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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21. 2016

올림픽 국가대표 마장술 선수 호케쓰 히로시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이 기사는 레이디경향 2012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ㆍ시니어 세대의 별, 일본 역대 최고령

런던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가 대표 선수라면 누구나 피나는 노력 끝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다. 세 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호케쓰 히로시 선수도 마찬가지다. 1941년생으로 올해 71세인 그가 올림픽 대표로 뽑히자 누구보다 어르신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의 인생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지친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이란 단어를 살며시 던져주었다.

'理想한 사람들' 취재 후보 리스트는 늘 꽉 차 있다. 말랑말랑한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수십 년을 투자해온 교수, 시급 천 엔짜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는 복싱 챔피언,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10만 엔짜리 집을 짓고 독립한 도쿄대생,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하려고 분투 중인 과학자들, 세 번의 이혼으로 아빠가 각각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는 삶을 글로 승화시킨 만화가이자 소설가 우치다 순기쿠, 열한 살 시각장애 마라톤 소녀 우에다 와카나…. 저마다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의 이상(理想)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머리로 계산하는 삶이 아닌 배우고 쌓고 해답을 얻어가는 삶의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이상을 갖고 사는 것이 곧 윤택한 삶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해준다. 때문에 그들의 삶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타인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달에 소개하는 호케쓰 히로시 선수야말로 일본 전국을 무지개 색으로 바꿔놓은 인물이다.


온 국민의 희망, 칠순 노익장의 세 번째 올림픽 도전

지난 4월,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만 71세의 호케쓰 히로시 선수가 오는 7월 27일부터 열리는 런던 올림픽 마장마술 경기 일본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물론 일본 대표단 중 최고령이다. 71세라니! 아무리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일지라도 칠순이 넘은 노익장의 올림픽 출전 소식은 일본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니어 세대의 별이라 불리는 호케쓰 히로시의 올림픽 출전 소식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뿌옇기만 한 일본 사회에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올림픽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그는 이미 스타다.

지난 1964년 도쿄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호케쓰 히로시, 그가 궁금했다. 급하게 연락을 했건만 그는 이미 일본에 없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호케쓰 선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호케쓰 히로시(이하 호케쓰) 고맙습니다.

LADY 벌써 세 번째 올림픽인데, 대표가 되리라고 예상하셨나요?

호케쓰 말이 부상을 당해서 올림픽 출전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서 지난 3월 1일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올림픽 대표로 뽑혔습니다. 운이 좋았죠.

LADY 대표로 선발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이 기쁘시죠?

호케쓰 음…. 아, 드디어 끝났다!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기분이에요.

LADY 컨디션은 어떠세요?

호케쓰 저는 좋아요. 말도 좋고요. 시합할 땐 말의 컨디션이 더 중요해요.

LADY 애마 '위스퍼'는 어떤 성격이에요? 무엇을 잘 먹나요?

호케쓰 위스퍼는 제 파트너예요. 아주 좋은 파트너죠. 위스퍼는 가끔 자기가 저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성격은 매우 섬세해서 큰소리나 빛에 좀 놀라는 경향이 있어요. 사과, 당근을 잘 먹고 특히 바나나를 좋아해요. 기본적으론 컨디션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위스퍼의 컨디션에 맞춰서 훈련을 하지요.

LADY 호케쓰 선수는 언제부터 승마를 하셨어요?

