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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보다 좋은 인간이 되거라

김민정의 일상다반사(16)

by 김민정

Einai kalytero anthropo apo ton patera toy.


미드 <This is us>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잭은 이렇다할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자동차를 고쳐주며 근근이 살고 있다. 잭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무관심하고 아내를 하대하며 항상 술에 취해 산다. “너는 뭘 해도 그 정도 수준”이라며 아들을 깔아 뭉갠다. 잭은 우연히 어느 펍에서 노래를 부르던 레베카를 만나게 되고, 오디션을 보러 간다는 레베카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이 짧은 여행 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딸을 곱게 키운 레베카의 아버지는, 직업도 별 볼 일 없고 골프도 치지 못하며 상류사회의 매너에 익숙하지 않은 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레베카는 그런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잭을 택한다. 드라마는 잭과 레베카가 낳은 세 쌍둥이가 서른 여섯이 되는 해부터 시작된다.


섹시한 베이비 시터 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케빈, 섭식장애로 비만 체형이 된 케이트, 세 쌍동이 중 하나가 죽고 잭과 케이트의 아들로 입양된 랜들. 서른 여섯이 된 세 쌍동이는 사회적인 지위도 어느정도 얻기는 했지만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는 현재 시즌 6가 방영 중이며, 일본에서는 시즌 5가 며칠 전 공개되었다. 시즌 5는 마흔이 된 세 쌍동이와 치매를 앓는 레베카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불임인 케이트는 입양을 결심하고, 우연히 상대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된 케빈은 결혼을 준비하고, 아이 셋을 키우며 주 의원을 하고 있는 랜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 피살 사건과 각지에서 벌어지는 ‘Black Lives Matter’를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한다.


잭과 레베카는 훌륭한 부모였지만, 백인 가정에서 홀로 흑인으로 자란 랜들은 성장하면서 겪은 고독과 위화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카운셀링을 받기 시작한다. 곧 아이가 태어나는 케빈은, 자신이 아버지 잭처럼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불안감을 느낀다.

그들의 아버지 잭도 아이가 태어나던 날 가슴을 졸였다. 아기가 잘 태어날까 아내는 괜찮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이 있다.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잭은 병원 안의 예배당을 찾는다. 잭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잭의 아버지는 가정에서는 폭군이었지만, 교회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했다. 도대체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한 것일까? 잭의 소망은 하나뿐이다. 제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아버지보다 나은 부모가 되게 해 주세요.


‘Einai kalytero anthropo apo ton patera toy(be a better man than your father)’는 그리스어로 ‘아버지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라’는 뜻이라고 한다. 종종 미드에 삽입되는 대사이다.

<크리미널 마인드> <프린지>에도 등장한다.

<프린지>는 수사물이자 팬터지물인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이지 않는 사건들을 다룬다.

<엑스 파일>의 스컬리처럼 냉철한 FBI 더넘 수사관과 매드 사이언티스트 비숍 박사, 그 아들 피터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드라마 속에서는 비행기에 탄 평범한 남자가 갑자기 괴수로 변해 모든 승객을 덮치거나, 누군가의 우울이 전달되어 동시에 목숨을 끊거나, 음악과 방정식으로 쇠를 물처럼 흐물거리게 만들어 은행을 털거나, 태어나자마자 키가 크고 수 십 분만에 고령자가 되어 죽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런 범죄에 사용된 다양한 과학 기술은, 젊은 시절 비숍 박사가 연구해온 것들이며, 그 연구를 또다른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물려받아 후속 연구를 통해 이룩한 것으로,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세상을 그렸다. 젊은 시절 비숍 박사는 어린 아이들까지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아이큐 190이 넘는 아들 피터는 아버지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비숍 박사의 아내이자, 피터의 엄마는 어린 피터에게 매일처럼 이야기한다. “아버지보다 좋은 사람이 되거라”하고 말이다, 그것도 그리스어로.


미드 속 “아버지보다 좋은 인간이 되라”는 메시지는 이 시대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극복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길은, 아버지와 정면 대결을 하거나 반항을 하며 집을 뛰쳐나가거나 아버지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보다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지름길이라고 최근 미드들은 풀이한다. 제임스 딘, 리버 피닉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다.


그렇다면 아버지보다 좋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This is us>의 잭에게는 아내를 존경하고, 술을 덜 마시며, 아이들을 깎아내리고 평가하지 않는 인간을 말한다. <프린지>의 피터에겐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하는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 인류의 발전이란 명목으로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자연을 망치는 일은 지구에 멸망을 가져온다.


지나친 성과 욕심을 부리기보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를 돌보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버지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때론 포기를 의미하는데 때로는 일을 포기하는 것, 뛰어난 두뇌를 포기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이나 술을 포기하는 것, 도박을 포기하는 것, 불륜을 저지르지 않는 것, 아이의 성장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아내나 남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 등 쉽지 않은 것들을 포함한다.


‘Einai kalytero anthropo apo ton patera toy(be a better man than your father)’. 나는 아빠 같은 남자를 피해 살아왔다. 잘생긴 남자, 키가 큰 남자, 싸움을 잘하는 남자,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를 잘하는 남자,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많은 남자. 아빠와 비슷한 사람들은 항상 내 연애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일단 나보다 덩치가 큰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그런 남자는 물리적으로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위협을 하지 않는 남자가 나에게는 아빠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은 아빠를 닮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살아왔다. 피는 못 속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는 말처럼 잔인한 말도 없다. 더이상 동생이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인간이 될 기회를 앞으로 더 많이 부여받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은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건강을 챙기고 글을 쓰고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의 내가 되는 것.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올 한 해의 포부다.

코로나가 조금 나아지면 나는 기타를 배우고 작은 카페에서 노래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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