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10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경희란 이름에 대한 편지 감사합니다. '경희'. 그러고 보니 제 친구 중에도 경희란 친구가 있어요. 이제 연락은 되지 않지만. 중학교 시절의 경희는 키가 크고 날씬한 친구였습니다. 때로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불필요한 질문을 해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희'가 들어가는 단어가 부러웠어요. 어릴 적 인형에게는 '유희'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곤 했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저를 부를 때 "우리 민정이 이쁘다"고 하셨습니다. '민정'이란 이름에는 언제나 '우리'와 '이쁘다'가 따라 왔습니다. 저는 첫손녀였습니다. 할머니는 보기만 하면 '이쁘다'를 연발하셔서, 저는 할머니를 '이쁘단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늘상 '이뻐'란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저는 정말 제가 예쁜 줄 착각하고 살아왔고, 실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밉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보다 '예쁘다'고 내 맘대로 먹고 살면 조금 편합니다.
저는 '김민정'이 세상에 저 하난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시골 학교에는 학생 수가 적어서 이름이 겹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도시로 전학을 갔습니다. 다행히도 같은 반에 김민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옆옆집에 김민정이란 저와 나이가 한참 떨어진 아이가 살았습니다. 저는 아마 9살쯤 되었고, 그 아이는 아직 네다섯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이 엄마는 같이 놀라고 저를 불러놓고는 장을 보러 갑니다. 저는 공짜 베이비 시터가 됩니다. 나이탓도 있겠죠? 아이는 여간해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장난감을 던지기도 하고, 절대 치우지 않습니다. 저는 좀 조숙한 편이었습니다. 고집스런 아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가장 짜증스러운 건 그 아이의 이름입니다. 이런 아이가 김민정이라니! 너도 누군가의 '우리 민정'이라니!!!
싸이월드 기억하시죠? 싸이월드에서 19〇〇년 김민정을 치면, 무려 365명의 김민정이 검색됩니다. 정보는 늘상 갱신되는 것이어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1976년에 태어난 아이들 중 300명이 넘는 아이가 김민정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설마, 했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흔하다니! 왠지 사랑할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19〇〇년 〇월 〇〇일에 저는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과일을 한 가득 안는 태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친가는 아들을 바랬습니다. 딸이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움찔 했습니다. 남자 아이 이름 밖에 준비해 두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할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나서 제 이름을 작명소에서 받아옵니다. 저는 그렇게 '김민정'이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1976년에 태어난 여자 아이의 이름 중에 김민정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작명소의 농간일까요? 작명소가 정한 그해에 태어나는 여자 아이 이름으로 가장 좋은 이름이 '민정'이었겠지요. '김'씨 성이야 워낙 많고요. 저는 옥돌 민, 조정 정을 씁니다. 저와 같은 이름은 많아도 저와 같은 한자를 쓰는 김민정은 드뭅니다. '조정의 옥돌'?
대학 시절에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입니다. 오래 한국어를 공부해왔는데 더이상 배울 곳이 없어서 제가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제 이름을 듣더니 '가정의 보석'이 되라는 의미로 풀이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괜히 울컥 했습니다. 그 분은 제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가정의 보석이 되는 건 정말 좋은 일일까? 내가 여자기 때문에 그런 풀이를 한 건 아닐까? 내가 남자였으면 '나라의 보물'이 되란 풀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정부 핵심의 보석 같은 인재 말이예요. 저는 젠더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분노를 느낍니다. 그게 아무리 좋은 해석이더라도.
첫째 아이는 하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 자기 아이에게 지어주는 이름 인기 넘버 원입니다.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하면 온리 원의 의미도 있지요. 제각기 다른 꽃처럼 개성있게 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온리 원의 길을 만들라고. 둘째는 하루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본어로는 봄을 의미합니다. 하루하루 봄처럼 화사하고 따뜻하게 살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저에게 하셨듯 아이들을 '우리 하나' '우리 하루'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렇게 불리울 때 가장 마음이 강해졌거든요. 누군가가 나를 '우리' '이쁜'으로 부르면 근거없는 자신감이 불 타 오릅니다.
제 꿈 중 하나는 수많은 김민정 중 100명만 취재해서 글을 쓰는 일입니다. 나와 다른 김민정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서요.
저는 나라의 보물이 되지도 못했고 딱히 가정의 보석도 아닙니다. 이름의 풀이처럼 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김민정이란 이름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이름을 별도로 사용하지도 않고요. 저는 평생 김민정으로 불리우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이쁜 김민정으로.
도쿄여자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