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17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안녕히 지내고 계시죠? 임신했을 때, 밤에 자주 깨서 할 일이 마땅치 않을 때, 트위터나 한국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시부모님과의 관계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매주말 시댁에 가는 게 스트레스란 이야기며, 아무도 없을 때 집에 들어오시는 시부모님 때문에 고민이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며칠 전 시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다음주에 도쿄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너희집에 잠시 들려도 되겠니?"
저희 시부모님은 저희집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비상용이에요. 저희가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에 대비해서, 또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요. 열쇠를 드렸지만 한 번도 시부모님의 의도대로 저희집에 와서 문을 연 적이 없습니다. 열쇠를 가지고 계시지만, 오기 전에 반드시 연락을 하고 오시고, 시부모님이 그 열쇠로 저희집 문을 연 적도 없어요. 저희집에는 일년에 한두 번 오시며, 오시기 한 달 전에 예약을 하십니다. 그래야 저희가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거든요.
일본은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다지 가깝지 않아요. 요즘은 친정 가까이에 사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저희 옆옆집 50대 아주머니는, 친정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고요. 그 옆집도 50대 여성이 친정에서 남편과 대학생 딸과 살면서 고양이와 개를 키우고 있어요. 동네에서 가장 친한 아이 엄마도 같은 아파트에 친정 부모님이 살고 있고, 요즘 이사온 딸아이 친구도 친정이 이 동네라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친정이 아이를 맡기기에 딸들 마음이 편해서겠지요. 친정이 없어서 시댁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시댁과 만날 일이 많겠지만, 친정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친정에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시댁에 일년에 2-3번 갑니다. 설날, 5월의 골든위크(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의 일본의 장기간 연휴), 그리고 여름 연휴요. 시어머니는 저에게 설거지 밖에 시키지 않으세요. 처음엔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내 부엌이고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하셨어요. 부엌은 일본 가정 주부의 성역입니다. 그 성역을 쉽게 며느리에게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으시고, 지저분하거나 정리가 덜 된 부분을 보이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결혼해서 올해로 십년인데 시댁에서 제가 요리를 한 것은 딱 세번입니다. 김밥, 삼계탕, 그리고 게찌개. 시댁에서 제 일은 접시 나르기와 설거지예요. 그래도 저는 형님에 비하면 양호한 편입니다. 형님은 일본인인데, 설거지도 한 번 안하는 며느리예요. 시댁에 오면 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다가 다음날 아침에 소리도 없이 집에 갑니다. 한국남성이 가진 고분고분한 일본여자. 그런 건 상상속의 동물이겠죠? 네 일본여성들은 조용합니다. 하지만 자기 의사가 확고해요. 해야할 말은 확실히 합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보면, 어찌나 말들을 조리있게 차분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형님도, 잘 웃고 유순한 성격이지만, 며느리라서 꼭 설거지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설날엔 차가운 음식을 먹어요. 설에 요리를 하면 불의 신이 화를 낸다고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찬합에 든 차가운 요리를 먹는데, 저희 시댁은 그 요리를 백화점에서 구입합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도 형님도 저도 편하게 보낼 수가 있지요. 청소와 빨래는 시댁에 가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자랑이 아니고, 시댁에 가면 며느리는 손님이에요. 좋던 싫던.
시댁에 가서 먹고 자고 놀다 오는 생활인 건 분명해요. 제가 늦잠을 자도 어머님도 아버님도 남편도 아무도 깨우지 않아요. 아이들이 절 깨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쉬운 건 또 아니예요.
시어머님은 저보다 남편 말을 믿습니다. 당연하죠. 시어머님의 자식은 제가 아니고 남편이니까요.
언제든가, 길을 걷다가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머님이 "얘, 저 사람들 한국사람 아니니?"라고 하시기에 "중국어예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한국어라고 우기신 적이 있으세요. 그 때 남편이 중국어 맞다고 하자, 바로 "어 내가 착각했네."라며 꼬리를 내리셨습니다.
남편이 시댁에 내려가자마자 눈다래끼가 났는데, 제가 아이들에게 옮으니까 수건을 다른 걸 써달라고 부탁하자, 옆에서 듣던 어머님이 "눈다래끼는 안 옮아서 괜찮다"며 남편을 감쌌습니다. 어머님에게는 저와 손주보다 늘 남편이 우선이지요. 그래서 저는 좀 섭섭하고, 답답하고 때론 눈물이 날 때도 있어요.
얼마전 시부모님이 오셨을 때, 남편이 저희 엄마가 물려주신 물건을 아무 생각없이 버리려고 해서 저랑 한바탕 했는데, 당연히 어머님은 남편 편을 드셨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이 서운했어요.
저는 시부모님의 딸이 될 수 없고, 시부모님도 저희 부모님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건 아무래도 '거리감' 같습니다. 약간의 서운함은 그래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