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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여름 <써머필름을 타고>

김민정의 일상다반사(24)

by 김민정

2021년 일본에서 개봉된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여고생 삼총사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무협영화를 한 편 찍는 스토리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러나 그 청춘은 뜨겁고 시원시원하고 애처롭고 용감하고 따뜻하고 흥겹다. 그리하여, 부럽다. 그래, 부럽다. 부러운 청춘을 보낸 고교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소룡도 존경해 마지 않았다는 동양의 대스타 가쓰 신타로. 그는 1962년부터 1989년까지 26편의 <자토 이치> 시리즈의 주연이었고 때로는 감독을 겸하기도 했다. 맹인 검객 ‘이치’의 활약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현대의 고교생 소녀들 ‘하다시(맨발)’ ‘블루하와이(빙수를 먹을 때 블루하와이 시럽만 먹기 때문에)’ ‘킥판(학교 수영 시간에 킥판을 들고 온 까닭에 킥판(비토반)이라 불린다. 한국어 판 자막에는 킥보드로 번역됨)’도 가쓰 신타로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세 고교생은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자토 이치>를 보며 “가쓰 신타로 신이다!” “섹시함이 장난 아니야”를 외친다.


‘하다시’는 영화 동아리 회원이고, ‘블루하와이’는 검도부이며, ‘킥판’은 천문부의 일원이다.

‘하다시’ 는 무협 영화 때문에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고 자신이 쓴 무협 영화 <무사의 청춘>을 찍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영화 동아리 작품 선정에서 떨어진 후 어쩔 수 없이 영화 동아리가 찍는 청춘로맨스물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청춘로맨스물이라니, 아아, 지긋지긋해. 영화는 자고로 무협이 최고라고.’

영화 동아리에서 찬밥 신세인 하다시는 무협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의 허름한 영화관에서 ‘린타로’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를 <무사의 청춘> 주인공으로 낙점한 후, 납치하다시피 해 고등학교로 데려오고 조명을 개조한 괴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불량학생 오구리, 고교생이지만 마흔은 되어 보이는 외모의 대디보이와 함께 방학 내내 영화를 찍게 된다. “너희들의 청춘을 나에게 맡겨달라”는 말과 함께.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을 조화롭게 배치한 영화다. 거물급 배우들이 나올 때 발생하는 배우에 대한 배려로 인한 엉뚱한 설정 같은 것은 없다. 오로지 영화를 찍는 고교생들의 청춘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영화 동아리가 총동원되어 찍는 청춘로맨스물 <좋아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잖아>의 달콤함과 긴 칼을 휘두르는 활극 <무사의 청춘>의 대비도 완벽한다. 좋은 영화들은 늘 그렇듯 대비라는 장치가 제대로 작용한다.


세 여고생들의 외모, 성격, 개성이 제각기 다르게 그려졌으며, <좋아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잖아>의 주인공이자 감독이고, 학교의 마돈나적인 존재 카린과 우리들의 주인공 하다시의 대비도 완벽하다. 하다시와 카린은 라이벌이지만 과거의 라이벌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넘어뜨리고 앞길을 방해하기 위해 영화를 불사르는 것이 90년대까지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였다면, 2020년대의 여자 라이벌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돕고 정정당당하게 작품으로 승부한다. 극적인 상황이나 지나친 적대감을 폭력적으로 표출하지 않아도 라이벌 구도를 그려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어떤 이들은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하는데, ‘사랑스러운’을 넘은 ‘멋진’ 고교생들의 여름 이야기이다.


당신의 과거의 여름은 어떠했나. 누구나 꿈을 꾸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싶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작정 바다를 보고 싶어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며, 누군가는 사랑하는 스타를 따라다니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든 진심으로 달려들어 매달리고 도전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다시는 영화를 포기하려고 했다가 영화에 달려든다.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친구들을 설득하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이성을 위해 칼을 빼들고 달려든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아, 얼마나 시원시원한가! 지금 나의 사랑이 이루어지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옮길 수 있는 자, 분명 성공을 거머쥘 것이다. 그게 바로 ‘청춘’이다.


‘하다시’역은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 46’의 전 멤버 이토 마리카가 맡았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와 댄스를 했다는 이토 마리카는 영화 마지막에 훌륭한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대걸레 하나로 보이는 퍼포먼스를 침 한 번 못 삼키고 주시하게 된다.


하다시의 라이벌 ‘린카’역은 재즈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도 활약중인 재능 많은 배우 고다 마히루가 맡았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앙큼하고 가증스럽고 예쁘고 밝고 당당한 고교생 역을 그녀만의 색깔로 완벽하게 재현했다.


홀연히 나타나 <무사의 청춘>의 남자 주인공을 꿰찬 ‘린타로’역은 가네코 다이치가 열연했다. 단역에서 조연으로 한 걸음씩 성장해온 가네코 다이치의 배우로서의 성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마쓰모토 소시는 1988년생으로 다마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광고 및 뮤직 비디오를 찍어오다가 2021년 <썸머 필름을 타고>로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마쓰모토 마리카와는 이 영화 이외에 지난 해 <귀에 맞으신다면>이란 드라마를 통해 일본의 체인점 맛집을 소개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등 재미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1990년대 내가 일본에 왔을 때, 그러니까 내가 고교생이었을 때,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던 감독은 이와이 슌지였다. <러브레터>도 그러했지만 우리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에 열광했다. 고교생 노리미치와 유스케는 절친이다. 절친답게(?) 둘 다 나즈나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즈나의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고 나즈나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나즈나와 함께 여름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까? 잔잔하면서 코믹하고 풋풋한 청춘의 여름 이야기에 우리 모두가 귀기울였다.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며 문득 이와이 슌지가 떠올랐다. 우리들 청춘을 대표하던 감성적인 감독 말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몹시 황당한 설정이 들어있지만 그들의 대화는 이와이 슌지 시절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아마 오랫동안 일본을 대표하는 여름의 청춘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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