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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초코의 소설 <징산제>

김민정의 일상다반사(17)

by 김민정

남자가 아이를 낳는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나카 초코의 소설 <징산제>를 소개한다.


2029년 일본, 신형 인플루엔자 만연으로 10대부터 20대 여성 85%가 사망했다. 일본 정부는 심각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해 ‘징산제’를 실시한다. 이 ‘징산제’에 따라 만 18세부터 만 30세의 모든 일본남성에게 성전화 수술이 의무화 되고 출산을 장려 받는다. 성전환 수술을 하면 인공자궁이 생기고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다. 군대에 가듯 출산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된 것이다.


징산제

일본국적을 보유한 만 18세 이상 31세 미만의 남자 모두에게, 최대 24개월간 ‘여자’가 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

2092년 국민투표에 따라 승인되어, 이듬해부터 시행.


징산제 시행을 앞두고, 이에 해당하는 젊은 남자들의 심리는 복잡 다양하다. 겐고는 여자가 되면 가슴도 마음껏 만질 수 있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여성의 나체를 매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나온다(2029년에도 남자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독자는 고개를 끄덕일 게 분명하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 쇼마는 여자가 되기보다 그냥 남자로 살고 싶다. 통일한국에서 온 송 씨는 “라떼는 군대도 갔는데, 군대에 가느니 여자가 되는 게 훨씬 낫지”라며 부추긴다.

징산제 복무를 택하면 월급도 받고 아이를 낳으면 집도 준다기에 쇼마는 여자가 되기로 한다. 복무를 위해 먼저 징산 검사를 받고 의료센터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여자의 몸을 얻게 된다. 그러자 곧 생리가 찾아온다.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피가 난다. 그것도 매일, 매일, 매일 피가 난다. 아아 일본남자들은 나라를 위해 훌륭하게 피를 흘리고 있다!”고 쇼마는 느낀다(생리하는 어느 여성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러나 징산제 나라의 남자들은 그렇게 과장되게 생각한다).


육체가 여자로 변한 후엔 여자로 살기 위한 수양이 그들을 기다린다. <징산교육센터>에 4개월간 입소해 여성의 몸과 출산, 화장, 여성스러운 태도에 대해 배우고, 여자로서의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이 훈련소를 마쳐야만 비로소 산역에 복무할 수 있다.


쇼마는 180센티의 키에 72킬로의 몸무게인 채 여자가 되었다. <징산교육센터>에 모인 남자들 사이에서 그는 추한 쪽에 속한다. 센터 졸업식날 열리는 파티에서 파트너를 만들지 못한 쇼마는 오사카로 부임 받는다. 그리고 정부가 정해준 회사에 다니며, 잡일 담당 로봇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주로 커피를 타고 간단한 계산을 하는 일이다. 회사에 다녀도 안 다녀도 월급이 나오지만, 회사에 다니며 남자를 찾아 아이를 낳으라고 정부는 장려한다. 농사를 짓던 쇼마는 이런 나날이 굴욕적으로 느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자가 흔치 않다 보니 진짜 여성들은 남성들이 무서워 밖에 나다니지 못한다. 산역이 된 남자들이 길거리를 걸어다니면 다른 남자들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본다. 쇼마에겐 “덩치 크고 못생긴 너, 비켜!”라는 말들이 날아든다. 쇼마는 여자가 되어 처음으로, 면전에서 못생겼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남자일 때는 길거리를 걸어가던 면식도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못생겼다고 내뱉은 적은 없었다. 못생겼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몹시 상한다. 그 단어에 이렇게 큰 파괴력이 있다는 것도 쇼마가 여자가 되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한편 재정부에 근무하는 하루토는 정치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그는 나라를 위해 산역 복무를 택했다. 외모가 출중한 그는 정부의 <파트너 소개소>에서 벤처기업 사업가를 소개 받는다. 첫 선 자리에 나온 남자는 하루토에게 거의 명령한다. “당신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저는 당신과 논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은 아름답고 조신한 여자처럼 행동해” 달라는 것이다. 사업가는 하루토를 파티에 데려가 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파트너로 대접하기 보다 성접대원 정도로 취급한다. 하루토는 <파트너 소개소>를 찾아가 다음 상대를 만나,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하루토가 문란하다는 소문이 퍼져버린다. 여자로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을 줄이야!


