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想한 사람들_일본 편
-이와사키 씨는 2016년 6월 현재도 여행길에 있습니다.
만일 당신 손안에 2천원이 있다면? 그 2천원이 하루 용돈이 아니라 전 재산이라면? 그 2천원으로 여행을, 그것도 세계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믿거나 말거나'의 주인공은 올해로 마흔 살이 되는 이와사키 게이이치다. 1991년에 집을 나서 어느새 11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여행길을 탐닉하는 모험가다.
한때 홈리스였던 이와사키 게이이치((岩崎圭一, 40)는 우연히 얻은 배표로 한국으로 건너간 것을 시작으로 200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1년에 걸쳐 세계 43개국을 여행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단숨에 정복하고 몽블랑도 섭렵했다. 수원에서 바다까지 1,300km에 이르는 갠지스 강도, 세계 최대의 내해(內海) 카스피 해도 노를 저어 건너는 기적을 이뤄냈다. 아사히신문은 그를 '철인 여행자'라고 불렀다. '슬로 여행자'라 칭한 신문도 있었다.
무전여행. 아무리 무전이라지만 초기 여행 비용이 고작 160엔이라니! 그 돈으로 어딜 갈 수 있다는 걸까? 속물인 필자는 여행의 궁극적 목적이나 심오한 의미도 궁금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 돈으로 43개국을 여행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현재까지도 여행길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물아홉 살의 봄, 도쿄 신주쿠의 홈리스가 되다
이와사키는 2001년 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길에 올랐다. 두둑한 퇴직금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는 단돈 160엔을 쥐고 무작정 도쿄로 상경한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꿈을 꾸기엔 이미 두둑한 나이였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기엔 남은 삶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이와사키 고향 군마 현의 한 환풍기 회사에 근무했어요. 문득 이런 삶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이 아닌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LADY 무작정 여행에 나선 건가요?
이와사키 여권을 들고 신주쿠로 향했어요. 도쿄의 중심이잖아요. 근데 정작 주머니 속엔 160엔이 전부였죠. 신주쿠에 도착해서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어서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어요.
LADY 돈도 없이 신주쿠까지는 어떻게 갔나요?
이와사키 친구 차를 얻어 타고 갔어요.
LADY 그럼, 여행을 떠나려고 홈리스가 됐다는 말씀이죠?
이와사키 사실 160엔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과연 세계일주가 가능할지, 그런 생각을 할수록 집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아서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신주쿠 역 주변을 돌며 신문지를 주웠죠. 역에서 한데 모여 자던 홈리스들 사이에 들어가 잠을 청했어요. 밤공기가 매우 차고, 배도 고팠죠.
LADY 배고픔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이와사키 홈리스 아저씨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했어요. 아저씨들을 따라가니 쓰레기통에 짓이겨 버려진 햄버거가 있었죠. 그걸 먹었어요. 커피 냄새, 기름 냄새에 찌든 햄버거였지만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했어요. 2, 3주쯤 지나자 먹이를 찾는 게 홈리스의 가장 큰 과제이고, 그 과제가 해결되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단 사실도 알았어요.
LADY 160엔밖에 없었다면 노숙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을 텐데, 왜 그런 길을 택했는지요?
이와사키 '일' 과 '돈'에 대해 고찰하고픈 욕구랄까? 일도 안 하고 돈도 안 버는 인생이 역설적으로 일과 돈의 중요성을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지요. 중요한 건 홈리스는 과정에 불과하단 거죠. 돈이 없어서 홈리스가 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여행을 떠났는데, 그 과정에 잠시 홈리스 생활이 포함됐던 거죠.
여행 중 숱하게 노숙생활도 했으니, 신주쿠 홈리스가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2개월간의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히치하이킹으로 일본 전국 일주에 나선다. 160엔은 비행기를 타기에도, 배를 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1년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횡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하게 차를 태워주고, 집에서 재워주었으며, 식사를 대접해주는 이도 있었다. 2002년 3월 길 떠난 지 1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연히 부산행 배표를 공짜로 얻은 것이다.
무전여행 종결자의 세계여행
"제발 목숨만 붙어 있기를…." 램프의 요정이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면, 그거뿐이었다. 부산에서 강릉으로, 중국 대륙, 홍콩을 거쳐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지나 카스피 해를 노를 저어 건너니 어느새 유럽 대륙에 닿아 있었다. 불가리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총 43개국을 여행했다. 유럽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중국에서 우연히 얻은 자전거가 그의 발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그 자전거는 거창한 마운틴바이크도 아닌, 일반 자전거였다.
LADY 쉽지 않은 에베레스트 등정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비결이 뭔가요?
