 늦어서, 가게는 다 닫았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다 보니까, 가게들이 다 열었더라고요."

"마라케시는 밤 1시까지는 시끌벅적 해. 아침 점심에는 더우니까, 다들 밤에 나와서 장사를 하거든."

아.. 그런 거였구나. 알았으면 열심히 햄버거 사 오지 않았을 텐데. 하하.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맥도널드 햄버거를 꺼내 먹기 시작하는 여행객으로서, 벤씨의 기억에 남게 되겠지? 이런 것도 다, 여행의 재미이자 추억이지 뭐.




긴 비행과 열차 이동 후에 보내는 최고의 숙박 경험. 기나긴 현실을 뛰어넘어,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따뜻한 샤워 물과 폭신폭신한 침대. 타지에서 겪은 답답함과 쓸쓸함도 다 잊어주는 시간이다.


멀고, 험난했지만, 모로코 오길 잘 했어, 그지?





아직, 지난 글들을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신혼여행을 네 번씩이나 떠난다고? 네 번째 신혼여행, 모로코로 떠나게 된 이유

✔모로코 여행 기간 얼마나 필요할까? 꼭 들러봐야 할 도시 소개

✔모로코 여행 다녀와보니 알겠더라. 정말 가져가길 잘 했던 아이템 소개.



Instagram.

도쿄 생활과, 나이를 거꾸로 먹은 비글 한일 부부 일상,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Brunch.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 후, 컨설팅 펌에서 4년 근무, 현재 일본 미디어 기업에서 기획&마케터로 일합니다. 주말에는 도쿄 내 카페를 돌아다니거나, 긴 휴가 때는 남편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천생 YOLO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일본 취업, 청춘 멘토링, 여행기등 잡식 주의 글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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