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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Nov 02. 2016

죽음을 맞는 법

서울여자 도쿄여자 #번외편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저는 지난 한달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네 감히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결혼을 안 한 이모는 가족이 없었고, 다른 이모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저와 동생, 둘이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는 어릴 때 아빠의 장례를 치렀고, 5년 전에 엄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모는 일본에 사셨고,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단단한 인연을 맺어온 관계는 아닙니다. 엄마가 계실 때에는 석달에 한 번 꼴로 같이 식사를 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1년에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 아이를 셋이나 낳았습니다. 이모에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애틋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도 딱히 축하를 받지 못했습니다. 자주 만나지도 않는데 아이를 낳았다고 선뜻 연락하기가 꺼려졌습니다. 


여하튼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모는 백혈병이었고, 병명을 감추고 지내왔다고 합니다. 한달을 남겨둔 시점에서 제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고, 마지막까지 이모를 돌본 건 제 동생이었고, 장례는 제가 주관해서 치렀습니다. 저는 일본이란 타국에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장례까지 치르고 있는 저를 볼 때,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관 속에 누워있는 이모는, 머리가 하얗게 변해있었고, 얼굴이 홀쭉해져 말 그래로 다 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이모는 가수였고,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습니다. 그런 그녀가 할머니가 되어 관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일본에 건너온 이모는, 우리에게 하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성공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머리가 하얗게 샌 상태로 관 속에 누워, 웃음조차 짓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살아있을 때도 잡지 않았던 그녀의 가느다란 팔과 손가락을 쥐고, 저는 제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무겁고 아프고 힘겨웠습니다.


마흔이란 나이, 세 아이. 저는 앞으로 제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긍정적이 되어야할지 염세적이 되어야할지 과연 행복하다는 게 무언지 정말이지 눈꼽만큼도 추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그 해 겨울, 저는 살아있는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자고 제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매일 하느님께 오늘도 살려주셔서 고맙다고 기도했습니다. 그것만이 희망이었습니다. 살아있으니까 어떻게 된 되겠지. 아빠 대신 내가 열심히 살 거야.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제 인생을 최대한 즐겨보기로 약속했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느낌으로 느끼고, 내가 원하는 길을 열심히 가보자. 

그런데 이모의 죽음을 겪고 저는, 도저히 어떻게 살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걸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남은 삶이 얼마인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마냥 무섭고 불안합니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써야할 이유도 써야할 주제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은 왜 태어나는가. 어차피 죽을 거 왜 생을 이어가야 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죽음이란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나도 죽어야할 목숨이며 내 아이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란 공포에 심장이 온통 물에 젖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죽음이란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어떻게 살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마냥 웃을 수도 마냥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 날들입니다. 그렇게 또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일은 기운을 좀 차리고, 숨 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오늘 저녁엔 설렁탕이라도 먹어야겠습니다. 뜨끈뜨근한 국물을 먹으면 솜처럼 젖은 몸이 조금쯤 원기를 회복할 수 있겠지요. 제 마음이 다시 숨 쉴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러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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