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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r 24. 2017

끝없는 길

서울여자 도쿄여자 #37

서울 여자 경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죠. 글도 체력이 바탕이더군요. 겨울내내 체력 저하로 작가님과의 대화도 두절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시작해봅니다. 우리의 대화를.


겨울은 내내 끝없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만보씩 걸었습니다. 막내 어린이집은 저희집에서 버스, 전철, 또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걸립니다. 매일 이 루트를 다니다가 아기가 돌이 지나고 10킬로가 되다보니, 안고 다니기가 힘들어 집에서 1.5킬로 되는 전철역에서 걷기로 했습니다. 그 기나긴 거리를 걷다보니 매일 만보를 걷게 되더군요.


일본은 버스가 별로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용'입니다. 그 신용이란 주관적인 단어는, 시간이란 객관성에 따라 평가됩니다. 시간이 일본인들의 신용의 바탕입니다. 시간 약속에는 절대 늦어선 안됩니다. 데이트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동차를 잘 타지 않고, 버스도 별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확한 시간에 오는 전철을 이용합니다. 출근할 때도 데이트에 갈 때도요. 데이트에 갈 때 좋은 차를 가지고 가는 건 딱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전철을 타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훨신 그 사람의 값어치가 되지요. 버스는 당연합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버스야말로, 일본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교통수단입니다. 일본인들이 유독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유는, 버스 노선 자체가 거의 없다보니,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자전거가 필수 수단입니다.


저는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해서 겨울 내내, 전철역에서 어린이집까지 1.2킬로를, 또 저희집 근처 전철역에서 집까지 1.5킬로를 마냥 걸었습니다. 막내를 안고 버스를 타고 되었지만, 추운 겨울날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10킬로나 되는 막내를 안고 기다리기보다는 무작정 걸어서라도 집으로 향하는 일이 저에게는 훨씬 편했습니다.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고요.


여하튼 겨울내내 걸었습니다. 그 길이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요. 막막한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인생이 이렇게 길구나 싶었습니다. 더불어 그 길의 막다른 곳에 도착하면, 와 보면 또 이렇게나 가깝게 느껴지는구나 싶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작정 걷는 일과도 매우 비슷합니다. 길은 언제든 거기에 있고, 그 길을 나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멈출 수는 없지요. 아이는 하루하루 커가고, 일상은 매일매일 바뀝니다. 정체된 순간 같은 건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동안, 그 머나먼 길 위에서, 그저 나아갈 평평한 길이 거기 있다는 사실에 우선은 감사했습니다. 


저는 사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 먼 일본땅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막막한 순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길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가끔은 꽃 한 송이를 만날 것이고, 바람을 느낄 것이고, 차가운 아기손을 호호 부는 것으로 살아있음의 감동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그대는 그대의 길을, 도쿄에 사는 저는 저의 길을, 우리 그렇게 가다가 가끔은 손도 잡고 가끔은 커피도 마시고 가끔은 울다가 또 웃어봅시다.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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