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살이|02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신주쿠 하츠다이의 <신국립극장>의 소극장은, 정의신의 '재일동포 3부작' 을 재상연했다. <야키니쿠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 <그러니까 들에 피는 꽃처럼> <파마가게 스미레>가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다.
정의신의 연극은 표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사실 정의신의 극작가로서의 최고봉은 <달이 어디에 떴나>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는 연극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영화에 진출해 다시금 진면목을 선보였다. 연극과 영화의 팬들은 그의 피크가 영화에서 성공을 거둔 후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의 능력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너무나 많은 걸 보여준 인물이었기에 더이상의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을 거라 막연하게 가늠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새로운 작품을 들고 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야키니쿠 드래곤>에서 그는 곱창집을 하는 재일동포 가정을 무대에 올렸다. 연일 매진이었다. 여간해선 손뼉만 치는 일본사람들이 무대를 향해 환호했다. 커튼콜 때는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야키니쿠 드래곤>의 무대와 연기는, 보는이를 압도했다. 정의신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정정했다. 그리고 파워업되어 있었다.
며칠 전 <신국립극장>에서 본 파마가게 스미레는, 1960년대 (얼마전 강진이 일어난) 구마모토의 한 탄광촌의 이야기다. 이 탄광촌에는 아리랑 고개가 있고, 그곳에는 일제시절에 끌려왔거나 돈을 벌러온 조선인들과 가난한 일본인들이 살고 있다. 남자들은 탄광에서 일을 하고, 여자들은 광부들을 위해 술을 팔거나 수염을 깎거나, 그들의 아내로 살아간다. 세 자매 중 첫째는 술집을 운영하고, 둘째이자 주인공인 스미는 이발소를 운영한다.뚱뚱한 캐릭터의 막내는 일본인 광부의 아내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탄광이 폭발해서 광부들은 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을 앓게 된다. 스미의 남편도 막내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막내의 일본인 남편은, 조금씩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몸을 쓸 수 없게 되고, 아기가 되어간다. 스미의 남편도 조금씩 그렇게 약해져간다. 정부도 회사도 노동조합도 아무도 그들을 돕지 못하거나, 돕지 않는다. 탄광에서 일했던 '당신들의 책임'으로 무마되는데 반대하는 스미는 재판을 일으킨다.
스미 역은 지난번과 같이, 미나미 가호가 맡았다. 1964년생으로, 1984년에 영화로 데뷔했다. 눈 사이가 약간 떨어진 애교있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연기도 베테랑이다. 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현재는 와타나베 켄의 아내다. 배우로도 유명하지만, 이런 스캔들로도 빠뜨릴 수 없는 배우다.
규슈에는 수많은 탄광이 있었고, 광부들의 노동조합이 있었다. 일을 해도 일을 해도 조금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임금을 싸게 매겼고, 혹시나 폭발 사고가 일어나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쥐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얻은 석탄으로 기차를 굴리고, 집을 따뜻하게 하고 공장을 돌렸다. 석탄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모두가 잊고 살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가 떠올랐다. 후쿠시마에는 매일처럼 수천명의 작업원이 피폭당하며 일하고 있다. 그렇게 동원된 사람들은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낸다.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뿐만이 아니다. 원전을 위해 우라늄을 채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또 원전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상 방사능에서 안전할 수 없다. 그 모든 이들의 안전이 우리 생활의 편리함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지금 내가 입은 옷과 오늘 내가 먹고 있는 양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많은 땀과 피와 생명이 오늘의 나를 살리고 있는 것일까. 정의신의 연극에 나오는 사회의 저변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켜주는, 그렇지만 잊혀진 인물들이다.
몇년 전, 레이디경향 취재로 한 젊은 남성을 취재했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홈리스가 된 그는 100만엔을 모아 시골에 땅을 사서 제손으로 집을 짓고 자급자족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사회를 버린 카리스마다. "이렇게 혼자 최소비용을 생활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기 때문입니다. 몇푼되지 않는 돈으로 제대로 바느질된 옷을 살 수 있고, 100엔이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살 수 있어요. 값싸게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회죠."
누군가의 눈물이 싸고 싼 상품이 되고, 그 싸고싼 상품을, 아마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생산했을 또다른 누군가가 구입한다. 산업혁명 직후, 자동차 회사들은 젊은이들에게 자동차를 만들게 하고 역시나 그들에게 팔아먹기 위해 자동차는 매우 쿨한 상품이라고 포장한다. 더불어 가족의 표상이기도 하다. 4인 가족의. 돈을 벌어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해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자동차 회사는 설득하기 시작한다. 꼭 아내가 없어도 문제 없다. 조수석에 태울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으면 되니까. 그렇게 포장된 자동차는, 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몇 년을 일했을 사람들의 손에 간신히 닿는다. 언젠가 나도 자동차를,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 가족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작은 희망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크나큰 힘이 된다.
정의신 연극에는 반드시 미녀, 열심히 사회와 부딪치다 깨진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따르는 후배나 동생이 등장한다. 연극을 이끄는 이런 주요 인물 이외에, 게이 (또는 게이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뚱뚱한 캐릭터도 꼭 들어있다. 뚱뚱한 캐릭터가 주는 푸근한 웃음은 정의신 연극의 묘미다. 그는 뚱뚱한 캐릭터를 매우 사랑스럽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게이 캐릭터는 바른말의 화신이다. 게이 캐릭터가 가장 정의신 자신에게 가깝다고 본다. 정의신이 하고 싶은 속내를 게이 캐릭터가 대변한다.
10년도 더 된 오래전에, 정의신을 취재했다. 인터뷰 내용은 모두 잊었다. 다만 그날이 크리스마스 직전이었고, 나는 모에 샹동을 사들고 사무실을 찾아갔다. 마침 최양일 감독이 함께 있어서 횡재했다며 홀로 쾌재를 불렀다. 정의신은 내내 미소를 띄우고 있었고, 그가 쓰는 단어들이 굉장히 세련되었던 걸 기억한다.
연극에서 스미의 꿈은, 향수 냄새가 폴폴 나는 <파마가게 스미레>를 차리는 일이다. 매일 광부들 수염을 깎으면서 스미는 언젠가 여자들을 아름답게 꾸며줄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 연극은 그렇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정의신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조언한다.
살아간다. 살아가다보면 기쁜일도 힘든일도 있다. 힘든일도 돌이켜보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다고, 그렇게 말하는 정의신. 삶을 긍정하는 사람의 연극을 보고 있으면,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어진다. 막이 내리고 극장을 나가면서, 누군가에게 조금더 친절을 베풀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신의 연극은 마치 미사가 끝난 후 돌아가는 것 같은, 묘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