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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2)

김민정의 일상다반사(38)

by 김민정

“왜 당신만 마셔?”

“뭘?”
“커피.”

“당신도 어른인데 당신이 직접 마시면 되잖아.”


남편은 항상 그렇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옳은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래, 나는 어른이다. 내 손으로 커피를 내릴 줄도 알고, 내 돈으로 커피를 살 줄도 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동네의 맛있는 커피집을 알고 있고, 어느 가게 원두가 좋은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나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건가?


“당신은 뭘 마실래?” 그 한 마디를 그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러니까 내가 남편을 버리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제 얼굴에 침뱉기인 까닭에 나는 묵묵히 살아왔다. 아니 여전히 그렇다. 내가 이런 글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여간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고서야 내가 남편의 이런 소소한 짜증 버튼에 대해 털어놓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음료수 한 번 안 뽑아주는 남자랑 같이 사는 여자입니다. 어떤 식으로 말해도 나의 가치는 하락한다.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사람을 선택했으니 너의 책임이라고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사람이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살다보면 티격태격하게 된다. 좋은 의미에서 그럴 때도 있다. 심심풀이로 장난을 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하나 둘 이상일 때도 있어서 참다가 폭발할 때도 있다.


“아니 왜 쓰레기를 안 버렸어?”

이렇게 질문할 때 나는 이유를 묻는 것일까? 아니면 채근하는 것일까? 한 20%쯤 이유를 묻고 있다.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나는 당신을 용서할 아량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기 담당 구역인 쓰레기 버리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남편은 미안하다고도 하지 않고,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 또는 안한 이유를 불지도 않으면서 냉장고 앞에 둔 의자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전자 담배를 피운다. 이러면 내가 화가 날까, 안 날까를 시험하듯이. 그는 이런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식으로? 바로 이런 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듯이 그는 넘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은 것이 크게 트집 잡힐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에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그냥 쓰레기를 버리는 일일 뿐,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가? 좌지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하루를 짜증나게 하는 요소일 수는 있다.


그럼 내가 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 것일까? 쓰레기를 분리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말이야 쉽다. 페트병 하나도 뚜겅을 따로 분리하고 겉표면을 둘러싼 포장을 벗기고 내부를 씻어 잠깐 말렸다가 쓰레기통에 버린다. 여기까지 했으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남편 몫이어도 좋지 않을까? 왜 그것까지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걸까?


신혼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는 원래 잘 모르니까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야 해. 남자에겐 명확하게 말하세요. 내일 아침 8시에 타는 쓰레기를 버리라고요. 그래야만 그들은 움직일 수 있어요.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애교까지 섞어가며. 하지만 살다보니 그들도 회사에선 안 시키는 일까지 알아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의 인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부부라는 인간관계에서 대화로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아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남자들은 쿠션어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실례지만” “시간이 있으시다면”과 같은 말 말이다. 그걸 아내에게는 더더욱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남편만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남자라는 주어를 사용해 미안하다. 내가 보는 남편이란 존재가 우리 남편뿐이니까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부부싸움은 누가 해결해야 하나. 우리 남편이 내게 먼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는 일은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설명하고(하지만 쓰레기를 왜 남편이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버려야 하며 그게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다 보면, 그게 아무리 멋진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해도 실소가 나온다), 나의 기분을 말하고(여자가 기분을 말하면 여자라서 기분을 따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사과를 요청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그때서야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다.


“여자애들이 말이 빨라”라는 말은 여자아이들은 말만(만에 방점을 추가한다) 잘해서 남자아이를 이겨먹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이 크면 이번에는 여자들이 공감능력과 대화능력이 뛰어나다고들 한다. 그래서 여자들에게는 공감능력과 대화능력이 필요한 일들이 싼값에 맡겨진다. 각 방송사의 토크쇼의 사회자들은 주로 남자다. 개그 프로도 그렇다. 여자들이 공감능력과 대화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사회는 말하지만, 사회는 여자에게 사회자의 역할을 잘 주지 않는다. 대신 접대를 하고 전화를 받는 일들이 맡겨진다. 돌봄 노동도 마찬가지다.


나는 말많은 남자가 싫었다.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귀담아 듣다 보면 피곤하게 마련이다. 솔직히 모든 것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인들은 연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길 기대한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작용을 했다.


하지만 같이 살아보니 이 남자는 대화의 소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대화로 풀어야 하는 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은 남편을 그렇게 키운 것 같다. 남편이 어릴 적 “꼬마야 몇 살이니?” 라고 누군가가 물으면 그 대답은 시어머니가 대신했다. 물론 그렇게 키우는 것이 아이를 지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시댁에 가면 간혹 어머니가 남편 대신 나에게 대답을 해주는 경우가 있으시다. 오랜만에 자식들을 만나 들뜬 마음에서 그러실 수도 있다. 하지만 왜인지 미심쩍다. 남편은 남자아이라는 이유로 자기 나이를 대답하고,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자기 기분을 설명하고, 자기가 풀어야 할 대화라는 숙제로부터 점차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닐까? 그렇게 고찰해보지만 이런 고찰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장 내가 이렇게 속이 답답한데. 한편으론 살짝 반면교사로 삼아볼까 싶기도 하다.


집안에서 아내이자 엄마는 여러모로 감정노동자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하고 설득하고 아내 자신의 감정을 잘 다르려야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말처럼 화가 치미는 문장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할이 실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역할을 잘 수행하면 가부장제에 편입된 여자가 되는 것이고 그 역할을 잘 하지 못하면 가정이 깨질 수도 있다.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시작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나하나 뿐일까.

매일 식탁에서 아이들의 하루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고, 내일 하루에 대해 대비하는 것도 주로 엄마의 역할이다.


남자들도 남자들 나름대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빠들은 아빠들 나름대로 지치고 피곤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이 글을 쓴다. 아침밥을 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도시락을 싸다가 8시쯤 되어서 남편을 깨워 쓰레기를 버리게 한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아침밥을 차려준다. 내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쓰레기를 버려주는 사람은 우리집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애들을 그렇게 가르치면 된다고 댓글을 단다. 누군가는 메일을 보낸다. 나는 고맙다고 답한다. 남편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살아 속이 터질 것 같은 나에게 애들을 가르치면 된다는 말은, 동문서답이 아닐까 싶지만 일단을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이 싸움을 포기하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7시 반부터 남편을 깨우고 있다. 내가 버리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기가 난다. 그딴 오기 가져다 버리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부부사이가 더 좋아져서 언젠가 남편이 쓰레기를 알아서 버릴 날이 올 것입니다, 와 같은 조언은 당분간 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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