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40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말하지 않아도 은근히 좋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늘 말해요. "겨울따위 참 싫다."고요. 추운 거 질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딱히 그게 다는 아니예요. 차가운 겨울날 손을 호호 부는 것도, 차가운 눈이 조용히 내리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그리고 겨울비가 내리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아요. 겨울비가 내리는 날, 피아노 소리를 듣거나, 열정적인 첼로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춥다는 이유로 외출을 미루고 전기장판 아래에 몸을 비비고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자는 그런 여유도 사랑합니다.
저는 사실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네, 늘 그렇게 말해요.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예요. 우디 알렌이 만든 영화들을 좋아하고, 트랜스포머와 같은 블락버스터도 좋아합니다. 다만,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에 쉽게 좋아한다고 말 못하는 것들이 있지요.
초등학교 때, 참 친하게 지내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희집에도 자주 놀러왔어요. 저는 늘 참한 이미지여서 학교에선 그래도 인기가 꽤 있던 편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어요. 왠지 아는 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저는 정말 제 마음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은근히 사랑하지만, 왠지 더 가까이 다가서면 멀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늘 그렇게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듭니다.
영화 <노트북>을 보고 요즘 핫한 배우인 라이언 고슬링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역시나 또 쉽게 유명하고 인기있는 배우를 좋아한다고는 말 못하는, 그런 성격의 사람입니다, 저는. 사실 저는 그가 나온 대부분의 영화를 봤어요. 특히나 엠마 스톤과 커플로 출연했던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는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부자에다 잘생기고 여자를 유혹하는 젊은 남자와 샐러리맨에 배나온데다 운동화 밖에 신을 것이 없는 평생 단 한 여자만 사랑한 중년 남성의 대비는 그 영화의 묘미였어요. 또 마리사 토메이, 줄리안 무어 같은 여자 배우들이 훌륭했습니다. 애널리 팁턴이란 여자 배우가 베이비시터로 나오는데, 그녀가 짝사랑하는 중학생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 독특하면서도 '쿨'했습니다. 어디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 뿐일까요? 실존인물인 연속살해범의 이야기를 담은 <올 굿 에브리씽>도 봤습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몰린 눈과 긴 턱이 유난히 부각되는 영화인데, 그럼에도 재밌게 보고 연쇄살인범의 스토리를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그런 제 마음도 저는 사랑합니다.
저는 아마 앞으로도 겨울따위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며, 라이언 고슬링처럼 성공한 배우는 내 안중에 없다고 얘기할 거예요. 은근하게 좋아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그저 은근하게 제 마음에만 남아있으면 그만입니다.
도쿄여자,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