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갑에도 엄마가 필요해

김민정의 일상다반사(20)

by 김민정

원로 소설가라도 불러도 좋을 아사다 지로의 신작 소설이 5 년만에 발표되었다.


아사다 지로의 5 년만의 신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고 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마을 역 앞에 서서, 마쓰나가 도오루는 화려하게 물든 산과 둥글게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바람을 한껏 들이 마시고, 도시의 먼지들을 뱉어냈다. 골프장 공기와는 전혀 다른 자연의 맛이 났다.”


아사다 지로의 5 년만의 신작 소설 은 그렇게 시작된다.

야심도 없고 가족도 없는 마쓰나가 도오루는 운 좋게 대기업 사장이 되었다. 마쓰나가가 40 년만에 찾아간 고향 마을에선 마쓰나가 치요라는 여든 여섯의 그의 어머니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사투리를 쓰며 친근하게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동네 사람들, “사장이 되느라 고생을 많이 했구나”라며 어깨를 쓰다듬은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도시로 나온다.


이 소설은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지 않는다. 마쓰나가의 어머니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았고, 아름다운 외모로 사투리는 쓰지 않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1 년 회비 35 만엔(우리돈으로 약 350 만원)을 내는 부유층 신용카드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를 통해 마쓰나가는 가짜 고향으로 내려가 가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온 것이다.


이 1 박 2 일의 가짜 가족여행은 무려 50 만엔(우리돈으로 500 만원)이지만, 고향이 없고 부모도 없는 부유층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 잡았다. 마쓰나가는 이 서비스를 받은 후 곧장 신용카드 회사에 전화를 건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퇴직 후 32 년을 같이 산 아내로부터 황혼이혼을 통보받은 무로타 세이이치.


“당신과 같은 공기를 더이상 마시고 싶지 않아요. 그냥 당신이 싫어요.”


아내는 냉랭했다. 그리고 퇴직금 절반과 저금 절반을 떼고 집을 나선다.

무로타 세이이치도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를 통해 고향을 찾아간다.


‘마쓰나가 치요’에서 ‘무라타 치요’로 성만 바꾼 어머니 역할의 할머니는 이혼한 그를 성심성의껏 위로하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


의사 고가 나쓰오도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의 단골이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치매가 와서 사망한 어머니. 그녀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왔다. 의사가 된 후에도 엄마와 함께 지냈다. 그런 어머니가 치매가 와서 점점 그녀의 기억을 잃어간다. 그런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고가 나쓰오는 엄마를 찾아 있지도 않은 고향을 향한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4 인사를 한다.


“너 나쓰오지? 의사가 되었다며! 잘 왔다. 어머니가 기다리셔.” 고가 나쓰오는 자신이 정말 이 마을에 태어나 자란 사람이 된 것 같다. 엄마라는 ‘고가 치요’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투리가 심해서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왜인지 따뜻하고 더 오래 묵고 싶어진다.


“고향에는 얼굴이 없었다” 작가는 그렇게 적고 있다. 누구나가 고향을 꿈꾼다.

그곳은 보통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고 벼가 자라고 올려다보면 온통 하늘만이 있으며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엄마가 있어서 자신을 위로하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밥상을 내준다. 그런 경험을 위해서라면 50 만엔쯤 덥썩 낼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고향을 소재로 한 당신만을 위한 테마파크가 바로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다. 도시에는 고향의 맛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향에는 무너져내리는 고향을 어떻게든 지켜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치요’ 할머니가 그렇다. 어린 아이는 찾아볼 수 없고 젊은 사람들도 거의 살지 않는 일본의 도호쿠의 어느 마을. 재정상황은 좋지 않고 마을은 언제 사라질 지 모를 위기에 놓여있다.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어떻게든 돈을 벌어 마을을 지탱해보고자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의 배우가 되기로 한다.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의 이름과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대우를 해준다. 사투리를 쓰며 “잘 왔다. 너 어느어느집 아무개가 아니냐. 도시에서 성공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기다리신다”라는 대사를 읊는 것이다.


얼마전 정부가 발표한 2020 년 국세 조사 결과를 보면, 인구 감소, 재정력 약화로 2022 년 과소지역(소멸지역)으로 지정되는 기초지자체는 전체 기초지자체의 51.5%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과소지역이란 1980 년 이후 인구가 30%이상 감소한 곳으로 세수가 부족하다보니 인프라 유지가 어려워진 지역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이런 지자체를 위해 올해 5200 억엔의 보조금을 편성했다(마이니치 신문 1 월 19 일 보도). 소설에도 나오지만 이런 과소 지자체를 찾는 이들은 주로 중국과 한국의 관광객들이다. 눈도 즐기고 온천욕도 즐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향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본연극 <어느 왕비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