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끝물 아줌마의 도쿄 전직 일기(16)

마음 먹기 마련

by 김민정

일본은 90년대 후반, 거품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경제정황이 나빠지면서, 파견사원이란 제도가 생겨났다. 노동자들이 기업이 아니라 파견회사 소속이 된 후, 다른 회사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다. 결정권이 없는 일이 대부분이며, 사무직이 완벽한 단순 노동자로 시키는 일만 하게 되는 방식을 정부가 채택한 것이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파견업은 주로 노동현장직에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사무직의 파견화가 되면서 기업은 파견사원의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었고 퇴직금도 주지 않게 되면서 사무직의 많은 부분을 파견사원들이 담당하기 시작했다.


거품경제 시절까지 일본은 모든 국민의 중산층화를 꾀하려고 했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연봉 1000만엔을 받을 수 있는 사회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파견업의 업종 확산이 시작되면서, 전국민의 빈곤화 또한 시작되었다.

기업은 파견회사에 돈을 주고 파견회사는 노동자를 고용해 기업에 파견한다.

그렇게 되면 파견회사가 노동자가 버는 돈을 가져간다. 대신 파견회사는 4대보험을 들어준다.

하지만 장기 고용은 보장되지 않는다. 파견은 5년까지만 가능하다. 그 후에는 기업이 정규직으로 변환시켜줘야 하지만 대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까.

오늘 나는 일본에서 가장 큰 파견업체가 도쿄도의 여성 입사 지원을 돕는다기에 전화면담을 했다.

도쿄도의 여성 지원 입사 도움은 1-2달 파견업으로 여성이 기업에서 일을 해 본 후, 그 여성과 기업이 잘 맞으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되, 연봉은 300만엔으로 아주 적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렇다면 그냥 파견직으로 시급 2000엔을 받는 것이 득이 아닌가.


손과 득, 사람들은 늘 그 두 가지 자대를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그냥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며 주 2회쯤 구몬 선생님을 하고 통번역도 하면서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살까,

근데 내가 프리랜서를 해봐서 아는데 이게 참 또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 혼자 짊어질 게 너무나 많다는 것.


나의 계획은 1. 희망직종에 합격하면 거기에 간다.

2. 불합격하면 강사 일을 계속하며 파견직도 찾는다.


내가 직장을 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스킬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는 생각보다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서 강사 시급으로는 더이상 버티지 못할 낭떠러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엄마가 그랬다. 얼마전 애들 친구 엄마에게도 얘기를 했더니 스트레칭을 하고 푹 자라고 했다. 그분은 요가 선생님이다. 강사들은 강사들끼리 통하는 게 있다. 돈을 더 벌려면 뭘 해야 하는지도 서로 잘 알고 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쩌면 좋을지 모를 때 차라리 뛰더나 스트레칭을 하자, 라고 마음 먹었는데 아이 입시 서류도 내러 가야 한다. 현실은 늘 거기 있어서 서럽고 다행이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운명이 애석하면서도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백방으로 뛰는 이런 인생이, 그나마 조금 코믹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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