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끝물, 애 셋 둔 아줌마의 도쿄 전직 일기(4)

by 김민정

전직활동을 12월 1일에 시작했고 헤드헌터 2명을 만났고, 그들은 나에게 비투비 영업직을 의뢰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 58개의 회사에 응모를 했는데, 내일은 그 회사들 중 몇 곳에 사진이 들어간 이력서를 보내야 한다. 사진이 들어간 이력서를 위해 내일은 좀 일찍 나가 사진도 찍어야겠다.


뭔가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근데 나는 사실 지금의 나와 내 일들을 사랑한다.

2008년부터 KBS통신원을 시작해 지금은 일본에서 유일한 통신원으로 일주일에 두서너 편의 라디오에 출연한다.

아이를 낳고 시작한 강사일도 좋다. 매일매일 젊고 밝고 희망찬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내가 어디서 이렇게 젊은 사람들을 만나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강의를 하는 90분은 온전히 내 시간이며, 나는 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문화도 알려주고 한일의 역사도 알려준다.


얼마전 한 학생이 나에게 편지를 전해줬다.

그 학생은 내 수업을 듣고 한인자료관에 가서 조선인들의 역사를 배웠다고 한다.

식민지에서 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래서 내 수업을 들어서 다행이라며, 자기도 언젠가 나처럼 '박학다식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마 좋은 선생님인 것 같다.

왜 이런 나를 빨리 상근으로 써주는 대학이 없는 걸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남자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면 그만인가. 왜인지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꾸준히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를 이력서에 쓸 수는 없다.

이력서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냐를 쓰는 공간이 아니다.

얼마나 좋은 회사에서 얼마나 훌륭한 일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느냐를 본다.

아니 사실 업적따위는 안 보기도 한다.

나이가 어리면 쓰기 편하다고 생각하고

외국인은 왜인지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전직 생활은 오래갈 것 같고 어쩌면 전직을 못해서 강사와 파견사원과 번역과 통역을 계속해서 오가는 지금같은 인생이 계속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으니 살아야 한다. 이력서에는 열심히 살았다고 쓸 수 없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인정해줄까. 나는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내가 나를.


내가 지금 가고 싶은 회사는 모 출판사, 모 패션회사, 어린이 방재교육 담당 법인 등등이다.

내일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열심히 이력서를 써서 제출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년에는 일본에서 내 책이 나온다.

그 원고도 열심히 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원고가 밀려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기자나 작가로도 어느정도 아주 훌륭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다 나야 열심히 살자를 되뇌이며 이제 잠자리에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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