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나의 소녀시대(12)
아이들은 가끔 나에게 어린 시절엔 어땠느냐고 묻는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말야, 한국에선 지금처럼 에어콘을 쓰지 않았거든. 그건 은행이나 백화점 같은 데만 있었어. 또 모르지, 어떤 부자들은 에어콘을 켜고 살았겠지. 여하튼 엄마의 집은 농촌 마을이었는데 우리는 선풍기를 틀고 문을 모두 열어 놓고 여름을 났어. 문을 활짝 열어놓으며 대청마루로 청개구리가 뛰어 올라오기도 했거든. 그 청개구리는 크기가 아주 작아.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을 걸. 귀엽고 아름다워, 하지만 엄마는 징그러웠어. 어느날 엄마가 마루에 상을 펴고 방학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종아리부분이 차가운 거야, 그래서 보니까, 거기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바로 엄마 다리 옆에 있는 거 있지. 꺄!!!!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도시에서 크는 너희들은 모를 거야, 나는 의기양양해하며 웃는다. 밤에는 모기에 물리지 않게 모기장을 치고 살았는데 그건 구멍이 뚫린 텐트 같은 거야. 텐트보다도 더 컸던가. 엄마랑 삼촌이랑 엄마의 엄마랑 아빠랑 다 들어가도 될 정도의 크기였다고.
그럼 그 땐 선풍기만 틀고 살았어?
응, 그렇지 선풍기만 틀고 살았지.
아, 그리고 보니 기억이 난다. 그래, 바로 그거, 선풍기 괴담 말이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사람이 죽는다. 나는 일본에 와서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고, 이 얘기를 했다가 비웃음을 산 적도 있다. 그건 한국에만 있는 괴담이래. 뭐라고?
과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지라, 일단 신문 기자만 추려보겠다. 함께 이 선풍기 괴담에 대해 알아보자. 잠에 들지 않으면 선풍기 바람을 얼마든지 쐬도 좋지만, 밤에 잘 때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 전설의 고향보다 더 무섭다.
먼저 선풍기는 1970년대에 한국에서도 제조되어 보급되기 시작한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검색을 하면 선풍기를 쐬고 자다가 사망한 뉴스는 1972년부터 등장한다. 1972년 7월 18일 동아일보에는 ‘희산소 탓, 통풍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선풍기 틀고 자다 절명’이라는 기사가 났다. ‘서울 영등포구 구로 3동 252 전영구 씨(31세)가 좁은 방안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자다가 숨져 있는 것을 밤일을 하고 돌아온 전 씨의 동생 규만 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 했다. 규영 씨는 길이 2미터 너비 1미터 가량의 좁은 가게 골방에서 통풍이 안 되어 더위를 식히려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잠이 들었다가 숨진 것이다.
사인 조사에 나선 경찰은 외상이 전혀 없고 통풍이 안 되는 방에서 선풍기를 오래 틀 경우 산소 희박 현상이 일어나고 선풍기 바람을 오래 쏘이면 체온이 떨어져 혈액 순환 장애를 가져오고 심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는 전문의들의 견해에 따라 선풍기 바람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고 있다”. 검색한 바로는 1972년에는 이 기사가 선풍기 사고의 전부이다.
1972년 7월 19일 조선일보 기사는 더 무시무시하다. 제목은 ‘여름 생활의 안전 관리’다.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사고가 보도 되기도 한다. 통풍이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든 사람이 절명을 했다. (중략) 선풍기를 오래 쐬면 체온이 내려가고 얼굴이 붓는 등의 현상을 경험하는 수가 있다.
특히 가정주부들은 생활 지식으로 명심해둘 필요가 있겠다’
아니 굳이 여기서 왜 가정주부가 나오나? 모두가 알아둬야 하는 지식이 아닌가? 여하튼 선풍기 돌연사는 가족을 지켜야 할 본분을 다하기 위해 주부들이 꼭 알아야 할 지식으로 치부되었다. 1973년부터 비슷한 기사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1973년 7월 22일 ‘선풍기 켜고 자다 이발사 질식 사망’, 7월 26일 조선일보 ‘선풍기 켜고 잠잔 고교생 숨져’, 7월 28일 조선일보 ‘선풍기 켜고 자다 점원 질식 사망’으로 이어진다.
