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B
화제의 영화 <국보>에는 다나카 민이라는 무용가가 나온다. 영화에서는 여성 역을 맡은 나이든 가부키 배우로 나온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라고 그를 지칭한다. 그의 무대는 영화에서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다나카 민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도쿄 나카노에는 소극장 플랜B라는 곳이 있다. 아직 영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나카 민의 공연을 거기서 했었고, 마루세 타로라는 재일동포 희극인도 그곳에서 공연을 했다.
거기는 아주 작은 극장이고 교통편도 불편하지만 언더그라운드 일본 문화를 아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공간이었다. 나는 일본에 와서 그런 소극장들을 자주 찾아 다녔다. 무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기가 없어서 무대에 관련된 일을 해보지는 못했다. 대학시절에 연극무대에 서고 무대감독을 맡은, 그러 아마추어였을 뿐이다.
전직을 하면서, 내가 챙긴 건 월급, 일하는 시간, 일하는 장소, 적성, 경력 등등이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고민들 말이다.
이 나이에 내가 일본 대기업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글을 써온 경력, 학생들을 가르쳐온 경력, 통번역 경력을 살려서 어딘가에 취직이 되면 다행이다.
가능하면, 뭔가 앞으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도쿄의 어느 구에 있는 모자지원 단체에 다녀왔다. 여성들이 그곳에서 지내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차가우며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폭력적이다.
오늘 본 케이스에 대해선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아이를 낳은 책임이 여성에게 훨씬 무겁다는 걸 느꼈다.
남자는 그냥 사라지거나, 여자를 도망치게 만들면 끝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니.
다수의 남자들이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겠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오니 마음이 좋지 않다.
내가 만일 이곳에 취직하게 된다면, 나는 몇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밤근무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겐 플랜비가 없다. 뭘 플랜비로 꼽아야할지도 모르겠다.
나이 마흔이 넘어 얼마를 벌지 못하는 건, 다 그 사람 탓이라고, 아주 쉽게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학생들 가르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는 건 타인에겐 그저 변명이 될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과연 도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만일 우리 동네에 작은 집을 얻어 나만의 학원을 차리게 된다면,
나는 저녁마다 아이들이 놀러와 공부를 할 수 있는 공부방을 만들고 싶다.
적어도 도쿄엔 그런 곳이 아예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곳을 모른다. 아이들이 놀러와 공부를 하고 같이 간식을 먹고 수다도 떨고 그런 곳 말이다.
그게 나의 플랜비가 아닐까.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 삼십대의 나는 몰랐다. 이십대의 나는 더더욱 몰랐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었다. 가슴을 친다 한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도 비슷하게 살았을 것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지구에 빈손으로 와서, 도쿄까지 건너와 여기까지 돈을 벌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다. 그 와중에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이루면서 말이다.
나는 도쿄에 사는 직업도 변변치 못한 가난한 엄마다.
그럼 또 어떤가. 살아내든가 살아야 한다. 정 안 되면 파견 사원이 되거나 알바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강사도 하고 알바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뭔가 보이는 게 있거나 없겠지.
나는 지나친 희망을 품고 싶지도 않고 지나친 절망감 속에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다 잘될 것이란 말도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다 안 될 것이라 믿을 이유도 없다.
삶은 흘러간다. 그 끝은 그저 죽음일 뿐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이 들어 아픈데 돈이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건 정말이지 그럴 것 같다. 나는 돈을 벌 수 있을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나날이 막막하다.
통장 잔고를 보면 더욱 그렇다.
얼마전 나는 엑스를 그만두었다. 살기가 빠듯하고 쓰고 싶은 글도 많아 허투루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잘 살아내지 못했을 때 나에게 날아올 화살을 나는 피할 수 있을까. 당연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과거 일본의 노숙자들이 사는 센터에도 가본 적이 있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를 어렴풋 배웠다. 사는 게 너무 무섭다. 그래도 살아봐야지.
그렇게 반복하고 되뇌인다. 숨 죽이고 살자. 언젠가 숨 쉴 날이 왔으면 하고.
플랜 비에서도 다나카 민은 아름다웠고 영화 <국보>에서도 아름다웠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게 그 사람의 의지는 분명한데, 이제 와서 보니 그걸 지원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부디 내 길을 잘 걸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