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게이 남편과 살고 있는, ‘쇼핑·연애·성형 중독’의 작가 나카무라 우사기
나카무라 우사기(中村うさぎ). 이름부터 독특하다. 우사기는 토끼란 뜻이다. 그녀는 연약함의 상징보다 어디로 사라질지 모를 발 빠른 토끼처럼 종횡무진하는 작가다. 그녀를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까? 쇼핑 중독, 연애 중독, 성형 중독…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적나라하면서 매력적인 문체로 엮어낸 그녀는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문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무엇이 그녀의 인생을 중독으로 내몰았을까? 게이 남성과의 결혼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그녀는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까?
명품, 희열을 위한 소도구에 반하다
'뭘 입고 나가지?' 귀찮고 곤란하면서 한편으론 중대한 사안이다. 필자는 늦깎이 대학원생에 아이 엄마란 사실을 빌미로 일주일 중 7일이 민낯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좀 특별해야 할 것 같다.
「쇼핑의 여왕」의 저자 나카무라 우사기를 만나는 날이다. '나에게 명품 옷이 있던가?' 대답을 뻔히 알면서도 공연히 옷장을 열어본다. '그럼, 구두는 어쩌지? 펌프스는 다리가 굵어 보인다는데, 부츠를 신어야 하나?' 어느 책에서 읽은, 부츠는 포멀한 장소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 구절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여하튼 취재 전부터 이런 고민에 휩싸이게 한 나카무라 우사기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카무라 우사기는 1958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한 작가이자 수필가다. 공저를 포함하면 무려 60권이 넘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쇼핑의 여왕」, 「너희가 명품을 아느냐」, 「프러포즈는 필요 없어」 등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작년 반한류 시위 때 한류 옹호 발언으로 일본 우익들로부터 "매국노"란 비난도 들었다. 글 잘 쓰고, 바른 말도 잘하면서, 예쁜 옷을 선호해 전 재산을 명품 구입에 쏟아 붓고, 예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 성형을 선택한 '욕망 충족 인생의 종결자' 나카무라 우사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술이 아니고 커피인데도 인터뷰가 가능하겠어요?
나카무라 우사기(이하 나카무라) 술을 못 마셔요. 마시라면 먹겠지만….
LADY 좀 의외인걸요. 술자리 얘기가 자주 거론되어서 좀 하시는 줄 알았어요.
나카무라 술은 거의 못해요. 못 마시는 걸 1년에 하루 날 잡고 먹다 보니 자꾸 사고를 치게 되고, 그런 게 보도되면서 '술' 이미지가 입혀진 거 같아요.
LADY 명품에 대한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나카무라 서른세 살이었어요. 라이트 노벨(젊은층을 대상으로 쓴 엔터테인먼트 소설) 작가로 데뷔했죠. 얘기하자면 길어요. 제가 취업할 당시 여자는 남자의 어시스턴트 자리밖에 없었죠. 간단한 사무직이요. 전표 처리를 맡았는데 일도 재미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저만의 직업을 갖고 싶었죠. 마침 친구가 카피라이터 일이 있는데 저한테 딱이라고 하는 거예요. "너 원래 글 잘 쓰잖아"라면서. 친구 조언대로 카피라이터가 됐고, 이후 게임 잡지에 글을 썼어요. 게임을 통해서 배운 판타지 요소들을 삽입해 라이트 노벨을 썼고요.
LADY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거죠?
나카무라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돈이 들어왔어요. 뭘 할까 하다가 샤넬의 가죽 점퍼를 구입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샤넬의 가죽 점퍼를 구입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손님으로 깍듯이 대접받는 희열, 다른 여자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희열. 그녀는 샤넬과 에르메스의 단골이 됐다. 페라가모, 크리스찬 디오르, 구찌, 셀린느의 구두들이 그녀의 방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책이 아무리 팔린다 한들, 매달 적자였다.
LADY 도대체 얼마나 많이 샀어요?
나카무라 한 달에 400만 엔을 쓴 적이 있어요. 솔직히 무서웠어요. 그래서 신용카드를 출판사 금고에 맡기기도 했죠. 2주쯤 참다가 쇼핑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출판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하죠. "제발 하루만 카드를 돌려달라"라고요. 친구 생일 선물을 사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요.
LADY 오늘 입은 옷은 어디 제품인가요?
나카무라 이젠 쇼핑 중독에서 벗어났어요. 이건 그냥 동네 브랜드(웃음). 요즘은 시부야의 젊은 친구들이 가는 109(패션몰)를 선호해요. 나이가 들면서 젊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죠 뭐.
LADY 본인이 쇼핑 중독이란 사실은 아셨나요?
나카무라 쇼핑을 하고 나면 기분이 참 좋다가도 통장 잔고를 보고 기겁을 하죠. 그래서 또 다음 책을 쓰게 되고요. 카드값이 없어서 출판사로부터 선불을 받은 적도 있어요. 다행히 책을 계속 쓸 수 있었고, 재밌게 읽어주신 독자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죠. 중독이란 걸 알았지만 벗어날 순 없었어요. 제가 번 돈으로 명품을 사서 치장하는 희열, 쾌감이 있었거든요.
