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1의 학원생활

서울여자 도쿄여자 #21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히라가나라도 좀 떼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집 근처 구몬에 보냈습니다. 구몬, 제가 어렸을 때는 공문이라고 불렸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공문 수학에 다녔어요. 제 사촌동생도 그랬습니다. 사촌동생은 어릴 때부터 무척 야무졌어요. 동화책을 달달 외웠고, 덧셈 뺄셈도 암산으로 척척이었습니다. 저는 사촌동생이 구몬에 다니는 게 매우 부러웠습니다. 사촌동생이 야무진 게 구몬만의 덕택은 아니었을 텐데 저는 사촌동생이 구몬에 다녀서 야무지다고만 생각했어요.


저희집은 공부를 시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부모라니! 재밌죠? 아빠는 어릴 때부터 시골집에서 서울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서울의 큰집에서 아빠와 가정교사와 가사도우미가 함께 살았어요. 아빠가 중학교 시절부터. 아빠는 그렇게해서 한국의 유명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아빠는 공부라면 혀를 내두릅니다. 아빠에게 학교는 '납세자를 만드는 곳'이자 '국가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생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학교를 빠지고 자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엔 아직 해외여행 자유화가 풀리지 않아서 비자는커녕 쉽게 여권을 취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저희는 주로 한국 국내여행을 다녔어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소금강의 반짝이는 물빛과 강원도의 감자전과 부곡 하와이의 뜬금없는 박제박물관을 저는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저희집에는 서재가 있었어요. 그렇게 거창한 공간은 아니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쌓인 공간입니다. 아빠는 소설, 잡지, 만화 가리지 않고 읽었어요. 저는 그 방에서 만화를 보면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그 흔한 참고서도 필요없다는 집이어서 낱말풀이 숙제는 국어사전을 찾아서 적어갔고, 그 외 잘 모르는 숙제는 백과사전을 뒤지거나, 실제로 은행이나 무슨 재단에 전화를 걸어 답안지를 작성해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학교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독특한 학생이 되어 갔습니다.


당연히 학원은 보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성적이 좋았습니다.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제가 그 반이 되면 "봉이 들어왔다"며 반가워하셨고요.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를 가끔 빠져도, 별 탈없이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하튼 제가 학원에 다니지 못해서, 구몬에 대한 로망 때문에 큰 아이를 구몬에 보냈습니다. 아이는 구몬에 다닌지 두주쯤 되자 히라가나를 쓱쓱 쓰기 시작했어요. 단지 산수는 같은 문제를 여러번 풀어도 아직 답을 구하는 법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산수는 제가 지도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처럼 커서 일본어를 배운 사람에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정갈하게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제가 정갈하게 써본 적이 없으니까요. 겨우 고교 3년을 일본에서 보냈고, 대학시절엔 컴퓨터로 논문을 쳐서 제출했습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급하게 외우기만 했지, 신중하게 글자 하나하나를 예쁘게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 없어서, 구몬에 맡겼고, 덕분에 아이는 정갈하고 진지하게 글씨 쓰는 법을 배워 왔습니다.


일본 초1의 아이들을 보면, 남녀 할 것 없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 피아노 학원입니다. 그 외에 남자 아이는 주말에 축구 동아리에 참여하고, 여자 아이는 발레를 배우기도 하지요. 그 외에는 학원이 별로 없어요. 주변에는 영어 학원도 없고, 구몬 이외에 학습 학원도 없습니다. 집에서 학습지를 푸는 아이는 여럿 있고요. 초1은, 학교에 적응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초4학년쯤 되면 학습 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중학교 수험을 치뤄야 하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초중고대 모두 입학 시험이 있습니다. 사립 대학의 부속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고스란히 그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진학하게 됩니다. 어려운 대입 시험을 볼 필요가 없지요. 단지 초등학교부터 사립을 다니면 학비가 비싸다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대학 부속 사립으로 보내려는 부모가 증가합니다. 그치만, 이전에 말씀 드렸듯 일본의 대학 진학율은 50%. 즉, 누구나가 다 아이를 대학 부속 사립으로 보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부유층은 자녀를 국공립에 다니게 해서, 일반인들의 감각을 기르게 한 후, 중고시절에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경우가 눈에 뜨이고, 대기업의 부장, 과장층은 외국에 자녀를 보내지 않는 대신, 사립 부속 중고교에 보내려낸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하튼 초1-초3은 아무래도 '놀아야 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선행 학습이란 단어를 일본에선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요. 전 일본에선 그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에선 공부를 잘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낙인 찍히기 보다,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운동도 어느 정도 하며, 코믹한 이미지까지 겹쳐지면 금상첨와입니다. 중간만 해서, 중간만 되는 회사에 들어가 평범하게 사는 것을 일본의 부모들은 원합니다. 너무 뛰어나지도 않고 너무 못하지도 않게. 2015년 민간회사 쿠라레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부모는 아들에게는 공무원과 엔지니어가 되길 원하며, 딸에게는 간호사와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고 합니다. 어때요?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인데, 자식에게 바라는 꿈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죠?


여하튼 7개월 아이를 구몬에 보내다 오늘 구몬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상의한 결과,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어요. 구몬 선생님은 아쉬워했습니다. 저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이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이 끝맺어지는 점에서요. 발레도 발레지만, 구몬을 그만두면 아이에게 가타카나와 한자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한 걱정입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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