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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l 21. 2016

‘일본의 코코 샤넬’을 꿈꾸는 기업가, 오제키 아야

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이 기사는 레이디경향 2012년 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고교생 기업가로 이목을 끈 주인공은 어느새 스무 살이 됐다. 2010년 자본금 30만 엔으로 회사를 차려 2년 만에 1천만 엔이 넘는 매출을 올린 성공 신화는 일본의 경제 매체를 비롯해 NHK에서도 보도됐다. 기존의 넥타이와는 너무도 다른 컨셉트의 넥타이로 일본 패션계를 발칵 뒤집은 오제키 아야를 소개한다.

넥타이를 과감히 잘라낸 여고생

작년 3월 11일 일본을 충격에 빠트린 동일본 대지진 여파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사성 물질에 관한 뉴스는 연일 보도되고 있고, 전력 부족으로 공장의 해외 이전도 불가피해졌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15%의 전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직 절전뿐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회사들은 5월부터 쿨비즈 운동에 돌입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쿨비즈 운동은 실내 냉방 온도를 28℃로 설정하는 것이다. 28℃의 온도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으면 목 주위와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히 묻어난다. 그러다 보니 쿨비즈 운동은 '넥타이 안 매기 운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일본 국회의원들은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친환경을 어필한다. 그만큼 넥타이는 더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쿨비즈를 사업 기회로 삼은 고교생이 있다. 오제키 아야(20)는 평균 길이 140cm의 넥타이를 약 15cm로 과감히 잘라냈다. 천이 아닌 가죽을 사용한 점도 특색 있다. '매는' 넥타이가 아닌 '걸치는' 넥타이, '답답한' 넥타이가 아닌 '시원한' 넥타이를 개발한 그녀는 고교 시절 이를 토대로 회사까지 차렸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어머, 이게 바로 그 넥타이인가 봐요. 매는 게 아니라 목에 걸기만 하면 되는군요.

오제키 네, 제가 개발한 노블타이예요. 노블(Noble), '기품 있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넥타이를 매는 법 같은 건 몰라도 돼요. 끈 처리가 되어 있어서 목에 걸기만 하면 돼요. 끈을 늘여서 목에 걸고 끈을 줄이면 바로 넥타이가 완성돼요.

LADY 이렇게 예쁘고 젊은 여성이 어떻게 남성의 전유물인 넥타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예요?

오제키 예쁘긴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회사를 차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6년에 가나가와 중소기업 비지니스 오디션에 응모하게 됐죠. 그곳에 가보니 참가자 120명 중 학생은 저뿐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중소기업 경영자들이었죠.

LADY 그럼 아저씨들, 아니 실제 경영자들과 오디션을 치렀다는 건가요?

오제키 그래서 처음엔 긴장도 됐는데, 예선을 통과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더라고요. 그 후론 자신감을 가지고 제 의사를 피력했죠. 그랬더니 월간 우승과 함께 인기상까지 탔어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죠.

LADY 만 14세로 최연소 기록도 세우고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지만 회사를 차리기까진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요.

오제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한 사립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어요. 학비는 지원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교칙이 매우 엄했어요. 학생이 회사 설립하는 것을 절대 용납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만두었어요.                                                                 

LADY 고등학교를 그만뒀다고요?

오제키 네. 무작정 그만둔 건 아니에요. 도쿄교육위원회에 전화를 해서 회사를 세워도 되는 고등학교를 알아봤고 그런 고등학교가 몇 곳 있다는 정보를 먼저 수집한 후에 자퇴했어요. 이듬해 다시 고입 시험을 쳤지요. 결과는 합격이었고, 그 새로운 고등학교에 다니며 회사도 설립했어요.

LADY 젊은 여성들이 회사를 설립할 경우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살려 차리는 것이 대부분이잖아요. 왜 넥타이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오제키 대부분의 여자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잖아요. 하지만 전 패션보다는 경영에 더 관심이 많아요. 회사를 차리고 제 힘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팔기 위해 뛰고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제가 중학교 때 쿨비즈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되면서 넥타이 안 매기가 유행처럼 번졌어요. 근데 좀 의문이 들더라고요. 단지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넥타이를 안 맨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노린 거지,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닌 거죠.

LADY 비지니스맨의 상징인 넥타이를 벗어던지는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쿨비즈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죠. 근데 오제키씨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 데 거부감이 있나요?

오제키 약간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흰 가운을 입지 않은 의사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을까요? 왠지 불안하잖아요. 그럼 판사가 판사복 대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서 재판을 하면 또 어떨까요? 제복은 형식적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반대로 신뢰감을 줄 수도 있죠. 비지니스맨에게 넥타이는 필수품이에요. 생명이죠. 쿨비즈 운동이 시작됐다고 해서 간단히 벗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넥타이를 벗는 쿨비즈가 아니라 넥타이를 입는 쿨비즈는 어떨까? 그런 발상에서 이렇게 목에 간단하게 거는 넥타이를 개발했어요.