LADY 거기에서 어떻게 벗어나셨나요?
나카무라 만족한 거죠. 완전 연소된 상태.
LADY 살 만큼 사고 나니까 더 이상 욕심이 나지 않는 경지?
나카무라 바로 그거예요! 10년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쇼핑을 해도 신이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죠. 그제야 쇼핑 중독에서 벗어났고요.
중독에도 때가 있다
그녀의 중독 인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호스트와 사랑에 빠진 연애 중독 시절, 이어서 성형 중독기가 찾아온다.
LADY 호스트클럽에 다니고, 사랑도 했던 이야기를 쓰셨잖아요.
나카무라 설마 제가 그런 데 빠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근데 명품에 흥미를 잃고 난 뒤 우연히 마음에 드는 호스트를 만나게 됐고, 그 남자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맛있는 걸 사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죠. 그게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호스트를 사랑하는 동안이 저한테는 힘든 시간이었죠. 근데 그것도 한때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호스트클럽에도 가지 않게 됐죠. 모든 것이 다 한때인 듯해요.
LADY 이후엔 성형에 빠졌죠? 어디를 고쳤나요? 열두 군데를 고쳤다고 들었는데.
나카무라 정확히 몇 군데를 고쳤는지는 모르겠어요. 원래 쌍꺼풀이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자꾸 처지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했고, 주름을 감추기 위해 리프팅 시술도 했어요.
LADY 코는요?
나카무라 귀 연골의 일부를 가져와 코에 넣었어요. 가슴엔 실리콘을.
LADY 왜 그렇게 성형을 하는 건가요?
나카무라 제 얼굴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한 거죠. 남자와 달리 여자는 미모를 비교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실제론 외모가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요. 근데 얼굴은 DNA가 만든 것임에도 "못생겼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얼굴이 아니라 인격을 무시당한 느낌을 받아요. 참 이상한 일이에요. 얼굴을 바꾼 후부터는 "참 못생겼다"라는 말을 들으면 성형외과 의사 책임으로 돌려버려요.
LADY 미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나요?
나카무라 물론 그런 부분도 있어요. 제가 원하는 얼굴을 가져보고 싶은 욕망. (탁월한 미모를 자랑하는 일본의 인기 연예인) 사와지리 에리카, 아무로 나미에처럼 해달라고 주문했다가 퇴짜 맞았어요(웃음). 미인이 되고픈 욕심도 있지만 재미가 있어서 빠져들게 됐죠. 재미가 없으면 오래가지 못해요. 주름을 펴면 어떤 얼굴이 될까, 코를 올리면 어떤 얼굴이 될까, 그런 기대감이 중독을 불러오는 거죠.
LADY 재미요?
나카무라 예뻐지는 방법에는 다이어트도 있는데 그건 어렵고 힘들잖아요. 재미가 없는 일이죠. 그런 건 중독되기가 힘들어요. 특히 저한테는.
LADY 나카무라씨가 해온 것들, 이를테면 명품 중독, 연애 중독, 성형 중독까지 모두 자본주의와 연관이 돼 있잖아요. 돈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이란 점에서 그렇죠.
나카무라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욕망이죠. 명품, 젊은 남자, 아름다움을 돈으로 사는 행위는 궁극적으론 자기실현과 직결돼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사는 거죠. 명품으로 치장한 셀러브리티에 멋진 남자친구가 있고,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한 내 모습,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로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써온 거라 해석할 수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바비인형'이라고 표현한다. 9등신에 가까운 외모에 최신 유행 옷을 걸치고 멋진 남자친구와 주말 데이트를 즐기며 사는 싱글 라이프 말이다. 바비의 특징은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없는 인형 시리즈다. 게다가 바비인형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과연 남자친구 켄을 사려고 할까. 그 아이들은 바비인형을 하나 더 샀으면 더 샀지 켄을 고르진 않는다. 즉 바비는 독립된 생활을 만끽하는 여성의 상징이며, 나카무라 우사기가 원했던 인생을 종합해놓은 인형이었다고 그녀는 분석한다. 사회학자의 분석처럼 설득력 있다. 이런 냉정한 시각과 쿨한 문체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고로 명품에 눈먼 여인들에게 그녀의 이런 해석은 자신이 마치 독립된 인생을 사는 바비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이 남편과의 12년 결혼생활은 현재진행형
나카무라 우사기는 끝까지 젊은 여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미국 TV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처럼 절친한 게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괜찮은 여자의 조건이 된 지 오래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그녀가 선택한 배우자는 게이였다. 물론 그가 게이인 줄 알고 결혼했으며, 집 안으로 가져오지 않아야 할 리스트를 만들었다. 딱 한 줄짜리 리스트였다. ''연애'와 '섹스'는 가정으로 끌어들이지 말라.'
