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일상다반사(38)
인간은 참으로 복잡 다양한 인물인데, 자꾸 어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짬뽕이야, 짜장이야? 탕수육 소스는 부어, 찍어? 고양이를 좋아해 강아지를 좋아해?
이런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질문이다.
당신은 내향형이세요, 외향형이세요? 아 모르겠다.
도도하고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고요. 친절하고 상냥한 게 좋잖아요.
여자는 톡 쏘는 게 매력이지. 여자는 순종적인 게 좋지 않아.
이런 잣대처럼 불편하고 어려운 것도 없다. 어쩌라는 건가? 뭐 남들이 정한 기준따위 아무래도 좋고 나는 그저 복잡 다양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살면 그만이지만,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이런 태도와 첫인상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고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감정노동자라는 사실을 엄마가 되기까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말이다, 실은 엄마가 되기까지 몰랐던 사실이 너무나 많다. 아이를 낳는다는 게 아프다는 건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이렇게까지 아프다는 것과 남편이란 작자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모유수유가 출산에 버금갈 정도로 아프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나. 가슴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고 왜 언질도 주지 않았느냔 말이다.
몸도 작고 체력도 약하고 위장도 작아서 끊임없이 배가 고픈 아이가 3시간에 한 번씩 깨서 수유를 해달라고 보챈다는 얘기가 과연 구청에서 실시하는 엄마아빠교육에 있었느냔 말이다. 돌이켜보면 엄마아빠교육에서 출산의 신비를 배우고, 기저귀가는 법과 아이 목욕시키는 법 등을 배웠는데, 이게 나에게도 유용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았나 싶다. 회음부 마사지 같은 건 그냥 종이 한 장 나눠주고 끝났기 때문이다. 배 마사지도 그렇다. 그리고 왜 아이를 낳고 난 후엔 손목이 아프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여성들의 몸은 배가 불렀다가 끝나는 게 아니란 사실에 너무 무지했다.
아 오늘은 이런 얘기가 아니다. 나는 나의 감정노동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감정노동 더하기 상냥하게 살기, 대화의 기술 발휘하기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병원에서 6인실 시간이 시작되고 거기서 처음으로 아이를 낳은 여성들과 일명 ‘마마토모(엄마 친구)’를 만들게 된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어차피 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니까. 퇴원 후에 일본 보호자들은 보통 지자체가 운영하는 아동관(음악실, 체육실, 유아실 등을 갖춰놓고 방과후교실로도 쓰이며, 유아들을 위한 무료 프로그램을 오전 중에 실시한다)에 가서 오전 시간을 보낸다. 우리 집 근처에는 아동관이 세군데 있는데 무료 유아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요일이 달라, 액티브한 엄마들은 세군데 모두 요일마다 바꿔다니며 마마토모도 사귀고 아이들을 놀게 한다. 아동관에만 다녀와도 아이가 오후 시간엔 푹 잠을 자주기 때문에 엄마들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거기서도 마마토모를 사귀게 된다. 나처럼 쭈뼛쭈뼛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런 강제적인 인간관계는 적잖은 부담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결혼까지는 예상을 했다고 하더라고 아이를 낳고 평일 아침 10시에 아동관에 아이를 안고 가, 일본어로 아이에 대한 대화를 주구장창 나누는 마마토모가 생기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 싶은 생각이 때때로 든다. 여하튼 마마토모를 사귀고 가끔 집에 초대하고 정보를 얻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비교해본다. 이 시기 마마토모는 남편 뒷담화를 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아이가 만 3세가 되면 대부분이 직장에 복귀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전업주부의 경우엔 유치원에 입학시키게 된다. 거기서부터가 마마토모 인간관계의 진짜 시작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어 오고, 그렇게 되면 나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아이가 친한 친구의 엄마와 무조건적인 친구가 된다. 이런 관계를 수월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런 관계가 불편하고 어렵고 피곤할까. 아 누구나 다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우리 세 남매 중 큰애는 원래 친구를 많이 못 사귀는 편이다. 말이 없다. 내가 어린이집 참관 수업에 갔을 때 내 옆에 있는 아이들이 나에게 “모모 양은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저는 목소리도 못 들어 봤어요.”라고 하소연했을 지경이니까.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덕분에’ 마마토모와 사이좋게 지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편안하게 지냈다.
우리 둘째는 사교성이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없고 무난한 편이다. 그래서 친구가 많다. 생긴 것도 예쁘장해서 어린이집 시절부터 남자아이들이 많이 따르기도 했다. 주말마다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는 둘째로 인해 나는 사교적인 엄마가 되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다.
막내는 아들이다. 아들이 의미하는 것은 딸과는 다른 방식의 대화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일찍 생긴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폭력성이다. 대체 이런 것은 어디서 발로하며 왜 이렇게 다를까? 남녀차이를 구분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아도 폭력에 노출되지만 남아들의 경우엔 마치 그게 대화처럼 쉽게 오간다. 그 폭력성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방관자도 아니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무언지는 아직 모르겠다.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나는 아이를 12년 이상 키우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헤어졌다. 내가 한가해서 그랬을까? 남편은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아이 아빠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는커녕 안면도 트지 못했을 것이다. 안면을 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관계가 앞으로 아이가 성장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니 잘해보자고 각오 또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선 머리를 조아리고 상사의 말에 복종하고 어쩔 수 없이 동료들과 인간관계도 맺어야겠지만 가족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모든 인간관계는 처음부터 포기하겠다는 것이 남편의 마음가짐인 것도 내가 아이를 낳고 알게 된 경악할 만한 사실이다.
