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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공주 밍키

너와 나의 소녀시대(3)

by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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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공주 밍키>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마법 프린세스 밍키 모모>는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총 63편,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총 62편이 제작 방영되었다. 참고로 우리는 이 소녀를 ‘밍키’라 부르지만 일본에선 ‘모모’라 불린다. 밍키는 꿈의 나라 페나리나사의 공주이고, 지구인들이 꿈과 희망을 잃게 되면서 페나리나사가 점점 지구에서 멀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지구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페나리나사를 다시 지구 옆으로 데려오기 위해, 일본의 한 동물병원이자 펫숍에 강림했다.


요술봉을 휘둘러 어른의 모습으로 변해, 간호사, 미용사, 탐정 등 다양한 직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모습은 일본 여자 아이들에게 직업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여성이 취업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시대였다. 기노쿠니야 서점이 안경 낀 여성, 못생긴 여성, 키 작은 여성은 취업시험에서 탈락시켜 문제가 되었고, 이후 고용평등법에 관한 논의가 오갔으며 1985년에 남녀고용기회 균등법이 제정되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시기에 여성에게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게 하는 <밍키 모모>는 당대의 앞서간 애니메이션이었다.


<밍키 모모>는 두 가지 스토리의 계보를 따른다. 첫째 일본 전래동화 ‘모모타로’다. 아이가 없이 살아온 고령의 부부가 일을 하러 갔다가 강에서 흘러내려오는 큰 복숭아(모모) 하나를 주워온다. 그 복숭아를 잘랐더니 거기서 남자아이가 나왔고, 복숭아(모모)에서 태어났기에 ‘모모타로’라 이름 붙였다. 모모타로는 성장하여 인간세상에 나타나 장난질을 하는 도깨비들을 물리치기 위해 도깨비들이 사는 섬으로 가는데 도중에 개, 꿩, 원숭이가 그의 좋은 친구가 된다. <밍키 모모>는 아기가 없는 젊은 부부 사이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소녀다. 밍키를 돕기 위해 꿈의 나라에서 함께 온 동물들도 ‘모모타로’에서 따낸 개, 원숭이, 그리고 새 한 마리(병아리로 보인다)이다. 둘째 ‘요술공주 샐리’다. 1996년에 소녀만화잡지 <리본>에 게재된 ‘요술공주 샐리’는 여자아이도 모험을 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화로, 여자아이에게는 항상 부족하게 여겨졌던 파워를 위해 ‘요술’을 부여했다. 이 요술쟁이 소녀들 시리즈는 ‘요술공주 샐리’이후 소녀만화의 주요장르로 정착했고, <밍키 모모>도 연장선상에 있으며, <밍키 모모>가 샐리 이후의 가장 큰 히트작이기도 했다.


<밍키 모모>는 요술봉을 휘둘러 성인이 된다. 설정으로는 18세로 변신하다고 되어 있다. 당시 법정 성인 연령이 스무 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른과 미성년의 중간 지점인 열 여덟 살로 설정했다. 스물 여섯, 서른, 쉰도 아니고, ‘방년18세’이며 변신을 하는 도중에 옷을 모두 벗고 한 바뀌 빙 도는 장면이 포함된다. 만일 서른이나 쉰으로 변신했다면 이런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80년대 애니메이션에도 넓은 의미로 여성혐오, 좁은 의미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공기처럼 존재했다. 초등생 밍키의 변신 장면에 나체 씬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은 당시에도 있었으나, 이 장면으로 인해, <밍키 모모>는 더 굳건한 지지를 받게 된다. 성교육적인 내용과는 다를지라도 당시 어린이들이 성인여성의 벗은 몸(밍키 모모에서는 실루엣)을 공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충격적이면서 아름답다고 각인됨과 동시에 자연스럽다는 느낌까지 준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봐야 할지는 조금 더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밍키 모모>의 여성혐오적인 시점을 먼저 살펴보자. 지구에 사는 모모의 아빠는 유명한 수의사이고 엄마는 가정주부라고 소개되어 있다. 엄마는 펫샵의 실질적인 운영자이며 마피아의 딸이다. 왜 경영자나 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주부로 소개되었는가를 따라가면 가게를 돌보는 여성들의 노동력이 공짜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의사인 아빠는 전국, 전세계를 떠돌고 있으며 그 사이 가게를 보는 일은 당연히 어머니의 일인데, 엄마는 주부로 불린다.