LADY 게이 남편이랑 어떻게 사세요? 무척 궁금해요. 빨래랑 요리는요?
나카무라 식사는 주로 외식을 하고, 가끔 해 먹는 요리는 남편이 해요. 빨래와 청소도 주로 남편이 하죠. 대신 제가 돈을 벌어요. 경제적인 부분은 제가 담당하죠. 아, 제 속옷은 제가 빨아 입어요.
LADY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나카무라 12년이요.
LADY 남편이 게이라니, 도대체 어떤 분위기인가요?
나카무라 남편이 엄마 같아요(웃음). 저를 잘 챙겨주고 많이 이해해줘요. 엄마처럼 따뜻하게 해주니까 자꾸 집에 있게 돼요. 지난 크리스마스엔 남편이랑 남편의 애인이랑 저랑 셋이서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보냈죠. 이상해요? 우린 일상인데.
LADY 남편을 보면서 성적 욕망을 느낀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으신가요?
나카무라 당연히 없죠! 처음부터 그런 걸 배제했으니까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면서 남자랑 사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저한테 맞지 않았죠. 집안일도 잘 못하고요. 무엇보다 상대방이 몇 시에 집에 오는지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이고, 그런 것 때문에 싸우면서 에너지 소비를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무척 피곤했어요.
LADY 남편과의 우정을 어떻게 지켜가고 있나요? 비결이 있어요?
나카무라 저희는 연애가 자유니까 그런 일로 싸울 일도 없고 속박도 하지 않아요. 또 상대방을 미화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도 없지요. 연애할 때는 상대방이 환상 속의 왕자님 공주님처럼 보이다가 결혼하면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현실의 상대방이 눈에 들어오게 되죠. 그 모습에 실망도 하게 되고요. 저희는 상대방의 단점을 알고 친구로 지내오다 결혼했으니까 단점에 실망하지도 않아요.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요.
LADY 게이와의 결혼을 추천하시나요?
나카무라 요즘은 여성들도 직장에서 일을 하니까 집에 오면 쉬고 싶고 위로받고 싶을 거예요. 제 남편은 저를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역할도 해주죠. 앞으로 직장생활로 피곤한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결혼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게이와 결혼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요. 결혼한 후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집을 나가서 그 남자와 살림을 차리면 안 되니까요. 왜냐면 아무리 게이라도 결혼한 상태니까 마지막 정조는 지켜야죠. 연애는 해도 다른 사람과 또 결혼하겠다고 하는 건 안 되죠.
1 명품 중독이 극에 달했을 때 사들인 백들.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고. 2 명품 중독을 불러왔던 샤넬의 그 가죽 재킷. 3 샤넬의 우산. 친절하게도 '비가 올 때는 사용을 주의하시라'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욕망을 실현하는 여자, 내 행복은 내가 찾는다
LADY 명품도 질릴 만큼 사봤고 연애도, 성형도 질릴 만큼 해보셨는데 즐거운 인생이었나요?
나카무라 예, 즐거웠어요. 만족하지요. 그렇지만 그만큼 버려야 했던 것도 많아요. 평범한 인생, 또 돈도 많이 들었죠.
LADY 욕망에 충실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남들의 시선도 걱정이 되고요. 어떻게 하면 나카무라씨처럼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나카무라 글쎄요. 첫 결혼에 실패했을 때 느꼈어요.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이혼을 당했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쇼핑 중독에 걸렸을 때는 'No 쇼핑'을 결심하고도 또 쇼윈도를 기웃거리는 제 자신을 보면서 정말 한심한 인간이라고 느꼈어요. 제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된 거죠. 그런 방황과 실망, 포기가 절 눈뜨게 했어요. 남자가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세상이 절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진리에 눈 뜬 거죠. 그때부터 내 행복은 내 손으로 얻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왔어요.
LADY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아온 용기가 그런 절망에서 비롯됐다니, 더 설득력 있는데요. 명품, 연애, 미모까지 여자라면 손에 넣고 싶은 것을 모두 이뤄왔는데 지금 원하는 게 있나요?
나카무라 아쉽게도 안정의 경지예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50이 넘으면서 안정됐죠. 행복하긴 한데, 좀 아쉽고 섭섭해요. 저를 빠뜨릴 무언가를 찾고 싶어요.
필자는 그녀가 쓴 소설의 애독자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같은 여자로서 속이 후련해진다. 여자의 욕망을 터부시하는 사회에서 그녀는 호기심을 불태우고 그 호기심과 욕망을 모두 현실 속에서 체험해온 아주 특별한 부류의 여자다.
명품 중독에 호스트와 사랑까지 한 그녀의 책들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설득력 있는 글재주 때문인 게 분명하다. 또한 그녀의 삶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처럼 단단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다. "샤넬 옷을 샀더니 전기와 가스가 끊겼어요", "나를 아무로 나미에로 만들어주세요"라며 소란을 피웠던 그녀는 지금 해볼 것 다 해본 후 휴식 기간을 갖고 있다. 다음에 열광할 대상은 무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사진 / 에디 리(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