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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연극 <어느 왕비의 죽음>

김민정의 일상다반사(19)

by 김민정

1945년에 발족한 <극단 청년좌>는 일본을 대표하는 극단이다. 다케나카 나오토, 다카하타 아쓰코와 같은 지금은 중년이 된 배우들도 모두 여기 출신이다. 연극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 티브이 방송, 성우까지 폭넓게 활동하는 배우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극단 청년좌>의 제246회 공연은 <어느 왕비의 죽음>이란 작품이었다. 명성황후 살해사건인 을미사변이 이 연극의 소재다.


무대 위로 첼로와 연주자가 등장한다. 무대 중앙에는 창호지로 둘러싸인 방이 하나 있다. 안에는 명성황후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달 밝은 밤, 달은 아름답고, 조금 애처로우며, 나라의 앞날이 그녀의 어깨를 짓누른다. 남자들이 그 방을 둘러싼다. 명성황후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첼로 소리가 웅장해졌다가 금세 조용해진다. 달은 음악을 삼키고, 삶의 무게를 삼키고, 그저 하늘에서 빛을 내고 있을 따름이다.


홋카이도 개척단의 일원이었던 일본의 군인 미우라 고로는 1895년 재조선국 특명 전권 공사로 취임한다. 연극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미우라 고로는 한국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다만 일본이 열강이 되려면 조선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 만주로 나아가 차차 중국 전체를 평정하고 동남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군인인 자신이 공사, 즉 정부 요원으로 조선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떨떠름하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다. 군인인 나를 한국에 보내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노무라 내무대신에게 묻지만 노무라는 “가 보면 알 것이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언질만 한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을 압박해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차지하지만 러시아 등으로부터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하라는 요구를 듣고,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강이던 러시아 등에 반항하기보다 요동반도로 순순히 내놓는다. 그러나 러시아가 조선을 내놓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자꾸 불안해진다. 그래서 군인이던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조선에 파견해, 조선 왕실의 움직임을 제압하려고 한다.


조선 왕실 또한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속국이 되지 않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미우라 고로는 조선에서 오랫동안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던 군사고문 오카모토를 시켜, 흥선대원군에게 쿠데타의 주요인물을 담당하게 해 명성황후를 칠 대의를 마련하고, 육군 중사 구스노세에게 군대를 이끌도록 하고, 일본정부의 소행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한성신보를 내던 아다치 사장을 통해 신문사 직원들을 속칭 ‘낭인’으로 위장해, 을미사변을 위한 준비를 한다.


미우라 고로는 작전의 달인이다. 그가 군대에서 해온 일이라곤 그런 것들뿐이며 그는 아마 명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만 볼 뿐, 거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며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 따위 안중에도 없다.


그리하여 1895년 10월 8일, 이들은 대원군을 앞세워 궁으로 쳐들어가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끝내 명성황후를 살해했다. 작전명 <여우 사냥>. 미우라 고로가 영국에서 귀족들이 여우를 사냥하며 깔깔 웃던 것을 떠올리고 붙인 작전명이다. 연극에서는.


연극에는 명성황후 살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왜 명성황후를 살해했으며,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이었냐는 것이다. 연극 속 명성황후는 “매우 아름답고 총명하고 의지가 강하며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굳이 ‘아름답고’란 단어가 필요한지는 사실 의문이다. 이제는 이런 단어들이 가진 여성혐오적인 부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고 말해야 하는 시대이다.


미우라 고로, 오카모토, 구스노세, 아다치는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신다. 한국의 막걸리를 들이키며 한국을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로, “건배!”를 외친다. 그들이 정말 막걸리를 먹으며 작전을 짰는지 알 수 없지만, 연극에서는 그렇게 그려진다. 이는 아무래도 희곡의 실수가 아닐까 싶다.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는 작전을 짜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니! “건배!”를 하는 그 광기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김이 아니고서는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뜻일까? 흥선대원군을 설득할 때도 일본의 청주를 들고 간다. 아마도 남자들은 그랬을 것이란 상상력이 빚어낸 장면들일 것이다. ‘남성=술’을 동일시 하는 장치도 이젠 조금 자제할 만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술을 나르는 사람이 일본의 시녀와 조선의 궁녀인 것도 내내 마음 한 켠에 작은 응어리를 남긴다.


여성혐오적인 오류들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명성황후는 밝은 달을 보며 “나는 한 사람의 여자로, 평범한 여자로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왕과 세자와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오손도손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때는 조선시대다. 여자는 남자보다 항상 낮은 위치였다. “여자로 살아보고 싶었다”의 말은,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명성황후의 이 대사는 이 가족을 유지하는 기본바탕이다. 하지만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르던 왕비가 정말 여자로 살아보고 싶었을까?


왜 이 연극에선 “나는 그냥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가 아니가 “여자로 살고 싶었다”는 대사를 채용한 걸까?” 아마 수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명성황후였다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나 왕으로 더 훌륭하게 정치를 하며 살고 싶었다고 말했으리라는 것을. 그녀가 왕이었다면, 여우사냥의 여우로 치부되지 않았을 것이다.


연극은 살해를 저지른 일본의 당시 상황과 그 살해자들의 변명을 담았다. 그들은 저돌적이고 교묘하다. “100년 후의 미래를 위해!”라는 말로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한다. 그들이 말하는 100년 후의 미래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조선을 평정하고 중국을 평정하고 동남아, 러시아까지 영토를 넓히고 식민지를 삼은 그런 미래일 것이다. 그것만이 그들이 꿈꾸는 가장 행복한 국가다. 거기엔 그 어떤 개인도 포함되지 않거나 오로지 일본인만이 개인으로 인정받는다.


명성황후의 입장을 다분히 채용한, 일본과 조선의 당시 상황을 알기 쉽게 조명한 연극인데, 안타깝게도 여성혐오적인 요소들은 피해갈 수 없었다. 명성황후의 마지막 대사가 그저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었다는 대사였다면, 가해자인 일본남성들이 굳이 술판에서가 아니라 조금 더 진지하게 작전을 짰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명성황후를 소개하면서 ‘천하의 미녀’와 같은 단어가 없었더라면, 조금더 공감이 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시대는 정말이지, 여성혐오적인 부분에 지금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하는 시기로 넘어왔다.


을미사변은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다.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가해 역사를 모르거나 수정하고 싶을 뿐. 조선식민지 역시도 우리의 역사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일본이 이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다시금 인정할 때, 과거사에 대한 시점도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을미사변을 일본의 역사로 끌어왔다. 그 점만은 높이 살만 하다.


조선왕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여러 번 배웠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일본의 입김은 점점 커지고 고종과 순종은 러시아 대사관에 숨어 지내고, 이후엔 일본의 왕족이나 귀족과 혼인을 하게 되고 그렇게 조용히 그들은 사라졌고 우리 안에서도 사라졌다. 오랜 쇄국정책과 갑작스럽게 찾아온 개화, 동학농민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초들의 투쟁, 아마 일본이 아니었어도 조선왕조가 더이상 지속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비가 이웃나라 공사와 군인들과 신문사 사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130년이 지난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까? 명성황후가 여자였기에 살해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고종과 순종을 살해하는 것보다 민심을 덜 잃는 방법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왕비는 왕의 가족이지만 왕족의 일가가 아니며 전쟁에서 여자들은 보란 듯이 죽음을 당하거나 강간의 대상이 된다. 여성혐오 범죄는 130년전의 왕비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그것도 여성비하적인 ‘여우 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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