고교생 사장에서 연매출 1100만 엔을 올리기까지

LADY 사장이 되어서 힘든 점은 뭔가요?

오제키 지금까지는 제품 개발에 주력해왔어요. 세상에 없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죠. 중소기업 아이템은 대기업에 먹히는 경향이 강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회의 자본력이나 조직력에도 뒤지지 않고 디플레이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독창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죠. 가장 중요한 건 특허였어요. 지적재산권을 따낼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면 타사가 흉내를 낼 수 없고 가격 경쟁에 뒤지는 일도 없어요. 넥타이를 개발한 후 국제특허를 신청했어요.

LADY 일본의 전통 산업도 사양의 길을 걷고 있는데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제키 실은 저희 넥타이 제작에는 일본의 전통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요.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수작업도 그렇고, 가죽에 옻칠해서 문양을 넣는 기술, 가죽 커빙 기술은 모두 장인들의 손을 거쳐 생산되고 있어요.

LADY 그래서 비싼 거군요. 전부 1만 엔 이상의 제품들이더라고요.오제키

고급 상품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품격 있는 상품, 기왕이면 전통 기술도 살릴 수 있는 걸로요.

LADY 가족 경영이라고 들었는데, 영업은 누가 담당하나요?

오제키 저와 여동생, 어머니, 그리고 친척 아저씨까지 넷이서 경영하고 있어요. 엄마는 회사 다니시고 여동생은 학생이라 영업은 제가 하고 있어요. 패션계는 인맥사회다 보니, '초짜'인 저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아이로 취급받았죠. 문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회사 임원이나 사장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죠.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친환경을 위해서 넥타이를 벗어던지지 말고 새로운 넥타이를 개발해 판매하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요!


친환경 바람을 타고 화제를 모은 그녀의 넥타이는 독일의 한 남성 패션지에 소개됐고, 이후 일본에서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루 37개 회사가 도산한다는 일본에서 주식회사 노블에이펙스(www.nobletie.com) 창립 2년 만에 연매출 1100만 엔을 달성했다. 광고비를 한 푼도 쓰지 않은 성과치곤 제법인 셈이다. 하지만 쉽게 걸어온 길은 아니다. 그녀는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친환경 넥타이로 새로운 쿨비즈 패션을 개척해나가자는 고교생의 편지는 일본 경영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녀의 넥타이가 드디어 백화점에 진출한 것이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딸, 대학도 가고 싶어

LADY 이 기사의 타이틀이 '이상한 사람들'이거든요. 그야말로 '별스러운'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왔는데, 오제키씨는 얘기하면 할수록 '똘똘한' 이미지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한'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오제키 아야는 '여고생 사업가'로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오제키 14세에 아저씨들 틈에서 비즈니스 아이디어 오디션을 치른 것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회사를 세운 것도, 요즘 같은 초식남(연애보다 취미생활이 우선이고 섹스가 귀찮은 일본 젊은 남성을 일컫는 말)과 모리걸(유기농 면으로 만든 의류를 애용하며 역시 연애보다 취미, 북적북적한 것보다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일본 젊은 여성을 일컫는 말) 시대엔 흔하지 않은 캐릭터죠. 쿨비즈란 단어도 사실은 저랑 좀 맞지 않는 듯해요. '쿨'한 게 멋진 세상인데, 전 '쿨'하지 않거든요. 이메일이 넘쳐나는 시대에 손수 편지를 쓰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회사를 차리기보다 회사원이 되고 싶은 젊은이가 더 많아진 가운데 회사를 차린 것도 사실은 이상한 일이기도 하죠.

LADY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일본 젊은이들이 점점 소극적이 되어가고 있는 건 사실이죠.

오제키 제가 볼 때 일본 젊은이들은 꿈과 희망을 포기하도록 교육된 강아지들 같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고 남들과 다른 걸 불안해하죠. 겉으론 좀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어도 남들과 다른 사상, 다른 언행은 쉽사리 하지 못해요. '재팬 드림'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회사에 취직하고 남들처럼 사는 게 최고가 되어버렸어요. 꿈, 이상이란 단어가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듣는 말이 되어버렸다니까요!

LADY 평범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이니까요!

오제키 네, 그렇지만 어떤 삶을 살아도 힘들긴 마찬가지 아닐까요?

LADY 취미를 살리기보다 회사를 차리는 데 비중을 두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제키 엄마요. 제가 어릴 때 이혼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저와 동생을 키우셨어요. 저희 집안 사정이 어려웠거든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싶었어요. 돈 많이 버는 직업? 아, 사장! 그래서 회사를 차리게 됐죠.