호케쓰 중학교 때 가루이자와의 임간학교(자연에서 이뤄지는 야외활동 프로그램)에 참가했어요. 가루이자와가 지금은 별장지로 큰 발전을 이뤘지만 당시엔 논과 밭만 있었죠. 임간학교 마지막 날에 교사가 마을에 가서 말을 빌려왔어요. 그리고 학생들을 차례로 말에 태우고 3분 정도 산책을 했죠. 그때 짜릿한 기분을 느꼈어요. 그날 자유 시간에 친구들과 당장 목장으로 찾아갔어요. 거기서 말을 빌렸죠. 말 주인이 "말이 길을 알고 있으니까 자유롭게 놀다오라"라고 하더라고요. 말을 타고 가다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엉덩이를 때렸는데, 말이 달리는 거예요. 그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후 바로 승마클럽을 찾았죠.                                                                        


말과 함께 살아온 50년 세월

승마를 시작한 소년 호케쓰는 중학교 시절부터 학생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장애물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에는 개인 40위, 단체 12위로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그는 석유회사를 거쳐 제약회사에서 근무했고, 1988년 또 한 번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었다. 장애물에서 마장마술로 종목을 바꾸고 서울 올림픽 대표로 선발됐지만 말이 검역 문제에 휘말려 안타깝게도 출전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서울 올림픽이 끝난 후 그는 한동안 경기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만 전념했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대표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3년 정년퇴직을 한 후 다시 승마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일본에 두고 독일행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2008년 베이징행의 기회를 얻었고, 오는 런던 올림픽 티켓도 손에 넣었다.


LADY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티켓을 따기까지 44년이 걸렸습니다. 가장 힘겨웠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호케쓰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려다 그냥 온 것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힘겨웠던 건 그 이후였어요. 승마를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해외에 거점을 두고 여러 경기에 참여해야만 올림픽 출전권을 딸 수 있어요. 개인이 승마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세계랭킹 상위권에 올라야 했는데, 일본에 살면서 해외 대회에 꾸준히 참여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죠. 1988년 이후부터 2003년까지 15년이나 회사 경영 때문에 경기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시절을 보냈죠.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LADY 2003년부터 독일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불편하거나 가족이 그립진 않나요?

호케쓰 전혀요(웃음). 제가 왔다 갔다 하고 가족도 놀러오곤 해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아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오로지 승마만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LADY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승마를 계속했던 건가요?

호케쓰 경기에만 나가지 않았을 뿐 매일 말을 탔어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말을 타고 말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회사에 출근했어요. 그 시간이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매일 말을 타면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했지요.

LADY 경영자와 선수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호케쓰 전혀 없어요. 사람을 관리하는 일과 말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달라요.

LADY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훈련을 위해 나 홀로 독일행을 택하셨는데, 대체 올림픽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호케쓰 글쎄요. 올림픽보다 수준이 높고 규모가 큰 승마 경기가 있긴 해요. 그런데 올림픽에는 뭐랄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벌써 몇 번째 도전인지 모르겠어요. 도쿄, 로스앤젤리스, 서울, 베이징, 런던까지 다섯 번째예요. 구체적으로 올림픽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꾸 도전하게 되네요.

LADY 벌써 50년이나 말을 타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승마를 계속해온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호케쓰 말이 좋아서요. 승마 경기는 말이 주인공이에요. 육상이나 수영처럼 선수가 나이가 들면 기록도 느려지고 몸도 벅찬데 승마는 그런 게 없어요. 지금까지 버텨온 건 바로 제 자신보다 파트너인 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건강과 동안의 비결

일본의 올림픽 대표 선수 중 최고령인 호케쓰 선수는 칠순이란 나이가 무색하다. 168cm, 62kg의 체형은 대학 졸업 당시와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매일 승마를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LADY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것도 놀랐지만 매우 젊어서 더 놀라웠어요.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있나요?

호케쓰 매일 아침 2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한 시간쯤 말을 타고, 저녁에 30분 정도 스트레칭과 근육운동을 해요. 윗몸일으키기는 나이가 좀 있다 보니 몸에 부담이 되어서 잘 안 하는 편이에요. 특별한 운동을 하거나 몸을 가꾸거나 그러진 않아요.

LADY 특별하신 거예요. 매일 승마를 하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잖아요(웃음).

호케쓰 어?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좀 특별한지도…(웃음).

LADY 식생활은요?

