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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신 작 <서푼짜리 오페라>

김민정의 일상다반사(23)

by 김민정

1728년에 <거지 오레파>라는 작품이 있었고, 이 <거지 오페라>를 1928년에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 베르톨르 브레히트가 각색하여 발표한 작품이 <서푼짜리 오페라>이며 이 <서푼짜리 오페라>는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일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서푼짜리 오페라>를 정의신이 각색했다.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티켓을 살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클릭했다. 앞자리는 이미 동이 났지만 표를 구하기 쉽지 않은 정의신 작품의 표를 구했다면 이미 성공이다. 그리고, 역시 정의신은 달랐다. 재미있다.

슬프다. 애석하다. 눈물이 난다. 작지만 희망이 있다. 100년 후의 세계는 어떨까? 그는 항상 연극의 마지막에 그렇게 묻는다. 물론 페미니즘의 시점에서 보면 정의신도 피해갈 수 없는 여성혐오적인 부분은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보자.


때는 1950년대, 즉 패전 후 10년 쯤 지난 후이고, 장소는 오사카이다. 배우들은 모두 오사카 말을 쓴다. 주인공 맥(이쿠타 토마)은 도적단의 두목이다. 이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전쟁 당시 군수공장이었으나 지금은 버려진 군용지에 들어가 고철을 수집하는 것이 일이다. 당시 실제로 오사카에는 공항과 비행기를 만들던 공장이 있었고 거기서 수많은 징용노동자가 일을 했으며(그들 중 대부분은 강제징용 당했을 것이다), 패전 후 일본은 군수공장 터를 고스란히 두었고 거기 남겨진 고철들을 밤이면 밤마다 훔쳐와 파는 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아파치족’, 그들이 대부분도 일본에 남겨진 재일동포들, 일본에 남겨졌고 한때는 일본의 이름을 부여 받고 일본인으로 살았으나 버려지고 일자리도 없는 동포들이었다. 이 아파치족들이 고철을 훔쳐와 살던 이야기는 양석일 작가의 <밤을 걸고>라는 소설에 자세히 적혀 있다. 동포 작가인 김석범 작가 자신이 바로 아파치족으로 활약한 인물이며, 그 이야기를 들은 양석일 작가가 소설로 썼고, 또 그 이야기를 들은 정의신 작가가 <서푼짜리 오페라>의 소재로 삼았다. 여하튼 맥은 이 아파치족의 두목인데, 잘생긴 얼굴과 좋은 수완으로 남녀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는 곧 ‘거지 상회’의 아들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거지 상회’의 아들 폴(웬츠 에이지)은 우연히 댄스홀에서 맥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두 남남은 군수공장이 보이는 강둑에서 아파치족의 환영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린다. 연극에서 남자와 남자의 사랑은 당연하게만 그려지며, 일말의 혐오스러운 표현도 등장하지 않는다. 개그의 소재로 삼지도 않았다. 인간 대 인간으로 그려질 뿐이다. 그러나 폴의 부모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아들이 남자를 사랑해, 남자와 결혼했으며, 그 남자가 아파치족의 우두머리란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아파치족이 재일동포를 호칭하던 시절이었다. 더 정확하게 폴의 부모는 아들이 결혼한 상대가 남자라는 것보다 재일동포란 사실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잠시, ‘거지 상회’에 대해 설명해 두자. 전국에 거지들을 통합한 회사가 거지상회다. 즉 앵벌이 회사다. 거지를 거지스럽게 만들어, 예를 들면 온몸에 붕대를 감아주고, 다리를 못 쓰는 연기를 시키고, 다이어트를 시켜서 길거리에 서게 한 후, 돈을 벌어오게 하고 그 중의 일부를 챙긴다. 1950년대 먹고 살 것이 없고 일자리도 없던 시절 구걸이 유일한 밥벌이이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거지 상회’는 바로 이들을 관리하는 회사다.

‘거지 상회’의 사장이자 폴의 부모는 폴을 말려보지만 말을 듣지 않자, 맥을 어떤 식으로든 잡아 넣으려고 한다. 거지 상회의 회원들을 이용해 맥에 대한 투서를 하게 하고 경찰들은 맥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다.


폴은 맥에게 부모가 경찰서에 수많은 투서를 한 사실을 전하고 부디 마을을 떠나라고 알린다. 맥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제니(후쿠이 쇼이치)를 만나러 간다. 제니는 트랜스젠더로, 술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모두 여장남성들이다. 맥과 한 때 연인 사이였던 제니는 맥에게 전재산을 빼앗겼으며 맥 때문에 성매매도 해야 했다. 제니에게 맥은 일말의 연민과 애정이 남아있는 존재지만, 경찰에 신고하기로 한다. 제니 역을 연기하는 후쿠이 쇼이치는 뮤지컬 극단인 ‘극단 사계’에서 활약하던 배우로 팬클럽도 있으며 팬미팅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는 트랜스젠더 역은 처음 해본다는데, 정의신 작가는 “억지로 여성을 연기하지 말고, 편안하게 연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 연극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가 바로 후쿠이 쇼이치였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억지스럽지 않게 트랜스젠더 역에 임했다.