LADY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요?

오제키 어려서부터 현재 회사 경영을 맡고 계신 친척 아저씨를 보면서 자신의 사업을 본인 뜻대로 펼쳐나가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자신이 개발한 상품을 힘껏 알리면서 팔고, 고객의 뜻을 전해 듣고 그 뜻을 받들고…. 그런 경영을 해보고 싶었어요.

LADY 사장이 되어서 어머니께 효도는 했나요?

오제키 (웃음) 아뇨. 피해만 끼치고 있어요. 엄마는 엄마 회사에 다니면서 제 회사도 봐주시느라 더 바쁘게 지내고 계세요. 제가 학생 때는 엄마가 저를 대신해서 가죽 제품 만드는 학교에 다니기도 했어요. 엄마, 미안해요!

LADY 사장 생활은 어때요?

오제키 휴, 실은 무척 힘들어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제품을 개발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편지도 쓰고 경영자도 직접 찾아뵙고…. 그렇지만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제 넥타이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구입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정말 고마워요.

LADY 오제키씨 회사가 빠른 성장을 해왔는데,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제키 전 성공한 축에는 못 드는 것 같아서 이런 질문은 좀…. 현재 일본에 고교생 사업가가 많지 않으니까 치켜세운 보도가 나갔을 뿐이에요. 성공을 목표로 나아가야지요. '노력하면 된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100% 맞는 말은 아니에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고,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지요. 단, 성공한 사람 중에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노력은 성공을 위한 최소의 단위예요.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이상을 갖고 노력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전 성공을 거둘 거예요.

LADY 참, 이제 스무 살인데 대학 진학은 안 하나요?

오제키 지금 공부 중이에요. 세계로 나가기 위해 '영어'를 전공할 거예요. 경영 쪽도 좋지만, 실전에서는 영어가 좀 시급하거든요.

LADY 오제키씨의 10년 후의 미래는 어떨까요?

오제키 브랜드 '오제키 아야'의 지명도를 올려놓을 거예요. 일류 브랜드로 확립시키는 게 제 꿈이에요. 물론 한국에도 진출하고 싶어요. 대리점 모집합니다!(웃음)


조곤조곤한 말투와 얼굴 전체에 살포시 퍼지는 미소에서 여고생 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세계를 석권할 것처럼 보이는 자신감에서는 당돌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잡지에 소개되어 그 진가를 먼저 인정받은 노블타이

1990년대 일본 고교생 사이에선 '야만바'가 유행했다. 야만바란 온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눈두덩을 시커멓게, 마치 판다처럼 칠한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주장을 펴던 학생들이 거품 경제 붕괴 후 20년이나 불경기가 지속되다 보니, 화장을 말끔히 지우고 회사에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요즘 일본 고교생들은 치마도 길어졌고, 남색 반양말을 즐겨 신으며, 까만 머리색을 선호한다. 스타들만 봐도 그렇다. 1990년대 아이돌 스타 아무로 나미에가 당시 노란 머리, 미니스커트, 얇은 눈썹의 대명사였다면 요즘 아이돌 스타인 AKB48은 검은 머리에 굵은 눈썹, 무릎 길이의 스커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조신해졌고, 그만큼 욕심도 사라졌다. 한 학자는 욕심이 사라진 만큼 행복해졌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오제키 아야는 거세된 젊은이들이 때론 아쉽다며 그래서 자신만큼은 세상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제키 아야는 14세 때부터 회사 차리는 것을 고민해왔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대기업에 먹히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친환경 패션 붐에 편승해 친환경 넥타이를 개발했고, 단단한 빗장이 잠긴 백화점 임원들의 마음을 편지로 녹였다.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 그녀는 기왕이면 코코 샤넬이 되고 싶다고 당돌하게 말한다.

"코코 샤넬이 활약했던 1900년대 초반, 여자들은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꼭 조였었죠. 코코 샤넬은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어요. 신축성 있는 소재로 여성에게 자유를 선사했죠. 성공하기 전까지 그녀는 이상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어요. 지금 제 처지와 닮았어요. 사람들은 평범함과 다른 파격적인 스타일엔 아무도 동조하지 않아요. 이상한 눈으로만 보죠. 아무리 그래도 전 남성의 목에 걸린 넥타이에 자유를 부여할 거예요. 넥타이를 벗어던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의 넥타이로 남성들을 해방시키고 싶어요. 전 세계에 감동을 주는 명품을 만들어낸 코코 샤넬처럼, 저도 제 생각을 피력하고 관철시켜서 꼭 성공할 거예요."


<■글·사진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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