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39
김경희 작가님
저는 어떻게 하루를 지내냐고요? 저도 작가님처럼 매일 밖으로 나갑니다. 지난 11월 저는 신주쿠 한 켠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사무실이라고 해봤자 저 혼자 쓰는 곳이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쓰는 요즘 유행중인 '셰어 오피스'입니다. 이 셰어 오피스에는 회계사, 변호사, 간호사, 웹 디자이너, 코미디 강사 등이 입주해 있습니다. 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달에 만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료가 무료라는 '특전'까지 있습니다. 한 때 저는 피씨방에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담배 냄새가 좀 신경이 쓰였고, 어두컴컴한 분위기에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카페에서 글을 써보기로 했지요. 카페에선 한 시간쯤 있다보면 커피를 한 잔 더 시켜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자리값은 해야한다는 그런 부담감 말이죠.
그래서 셰어 오피스를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집에서 가깝고, 가격이 비싸지 않으며 조용하고 깔끔한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리하여 입주를 하고, 입주를 하면서 저홀로 작은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냥 개인 사무소 등록을 한 것인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매일 일상은 여자, 엄마, 아내, 그리고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모습이 뒤죽박죽 되어 있습니다.
일어나면, 막내 기저귀를 갈고 딸기를 씻어 막내 손에 쥐어줍니다. 이제 돌이 지난 막내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습니다. 초1 큰애 학교를 보내고, 남편은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저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각자 출근합니다.
셰어 오피스에 들어와 아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합니다. 주로 라디오 통신원 활동을 위해 필요한 원고를 쓰거나, 일본의 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쓰거나 홈페이지며 책들을 번역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인데, 그래도 제가 원하는 일을 해서 입에 풀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매일이 꽤나 행복합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한 일을 하고, 한 두 시간쯤 제 자신을 위한 글을 써봅니다. 작가님이 저에게 소설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소설도 조금 써보고 있습니다. 쓰고 싶은 것들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능력은 언제나 바닥입니다.
그렇게 하루 다섯시간쯤 제 시간을 가진 후, 막내 어린이집에서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 시간을 전철과 버스에 몸을 실어, 둘째 어린이집으로 가서 둘째를 데리고, 큰애 방과후 교실로 갑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우선 수유를 하고 저녁을 차립니다. 장볼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예요. 다행히 집 앞이 편의점이라서 반찬이 부족하거나 밥이 모자를 때는 삼각김밥을 사오거나, 닭튀김을 사오기도 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입이 짧은 편이고 반찬투정을 안해서, 그나마 편하게 식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생선 소금구이, 고기 소금구이에 미역국 또는 계란국을 아이들은 사랑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샐러드나 멸치 볶음 같은 걸 곁들여요. 저희 아이들은 간을 많이 하거나 찜한 요리보다 소금에 구운 것들을 잘 먹습니다. 채소는 늘 생것을 좋아하고요.
저녁 식사 후엔 아이들을 씻기고(일본에선 어쩐 일인지 매일 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재우고 영화를 한 편 보거나 같이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곤 합니다. 책은 주로 전철에서 이동하면서 읽고, 영화는 일주일에 한 번 주로 수요일 오전에 보러 갑니다. 강의가 있는 날은, 셰어 오피스에 출근하는 대신 학교로 출근을 하지요.
비루하지만, 나름대로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말이죠, 영화 <라라랜드>의 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셰어 오피스로 출근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신주쿠는 제법 쌀쌀해 머플러를 꼭 여며야 할 정도였어요. 그 빗속을 라라랜드의 오프닝 곡인 Another day of sun을 들으며 걷는 한국에서 온 마흔의 사람이자 여자, 아내, 엄마, 김민정.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단 사실을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다면.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