결국, 맥은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 신세가 된다. 그런 맥을 찾아온 여인이 있으니, 바로 그의 아내라는 루시다. 그는 폴과 결혼하기 전에 경찰서장의 딸인 루시와도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게다가 루시(히라타 아쓰코)의 아버지인 경찰서장도 맥을 사랑한다. 즉 모든 조연들이 다 맥에 홀딱 빠져있는 신세인 것이다. 그래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이 관객들을 배꼽 빠지게 만든다.

맥, 폴, 루시, 제니, 경찰서장 이 오각관계의 승자는 누구일까? 맥은 이 오각관계를 이용해서 유치장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맥을 증오하는 폴의 부모는 결국 그를 사형으로 몰아버린다. 거지 상회 회원들을 동원해 데모를 부추김으로써.


맥은 고철을 훔쳤을 뿐 큰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아니 제니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폴과 루시를 속여 결혼을 두 번이나 했으나 이런 죄는 묻지 않는다. 당시에는 그런 사회였을 것이고 어쩌면 남성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의신 작가에게 이런 것은 장치의 하나일 뿐 큰 문제가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정의신 작가의 한계라면 한계가 아닐까 싶다고 요즘의 나는 생각한다.


맥은 자신의 사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맥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사람을 죽였다. 전쟁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두려운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들었을 때 그와 싸우다가 총이 발사되어 소년은 죽었고 그 소년을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맥의 죽음과 동시에 무대에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발을 절고 팔을 잃은 그들은 갈 길을 잃고 사방을 헤매인다. 하늘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발 밑에서는 지뢰가 난동을 부린다.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으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면 이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할 가능성이 있다. 음식도 제대로 나눠주지 못하면서 일본은 왜 그들을 전쟁터에 보냈을까? 왜 돌아오지 못할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도 만들었을까? 맥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죽인 소년을 떠올린다. 그 소년을 생각하면 교수형은 당연하다.


맥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군수공장에서 고철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일본으로 끌려와 전쟁에 동원되고 군수공장에서 일했던 동포들이 그 고철을 좀 훔치는 일은 큰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나라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는 반문하다.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청년들이 집으로 돌아가 “다녀왔습니다!” 그 한 마디를 외치고 싶었을까. 그리하여 연극 무대에 등장한 맥은 관객을 향해 외친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막이 내린다.


정의신다운 무대였다. 희로애락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묻는다.

나는 그를 ‘반전 엔터테이너’라 부르고 싶다. 그의 모든 연극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으며,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이 그 후에도 얼마나 처절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그려낸다. 동포들은 해방만 되면 한국에 돌아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도 돌아가지 못했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배를 타야 했지만 배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들을 후 쉽게 배에 오르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러는 사이 6.25전쟁이 터지고, 한일수교는 1965년에야 이뤄졌으며 1965년까지 일본에 있었는데 그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식들을 북한에 보냈다. 일본에서 차별받고 사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맥은 전쟁터에 보내졌고 배를 곯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아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고철을 훔치며 사는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을(재일동포를) 미워한 연인 폴의 부모로 인해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폴과 루시는 맥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도 맥을 기억할 것이다. 아마 일본인 관객들은 폴의 부모가 맥을 그토록 미워한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정의신 작가는 조심스럽다. 맥이 재일동포라서 죽었다고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동포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떴을 것이다. 혐오가 빚어낸 절망적인 결말을 기억하고, 맥을 기억하고, 세상을 바꿔 나가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100년 후의 세상은 어떨까? 누군가 꾸준히 전쟁을 기억하고, 반전을 외치며 소소한 행복을 실천하고 살아간다면 인류의 100년 후는 조금 더 평화로울지도 모른다. 정의신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나는 결국 미용실 갈 돈으로 이 <서푼짜리 오페라>를 두 번이나 보러 갔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여자배우가 두 명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옥의 티다. 여성의 역을 모두 여장남자들이 맡고 있다. 그것이 정의신의 색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여장남자를 우스꽝스럽게 이용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남자배우들만 나오면 어쩌지? 여자배우들의 활약도 더 보고 싶었고, 맥이 제니를 비롯해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용한 것에 조금쯤 양심의 가책을 느꼈더라면, 그것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여성혐오적인 면모에서 조금 더 발전한 정의신의 작품을 보고 싶다. 하지만 동성의 결혼 등을 그려내는 등 그는 언제나 앞서 가는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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