호케쓰 그것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위장이 약한 편이라 탈나지 않게 음식은 되도록 직접 만들어 먹어요. 제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요즘은 광어 무니엘(생선에 밀가루를 입혀서 팬에서 구워내는 프랑스 요리)을 자주 만들어요. 와인도 같이 마시고요. 술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GO, GO! 런던, 희망의 메시지

마장마술은 60×20m의 마장에서 말을 몰고 오가며 정해진 동작을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가를 겨루는 경기다. 순발력과 유연함, 인내력이 요구된다.


LADY 마장마술이란 종목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호케쓰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력이에요. 끈질기게 말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는 거죠. 말이 원하는 걸 다 해줘서도 안 되고 이유 없이 화를 내도 안 돼요. 마치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를 키우듯 말의 속마음을 생각하고 타이르며 그렇게 마음을 열어가야 되죠.

LADY 마장마술의 매력은 뭔가요?

호케쓰 마장마술은 스포츠 경기 중 유일하게 동물을 사용하는…, 아니 '사용한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군요. 유일하게 동물과 함께하는 경기예요. 누가 주인공인가 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선 사람보다 말이 더 중요해요. 말의 소질, 컨디션, 말과 말을 타는 사람 간의 대화가 중요하지요. 동물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경기란 점이 다른 종목과 크게 다른 점이에요. 단순히 기술만 쌓아서는 절대로 우승할 수 없는 경기란 점에서 재미를 느끼지요.

LADY 물론 이번 올림픽 목표는 금메달이겠죠?

호케쓰 아닙니다. 유럽엔 강한 선수가 많아요. 독일, 영국, 미국에도 좋은 선수들, 좋은 말들이 많아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어요. 지금 말하면 운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웃음).

LADY 올림픽까지는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요?

호케쓰 7월 독일 아헨국제승마대회에 나갈 예정입니다. 아헨은 올림픽보다 수준이 높은 대회예요.

LADY 최고령으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시는데 다음 2016년 올림픽에도 도전할 의향이 있나요?

호케쓰 위스퍼와 6년간 함께해왔어요. 위스퍼가 현재 15세, 인간 나이로 치면 60세예요. 원숙기로 마장마술 시합에 딱 적당한 나이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말들은 16, 17세 때 은퇴를 해요. 4년 후 2016년이면 위스퍼는 19세. 현실적으로 올림픽에 나가기 힘들 거예요. 그리고 제가 위스퍼만 한 말을 다시 만나리란 보장도 없고요.

LADY 동일본 대지진으로 힘겨운 일본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셨어요.

호케쓰 지진 이후에 외국 신문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때마다 "일본은 꼭 일어난다"라고 얘기해왔죠. 마장마술을 지속해온 건 제 자신을 위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71세란 나이에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일이 일본인들에게, 특히 고령자분들께 힘이 된다면 제게는 영광입니다.


인터뷰 내내 호케쓰 히로시 선수는 자신의 말인 위스퍼를 먼저 생각했다. 위스퍼의 컨디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과 아울러 2016년 올림픽 도전을 예상하는 데도 위스퍼 걱정이 먼저 쏟아졌다. 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서 마장마술을 시작했다는 호케쓰 선수는 경기 중인 사진에서 보듯 중절모가 어울리는 인물이다.

60세가 넘어 선수 생활에 복귀한 직후 그는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힘이 넘친다며 동년배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런던 올림픽 선발 직후엔 71세의 고령임에도 "나는 아직도 하루하루 실력이 늘고 있다"라고 말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실력이 조금이라도 는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인구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인 일본 사회에서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달려온 호케쓰 히로시의 별명은 '지지노 호시(할아버지 세대의 별)'다. 불편한 몸과 고독,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는 일본 시니어 세대에게,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전긍긍하는 일본인들에게 그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어떤 기쁨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는 일본인이고 일본 대표지만 고령화란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의 아이콘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사진 제공 / 일본마술연맹(日本馬術連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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