이와사키 등산 경험이 전무했어요. 그래서 네팔에 2년 정도 머물면서 등산을 배웠죠. 처음 1년간은 등산대에 소속되어 그들과 같이 산을 올랐고, 그 이듬해에 드디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게 됐습니다. 등산 경험과 체력이 있으면 해볼 만한 도전이에요.
LADY 에베레스트뿐만이 아니라 몽블랑도 정복했고, 갠지스 강과 카스피 해는 노를 저어 건넜다면서요?
이와사키 가능하면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런데 강도 나오고 산도 있으니까 오르고 건너려면 제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LADY 무려 11년이나 여행을 하셨는데, 최악의 경험은?
이와사키 인도에서 해적의 습격을 받아 가진 것을 몽땅 빼앗겼고, 티베트에서는 광견의 공격으로 죽을 뻔한 적도…. 그런 일보단 차별을 받은 일이 더 가슴이 아팠어요. 2007년 보스니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영어로 "여긴 너 같은 놈이 있을 곳이 아니야"라며 침을 뱉었어요.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떴습니다.
LADY 혼자 11년을 여행하면 고독하진 않아요?
이와사키 고독을 견디는 것도 힘겨운 시간이죠. 그리고 가끔 '이대로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에 갈등이 밀려올 때도 있어요. 그럴 땐 '내 자신을 믿자, 자신을 갖자'라고 되뇌죠.
LADY 여행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 적은 없나요?
이와사키 네팔에서 한 일본인 여자를 만나서 결혼할 뻔했어요. 근데 여자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결국 헤어졌죠. 무직에다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남자에게 귀중한 딸을 맡기려는 부모는 아마 없을 거예요. 여행을 하면 만남은 많지만, 또 어딘가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사랑이 오래가지 않아요.
LADY 파혼을 겪고, 차별을 받으면서도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뭔가요?
이와사키 여행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그 가치를 알려줘요. 예를 들면 물 한 잔의 소중함 같은 거죠. 도시에선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지만, 사막에선 자기 혼자 힘으론 도저히 얻을 수 없어요. 사막에서 물 한 잔을 얻기 위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근대화된 도시의 편리함과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됐죠. 일본에 살다 보면 사는 게 뭔지, 생명의 소중함 같은 걸 잊게 돼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고 삶에 대한 활력도 생겼어요.
LADY 무려 11년이나 여행을 했는데, 무엇이 이와사키씨를 지탱하게 해주었나요?
이와사키 의지! 지금 일본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데,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여행을 통해서 국가, 사회, 인간을 들여다보고 경험한 것을 전해주고 싶어요. 다양한 세계와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도.
LADY 여행 중 겪은 최고의 에피소드는?
이와사키 새로운 나라,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최고의 기분이죠. 최악의 경험도 있지만 좋은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한국에선 어느 분이 가족처럼 대해주셨고, 중국에선 노숙하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재워주고, 밥을 주고, 돈을 주는 분들도 있었죠. 네팔에선 거의 매일 누군가가 집을 제공해줬어요. 유럽에서도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집으로 초대해주고, 쉴 수 있도록 배려받은 적이 많아요.
여비는 마술로, 욕심은 여행서 출간
가장 큰 궁금증이었던 여비는 그의 특기인 마술로 충당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마술을 하고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건 아이들이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 생일에 와서 마술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중학교 때 기술 교사에게서 배운 마술이 그의 목숨을 연결하는 끈이 되리라곤 그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이와사키는 여행의 묘미는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다. 웅대한 자연, 역사적 유산, 친절한 사람과의 만남도, 그리고 자신의 마술에 관심을 가져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마주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여행이 주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88만원 세대가 있다. 일본의 비정규직 역시 88만원 세대다. PC방 난민까지 존재한다. 거품경제 붕괴 후 찾아온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 경제, 그 시스템의 잔재는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와사키의 무전여행은 세상 저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돈 없이 여행하는' 삶을 통해 자본주의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최소한의 반기인 셈이다.
40℃가 넘는 인도를 자전거로 달리며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열이 나고 구역질이 나고 설사가 끊이질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냐'고 자신에게 물었다. 뾰족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맨손으로 해낸다면 반드시 어떤 희망이 생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앞으로 5년간 미국 대륙과 아프리카를 여행해보겠다고 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여행 중일 거라고. 지금까지 여행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는 문장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라". 이와사키의 발걸음에서 법정 스님의 말씀이 읽혔다.
11년간 43개국을 여행한 이와사키가 추천하는 여행지
<■글 / 김민정(「레이디경향」 일본 통신원) ■사진 제공 / 이와사키 게이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