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중요한 것

서울여자 도쿄여자 #18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저는 16살, 고1 때 도쿄에 왔습니다. 제가 그 때 깜짝 놀란 일이 뭔 줄 아세요? 고등학교에 야자가 없단 사실이었어요. 무려 고등학교가 3시 반에 수업이 끝나더라고요. 저는 한국에서 넉달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대학부속 여고입니다. 늦어도 7시 50분까지는 등교해야 했고, 점심을 먹고 청소를 하고, 정규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을 하고 저녁을 먹고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어요.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저는 도통 알 수가 없었어요. 어떤 아이들은 10시에 수업이 끝난 후 학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전세계 모든 나라의 아이들을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하물며 한국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는 나라, 한국보다 선진국이라는 불리우는 나라인데,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딴 나라였습니다.


일본의 고등학교는 9시에 정규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3시반이면 수업이 끝나요. 집에 오면 5시입니다. 학원에 가는 아이도 간혹 있어요. '크라부(클럽)'이라 부르는 학교 동아리 활동이 활발합니다. 밴드부, 배구, 농구, 야구, 축구, 테니스 등등 프로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청춘을 바쳐 몰두합니다. 공부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을 스포츠나 취미 활동에 사용해요.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저마다 잘하는 운동이 하나쯤 있습니다.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 후 1학기가 끝났는데, 아직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학교에서 들은 적은 없어요. 초1의 목표는 "사이좋게 지내기" "준비물 잘 챙기기"입니다.


입학식 날은. 6학년생들이 신입생을 한 명씩 맡아서 신발장부터 교실로 데리고 가, 책상에 앉히고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가르쳐줬어요. 입학식에선 2학년 아이들이 전원 무대에 올라가 1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히라가나를 읽게 되었어요." "덧셈 뺄셈을 할 수 있어요." "줄넘기에 성공했어요." "팽이치기에 성공했어요." "겐다마(일본전통놀이)도 할 수 있어요." "수영을 할 수 있어요." 등등이에요. 공부보다 운동이나 그 밖의 취미 생활에 대한 소개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줄넘기를 넘고, 팽이를 돌리는 모습을 선 보였어요. 남들과 비슷한 수준, 즉 평균만 하면 되는 곳이 일본이란 면을 확실히 피력했습니다. 교장선생님 말씀도 작위적인 부분이 없고, 5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2학년이 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될 테니, 안심하고 맡겨달란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 3번 보호자 모임이 있었고, 그때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있었는데, 한 번도 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잘 해라"는 소리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고,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에요. 아이들은 입학하자마자, 돌아가면서 급식당번과 주번을 맡게 됩니다. 2교시와 3교시 사이에 20분간 쉬는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에는 밖에 나가 뛰놀 것을 요구합니다. 1학년 아이들에겐 철봉이 가장 인기이고, 고학년 아이들은 도지볼과 축구를 하며 놉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20분 휴식 시간은 모든 아이들이 밖에 나가 뛰노는 시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뛰노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생활하며, 조금 크면 누구나가 하나쯤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클럽활동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초등학교에도 주말마다 배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치어 등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원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겐 축구가 인기가 있고, 여자아이들에겐 체조가 인기입니다. 일본 전통축제인 마츠리 참가를 위해 북교실, 봉오도리 춤교실도 있어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즐기는 일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취미를 찾는 일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일본에선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다양한 스포츠에 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은 아직 원하는 스포츠를 만나지 못했어요. 발레를 배우고 싶어해서, 가을부터 다시 발레에 도전해볼 생각힙니다.


공부를 안해도 취업이 되냐고요? 일본 고교생의 대학진학율은 약 50%입니다. 1980년대에는 25%였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30%대가 되었고 현재 약 50%입니다. 절반만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그 이유가 대학졸업이 큰 메리트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대졸자의 평생 수입은 약 2억 9천만엔이고, 고졸자의 경우는 2억 4천만엔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졸자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대졸자보다 평생 임금이 20% 더 높습니다. 일부 유명 대기업은, 엔트리 시트에 졸업 대학명을 적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업 후에 승진에 차이가 올 수도 있겠지만, 졸업대학 이름을 적지 않는 경우, 입사 시험에서 학력으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처럼 공식 영어 점수를 입사 시험 때 적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대학교 시절의 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곳도 거의 없고요. 일본 시장은 인구 1억 2천만의 내수에 의존하고 있어서 영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흔히들 일본을 '갈라파고스'라 말합니다. 전세계에서 아이폰이 히트를 치기 시작하던 시절에 일본은 여전히 갈라파고스 휴대폰을 판매하고 있었고, 온라인 게임도 뒤늦게 빛을 보고 있으며, 온라인에서 만화를 읽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어쩌면 이곳은 갈라파고스이기 때문에, 공부나 학력을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갈라파고스를 갈라파고스로 있게 했던 일본인구 1억 2천만. 그런데, 이제 인구장벽이 허물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도 세계의 흐름과 맞물려 피터지는 경쟁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처럼 야자를 하고 밤늦게 학원에 다니는 사회가 일본에도 올까요? 저는 이곳이 그런 의미에선 오래 갈라파고스였으면 좋겠습니다. 3시 반에 학교가 끝나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10대. 청춘을 공부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에 투자했으면 하는 게 엄마로서 제 마음입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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