“하루토는 여자라는 성을 증오한다. 빨리 남자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임신 출산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산역이 끝날 때까지 계속 여자로 살아야 한다. 만일 산역에 복무하는 2년간 아이를 낳지 못하면, 저 남자는 나라를 위해 아이를 낳지 못한 남자라는 패배자 낙인이 찍히고, 평생 남들로부터 무시 받아야 한다”.


다나카 초코가 2092년이라는 미래를 배경으로 삼긴 했지만, 사실상 현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일들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을 뿐이다. 인구 감소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정치가들은 아이를 낳는 일에만 주목할 뿐, 여성의 지위나 직업환경 개선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태어난 아이들을 지키는 일에도 소극적이다. 학대나 방임 등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예산이 부족하니 일손도 달린다.


징산제를 통해 여자로 다시 태어나 2년간 임무를 다하리라 마음 먹은 남자들은,

모두 믿어의심치 않는다. 여자가 된 자신은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소녀들처럼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수술 후 거울을 본 그들은 깜짝 놀란다. 여자가 되는 수술은 성형수술은 아닌 것이다. 체격이나 얼굴형, 체모 등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여자가 된 순간 외모 평가가 따라붙는다. 못생긴 여자로 평가 받으면, 남자를 사귈 수 없게 되어 출산이 어려워지고, 아름다운 여자로 평가 받으면 캣콜링을 피할 수 없고 문란하다는 소문도 들어야 하며, 남자들은 자신을 트로피 와이프 정도로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남자는 훌륭하다.

아이를 낳고 일하는 남자는 더 훌륭하다.

아이를 안 낳고 일만 하는 남자는 남자로서 불완전하다.

아이도 안 낳고 자유만 누리는 남자가 나이가 들어

“세금으로 도와주세요”라니, 말도 안 된다. 비국민적 행위다.”


여자로 바꿔보면 바로 현대 시대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는 5명의 남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남자 주인공으로 바꿔보면 남성들이 조금이나마 여성의 현실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쓴 소설이다. 산역에 복무하지 않으려고 해외로 도피하는 제자를 도와줬다가 다른 남자들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할 뻔한 남자 교사의 이야기는 정부가 만든 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시사한다.


작가 다나카 초코는 1964년생으로 8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전업주부가 되었고, 2011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문학상> 대상을 수상해 등단했다. 저서에 <나를 그냥 둬> <달콤한 과자는 먹지 않습니다>등이 있으며, 2019년 이 <징산제>로 센스 오브 젠더(Sense of Gender)상 대상을 수상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다.


“2013년 당시 오사카 시장이던 하시모토 도오루가 주일미군에게 유흥업소를 활용하도록 하라는 발언을 해 문제가 되었다. 남성의 성충동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듯한 발언에 내 주변 여성 모두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 평소 여성들을 이해한다는 남자들이 그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여자가 된 남자가 성충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써보고 싶었다. 공상과학 소설보다 비현실적인 배경으로 써보면 현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더 확고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마이니치 신문 2021년 12월 28일 인터뷰)

이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 다나카 초코는 의도적으로 2092년이란 미래를 설정해, 여성들의 현실을 남성으로 바꿔치기 했다. 남자들은 남자를 더 좋아하며, 남자의 말을 더 잘 듣고, 남자로 입장을 바꿨을 때 가장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남자들이여, 읽고 반성하라,

사회여 이 사회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

정치가들이여 진정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낳는 것보다 키우는 일, 여성의 현실로 눈을 돌려라.

다나카 초코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망이 깃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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