제2화에서 강아지를 데려온 손님은 “암컷인데 성질이 나빠”하며 초반부터 여성혐오적인 대사를 들려준다. 밍키가 안경을 쓴 모델이 되어 수영복을 입고 촬영을 하게 된 스토리에서는 그 모습을 보고 “안경을 써도 안 창피해”라고 안심하는 여성을 보여준 후, 페나리나사의 왕이자 모모의 아빠를 비춘다. 아빠는 “안경을 꺼려하는 지구의 여성들에게 모모가 꿈을 주었다”며 매우 기뻐하고, 아빠의 왕관의 보석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꿈을 준 덕분에 페나리나사는 지구로 다가올 수 있게 된다. 이 안경은 기노쿠니야의 취업 면접 탈락과 연결되며, 안경 쓴 여성을 탈락시킨 기노쿠니야 서점을 비롯한 서비스업종에 대해 밍키를 통해 가벼운 일침을 가한 것이다. 제1화에서 밍키는 출장을 간 아빠 대신 말을 치료하러 오는데, 수의사도 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간호사가 되어 말을 치료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젠더는 필수요소가 아니지만, 이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젠더적 선택을 했다는 의구심은 지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여자아이의 성장과 모험을 위해 성인이 된다는 조건을 붙인 것 자체도 여성혐오를 피할 수 없다. 당시 축구 만화, 야구 만화, 복싱 만화, 바둑, 장기, 골프, 당구 등등 수많은 이른바 전문직 직업들을 소재로 한 만화가 존재했는데, 그 안에서 주인공은 소년 또는 성인 남자다. 그들은 변신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취미 또는 꿈에 몰두한다. <드래곤 볼>에서조차 소년들은 모험을 떠나 전세계를 돌며 드래곤 볼을 모으고 수퍼사이어인이 되지, 요술봉을 부려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모험이 가능한 존재였던 소년과 모험을 위해서는 최소한 요술이 필요한 소녀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요소들은 디즈니에서 지속된다. 소녀들은 왕자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한다. 조금씩 여자 캐릭터들이 강해지기는 하지만 그 옆에는 항상 남자가 존재한다. 하다못해 <겨울왕국>의 엘사는 곁에 남자를 두지 않지만 그 대신 모든 것을 눈이나 얼음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또는 요술에 의해 모험을 떠난 여자다. 디즈니가 마술 또는 요술을 완전히 여성에게서 배제한 애니메이션이 <엔칸토:마법의 세계>다. 온가족이 마법을 가진 가운데 주인공 미라벨만 마술을 부리지 못하는데, 미라벨은 마법이 없어도 혼자 모험을 하고 혼자 문제를 해결한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여자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 것이다. 너도 모험을 떠날 수 있다,라는 인증을 받기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밍키 모모>가 여성혐오적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여자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비록 마법이 필요하지만) 여자아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진취적인 캐릭터이다. 간호사, 미용사, 탐정, 농부, 말 조련사, 기수, 모델, 테니스 선수, 음악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폭주하는 기차를 막으며, 여자 타잔이 되어 밀렵꾼들을 혼내주기도 한다. 밍키의 엄마가 주부로 소개되는 반면, 밍키에게는 세상의 수많은 직업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세대교차를 보여주며, 밍키를 보는 어린 소녀들에게 직업을 가지는 꿈을 꾸게 한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취업을 할 권리가 있다, 취업의 기회를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가던 시절에 어린아이들에게도 성인여성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다만, 여성도 직업의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에, 여자아이가 전문직에 능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는 없었거나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밍키는 자신이 성인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철저히 부모에게 숨겨야 하는 입장이다. 애미메이션의 소년들이 축구, 야구, 권투, 골프 등을 하며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주에 있는 부모는 밍키를 도울 수 없고 지구의 부모는 밍키가 어른이 되는 마법을 부린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게 밍키는 고독 속에 놓이게 된다. 더불어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날 갑자기 성인이 된 밍키는 수영복을 입고 촬영을 하면서도 당연히 그것이 성적대상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 시청자들에게 응어리를 남기게 된다. 딸이 어느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어디를 가도 성적대상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밍키 모모> 제작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소녀가 성인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엄마 아빠의 눈을 피해서 아이가 온갖 모험을 벌이고 다닌다는, 그것도 성인의 모습으로, 이런 스토리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고, <밍키 모모>라는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여자아이도 모험을 시켜주세요. 아니 여자아이가 모험을 떠나면 성적대상화나 성추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공기처럼 여성혐오가 존재하잖아요. 그래도 여자아이도 모험을 해야 해요.

이런 두 관점에서 고민했을 때 <밍키 모모>를 비롯해 여자아이에게 남자를 붙여주거나 요술봉을 쥐어주는 것은 그게서야 안심해서 그 아이를 모험의 숲으로 보낼 수 있다는 하나의 전제가 되었을 것이다. 요술을 부여해도 여성혐오, 요술을 부여하지 않아 모험을 떠나지 못해도 여성혐오가 된다는 것이 여성혐오의 가장 높은 난관이다.


<밍키 모모>의 첫번째 결말은 밍키의 죽음이다. 트럭에 치여 사망하지만 영혼은 남아 우주에 머물렀다가 수의사 가정의 딸로 다시 태어난다. 이 결말이 일본은 물론 이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 밍키는 아기로서 꿈속에서 사람들을 돕고 싸운다. 끝까지 황당하다. 하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밍키 모모의 스토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분홍색 머리를 한 밍키는 추억 한 켠 어딘가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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