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18)
내가 아주 작은 출판사에서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한국어, 일본어로 번역도 하던 시절에, 나는 재외원폭 피해자 단체를 찾아갔다.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그들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또 어디서 어떻게 원폭 피해를 입었는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지원을 일절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은 무료 의료 지원을 받았지만 한국에 돌아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의료 지원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찾아간 재외원폭 피해자 시민단체는 손진두 재판을 지원해 온, 어마어마한 단체였다.
손진두 씨는 1927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했다. 아버지는 원폭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손진두 씨와 그 가족들은 더이상 일본인이 아니고 외국인 등록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51년에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손진두 씨는 1970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원폭 후유증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은 원폭 피해자는 모두 일본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진두 씨의 등장은 일본 시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 거기 한국출신자들이 있었구나. 그들도 원폭 피해를 입었는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치료를 받으러 밀항까지 해야 했구나.
밀항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받은 손진두 씨는 결핵과 원폭 후유증이 악화되어 형무소에서 풀려났고, 일본 시민단체는 손진두 씨가 일본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재판을 지원했다. 그리고 1978년에 드디어 일본 국내에 거주 하는 사람이라면 불법입국이라고 해도 구제를 하는 것이 원폭 의료법의 국가 보상 취지에 적합하다며 손진두 씨에게 무료 의료를 제공하라는 최고 재판소의 판결이 떨어졌다. 그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을 방문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손진두 씨는 2014년에 후쿠오카에서 숨졌다.
이시카와 이쓰코 시인은 교사로 일하며 손진두 씨 재판을 지원해온 인물이다. 매달 재한 원폭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개인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시집도 꾸준히 발표하는 시인이다. 10대부터 시를 썼고, “잘못된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재한 원폭 피해자를 돕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이시카와 이쓰코 시인은 곧 아흔인데, 작은 체구에 여린 목소리를 가졌지만,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당당하게 일본의 전쟁 책임을 외쳐왔다.
지난해에 발표한 시집 <더 살고 싶었다>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또 원폭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일본에서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시인으로 각인된 인물이자, 일본의 마지막 양심이다.
인천의 창고에서
이시카와 이쓰코
당신의 이름을 지금 막 들었습니다
황기철
지금도 열 넷의 소년인 채
강원도 평강군 출신이라지요
살아 있다면
올해 여든 셋
어느날,
내일 아침 9시에 경찰서로 와
쭈뼛쭈뼛 출두했는데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협박 당하고 맞으며 화물 열차에 올랐습니다
오밤중에 도착한 곳은 인천 시바우라 통신기 제조 공장이었습니다
기철과 사이가 좋았던 안성득은
반세기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기철이보다 두 살 위 열 여섯이었습니다
200명의 아이들이 거기 있었어요
쓰러져도 울어도
죽도에 맞아
새벽부터 심야까지 그저 일만 했다
(중략)
일본군 감독이 창고로 들어갔다
어느새 무서운 비명소리와
아이들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철이는 코피를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기철이는 눈을 뜬 채로 죽었는데
어린 저는 그것도 몰랐습니다.
기철이는 이불에 쌓여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 기철이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향년 14세.
그 이름을 유등에 적어 강 위로 띄워 보냅니다
시집 <더 살고 싶었다>에는 황기철 소년뿐만 아니라 우리조차 모르는, 하지만 이시카와 이쓰코 시인이 한국에서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나 들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남기려는 이시카와 시인의 시는, 낭만이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시는 아픔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쉽게 읽지 못하고 읽다가 여러번 손에서 내려 놓고 쉬게 된다.
여전히 번역이 되지 않은 이시카와 시인의 시들이 언젠가 한국에서도 나오길 기대해 본다. 우리조차 잊었던, 우리조차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국을 찾아가는 이시카와 시인의 시집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