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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미션, 사라진 물건을 찾아라

김민정의 일상다반사(39)

by 김민정

엄마, 교과서가 없어.

뭐가 없다고?

교과서. 산수 교과서가 없어.

아니 나 보고 어쩌라는 건가. 내가 교과서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다짜고짜 그런 것도 모르냐며 왜 잘 챙기지 않았냐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가 평소에 뭐라고 하지?

물건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맞아! 물건을 절대 사라지지 않아.

물도 기체가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흘려버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지.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찾아야죠!

그래 찾아보자!


물건을 찾는데도 요령이 있다. 물론 기억의 수면을 우아하게 헤엄쳐 꺼내올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수면 취조? 수면 중에 내 기억 코드를 찾아줘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은 삼시세끼 식사와 청소의 유무와 빨래 정리 등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보호자란 아이의 안전을 도맡은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설령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머리속엔 사라진 물건을 기억해 둘 공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그 물건이 내 것이 아닐 땐 ‘뭘 어쩌란 건가’ 싶어 황당하다.


우리 엄마는 지우개,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등을 여러 개 사두는 편이었다.

뭐가 없어졌다고 했을 때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짜증을 내며 그 물건을 찾기보다 일단 포기를 하고 새 것을 주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찾다 보면 어디선가 헌 물건이 나온다. 엄마의 정신 건강에 가장 좋은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는? 그건 하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 물건을 찾는 요령이다. 일단 시선을 천장에서 50센티 아래로 둔다. 좌우 사방을 살피며 천장에서 50센티 아래의 모든 곳을 뒤진다. 다음은 바닥이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일일이 손으로 확인한다. 눈으로만이 아니라 손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눈으로 슬쩍 스치고 지나가면 놓칠 수가 있다. 반드시 손으로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다음은 책상 위다. 책상 위를 다 확인한 후 책꽂이를 봐야지, 책상 위와 책꽂이를 동시에 확인하면 안 된다. 물건이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참 책가방 속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때도 눈 플러스 손도 동원해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찾아도 안 나오면 학교로 간다. 학교에 두고 오는 일도 종종 있다.


지우개나 연필이야 나도 여러 개 서랍에 두고 살면서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꺼내 주지만 교과서를 찾아 달라는 것처럼 어려운 미션도 없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구몬 숙제가 없어졌다는 건 더 황당하다. 이건 어떻게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깐깐한 구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선생님 구몬 숙제가 없어졌어요. 한 부 더 마련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비굴하지 않게 하지만 죄송하다는 느낌을 담아서 전화를 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연기파 아닌 연기파가 되어간다.


물건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물리의 법칙이지.

나에게 그렇게 알려준 사람은 10년도 더 전에 취재에서 만난 괴짜 과학자 닥터 나카마츠였다.


(그의 기사는 나의 브런치에 아직 남아있다. https://brunch.co.kr/@tokyomom/26

그 외의 인터뷰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interviewjapan)


이 말은 그후 내 인생의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물이 기체가 될지언정, 또는 고체가 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엄마, 흰 양말이 없어. 체육복이 없어. 속옷이 없어.

발레용 타이츠가 없어. 머리를 묶어야 하는데 고무줄이 없어.

줄넘기가 없어. 열쇠가 없어. 양말이 없어.


나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으니 찾으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그 정도의 임무감이 넘치는 것이다. 남편은 10분은커녕 5분도 찾아보지 않고, 없다고 답한다. “없어” 그리고 끝이다. 아니 이건 끝날 일이 아니란 말이다. 물건이 없으면 그걸 해결해야 하는데 그에겐 그런 사명감이 나보다 덜하다. 없는 건 사면 그만이라는 정신으로 그는 살고 있지만, 세상엔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구몬의 문제지, 피아노 학원에서 준 종이 한 장짜리 악보, 학교 담임 교사가 준 나팔꽃 관찰일지도 그렇다. 머리를 숙여야만 또 받을 수 있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은행 카드와 마이넘버카드(일본의 주민증)을 잠깐 꺼내놨는데 보이지 않는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이 두 장의 플라스틱 카드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니 물건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모습을 감출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톰 크루즈도 해내지 못할 임파서블한 미션이다. 대체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의 두 장의 카드는 발견될 것인가. 물건 찾기조차 엄마의 일이란 것도 엄마가 되어보고 알게 된 씁쓸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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