지난 주말 동네 공원에 막내 친구들 5명이 집합했다. 나는 나대신 남편을 보냈고, 남편은 엄마들만 나왔다며 막내를 거기 맡겨놓고 2시간만에 집으로 복귀했다. 두 시간이나 있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까. 이 사람도 나처럼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빠이고 엄마들 틈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벗어나기 수월했을 것이며, 그 자리에 있던 엄마들도 남편이 가겠다고 하자 막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더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이렇게 남편은 다른 보호자들과의 연계에서 탈선한다. 탈선을 해도 어느 누구 하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아빠들은 감정노동의 원 안에서 이탈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사회도 학교도 보호자들도 아빠들이 ‘파파토모(아빠 친구)’를 사귀지 않는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파파토모’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일 게다.
엄마인 나는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의 취향을 안다. 최소한 담임이 어떤 아이를 선호하는지를 알아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절실하고 진심이다. 아이의 성적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를 묻는 것도 나이고, 그 성적에 따라 또 적성에 따라 아이를 이끄는 것도 나이다.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나에게 맡겨진 것이다. 어릴 때 우리집에서 혼을 내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고 달래는 것은 아빠의 역할이었다. 혼내는 것도 달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혼을 낸 후에 달래는 것은 그나마 편한 축에 속했기에 아빠가 그 역할을 했던 게 아닐까. 아빠는 우리 남매가 혼이 나면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하거나 백화점에 가서 먹을 것을 사줬다. 그렇다. 아빠는 우리를 말로 달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또한 내가 아이를 낳고 알게 된 것 중 하나이다. 아이를 혼내고 달래고 이끌고를 나 혼자 하고 있다는 것도 요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여유조차 없었다.
남편은 아이들과 대화를 잘 하지 못한다. 칭찬을 100번 이상 한 자만이 아이를 혼낼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도 모른다. 그 정도의 신뢰관계 없이 아이를 혼내면 아이는 비뚤어진다. 예쁘다, 잘한다, 착하다, 똑똑하다 등 광범위한 칭찬부터 정리를 잘했다, 숙제를 잘했다, 글씨가 예쁘다, 일찍 일어났다, 배변도 잘한다, 밥을 참 맛있게 먹는다, 게임도 잘한다 등등의 소소한 칭찬들까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준 이후에야 비로소 아이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없이 잘못을 지적하면 당신은 그냥 잘못만 지적하는 나쁜 부모로 아이에게 낙인이 찍힌다고요, 여보! 후우.
여하튼 대내외적으로 나란 여자가, 나란 엄마가 우리집 인간관계의 줄을 이어가며,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 나는 문득문득 이 말을 떠올린다. “여자애들이 말이 빨라.” 정말 그럴까? 모르겠다. 세 남매를 키우고 있지만 이건 정말 의심스럽다. 만일 검증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이 말을 언제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말은 남자아이는 말이 느려도 된다는 식으로 더 많이 해석된다. 여자아이는 말이 빨라서 남자아이를 이겨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도 많이 쓰인다. 말이 빠른 여자아이를 똑똑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문득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진 여성들은 어른이 되어 나처럼 보란 듯이 감정노동자를 자처한다. 아무도 나대신 인간관계를 쌓아주거나 감정노동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그런 기술이 0도 없거나 전혀 발휘할 생각도 안 하고 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감정노동자로 살게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이유도 없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식당에서 음식만 흘려도 죄인, 아이가 버스에서 말만 해도 죄인, 아이 성적이 별로여도 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전철을 탈 때 유아차를 접지 않고 탔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될 수 있다.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전철을 타는 여성들에 대한 냉대는 냉정한 표정에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폭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머리 숙이는 감정노동자를 강요 받는다. 그리고 내가 이런 감정노동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산다는 사실이 가장 서글프다. 하지만 나는 이 결혼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아온 남편의 연금은 나보다 훨씬 많고 그 연금이 없으면 나는 노후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여자도 연금이 나온다고 할 것이다. 여자에게도 나온다, 쥐꼬리만한 연금이, 내 남편의 3분의 1에서 4분이 1밖에 되지 않는 연금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으니 얼른 직장을 구하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마 감정노동만이 허락된 직장을 어쩌면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직장을 구하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 크게 감지덕지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자고 일본 사회 속 이방인이고 쓸데없이 고학력이고 그런데 경력이 단절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여전히 강사일 뿐이고 그런 나에게 정규직을 주는 사람에게, 그게 어떤 일이 되었든 감사하라고 사회는 말할 것이다.
월요일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늘 생각이 많다. 생각만 많다. 어떻게 살지 어디로 갈지 내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으로 어떻게 살지 어디로 갈지가 항상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다. 엄마라는 사람들이, 또는 여성보호자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노동의 현실의 100분의 1밖에 쓰지 못했지만 조금씩 더 보태볼 생각이다. 남자들도 감정노동을 한다. 당연하다. 사회에 나간 모든 이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여자이고 엄마니까 여자이고 엄마로서 겪는 일에 대해 말할 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여자이고 엄마인 이름모를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