10년 후인 1983년 기사를 보자. 1983년 6월 3일 조선일보 ‘선풍기 켜 놓고 자다 셋방 점원 질식 사망’, 8월 4일 조선일보 ‘체운 내리고 호흡 곤란, 8월 12일 조선일보 ‘선풍기 틀고 자다 젖먹이 질식 숨져’ 등의 기사를 볼 수 있다. 더불어 ‘혜온하강과산소부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고려병원 내과과장 이상종 박사는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되는 선풍기 바람은 공기중의 산소 농도를 떨어뜨려 산소 결핍증을 빚는 한편, 자는 동안에도 사람의 호흡운동을 주도하는 시상하부의 호흡중추를 마비시켜 산소 섭취 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질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이 박사는 또 선풍기 바람으로 받는 영향에는 개인차가 많아 노약자, 심장병, 고혈압, 동맥경화환자, 빈혈 등 만성소모성 질환 환자들은 이미 중추기능이 약화된 상태이기 떄문에” 더 위험하다고 덧붙이다.
아니 선풍기가 이렇게 위험한 것이었나? 그렇다면 제조사들은 이렇게 위험한 제품을 어떻게 팔았던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물건이 어떻게 허가를 받고 시중에 나돌 수 있었을까? 당시 한국 모든 가정에 보급된 것이 선풍기였을 텐데 말이다.
이런 선풍기 돌연질식사는 1997년 기사에도 등장한다. 7월 22일 동아일보는 ‘선풍기 켜고 자던 고교생 질식사’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경찰은 거실에서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TV를 보다 잠들어 질식사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라고만 적혀있다.
이런 기사는 2004년에도 나온다. 연합뉴스 2005년 8월 4일 ‘폭염속 익사, 선풍기 질식사 잇따라’에서도 선풍기로 사망하는 사고에 대해 다뤘다.
하지만 요즘은 선풍기 때문에 질식사 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선풍기 바람이 35도나 되는 찜통더위를 식혀줄 리 없기 때문이다. 에어콘과 선풍기를 동시에 틀고 살아도 저체온증이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70-90년대까지 이어진 선풍기 돌연질식사는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왜 한국에서만 그런 이야기가 돈 걸까?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음모설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1983년에 선풍기 질식사로 처리한 사건이 차후 동반자살로 밝혀졌다는 것이다(동반자살이란 단어를 써도 되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는 피하겠다, 정확하게는 가족 살해 후 자살이 될 것이다).
즉, 사망했는데 선풍기가 켜져 있었다는 이유로 일단 선풍기를 범인으로 모는 것은 조금 무모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과 더불어 그 후 어떤 수사가 이뤄졌는지 기사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선풍기 사인으로 판단된 사람들의 진짜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유가족들은 매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선풍기 앞에서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을까? 이쯤 되면 선풍기 질식사 사인 오인 집단 소송 같은 것이 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선풍기는 여하튼 전설의 고향만큼 무서운 놈이었지, 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돌아가는 프로펠러를 볼 때마다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선풍기에 구멍이 송송 난 그물 커버를 씌웠다. 과연 그 그물 커버가 저 무시무시한 프로펠러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해줄지 어린 나는 확신할 수 없어서, 선풍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선풍기 앞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아아아아”하고 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떨려서 들린다는 것도 그 시절의 추억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집에는 선풍기가 한 대 있다. 여름이면 꺼내와 정성스럽게 닦아 먼지를 털어낸다. 이제 선풍기는 나에게 청소하기 아주 어려운, 그래서 무서운 것이 되었다. 1년에 한 번 딱 선풍기를 청소할 때만 쓰는 십자도라이바(그때는 드라이버가 아니라 도라이바라고 했다)를 꺼내와 나사를 풀고 분리해서 외부틀을 닦고 프로펠러도 닦는다. 무겁고 날카롭다. 목장갑은 필수다. 그렇게 선풍기는 오늘도 우리집 거실에 놓여있다. 아주 얌전하게 말이다. 사실 여름에 열 번도 켜지 않지만, 거기 선풍기가 있으면 여름 같은 느낌이 난다. 수박이 있으면 더 좋고 빙수 같은 것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여름의 분위기는 더위가 아니라 선풍기, 괴담, 시원한 과일이 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