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공부와 자존감

서울여자 도쿄여자 #22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5월 중순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봤다며, 종이를 건넵니다. 글쎄 그 시험지에 47점이라고 적혀있었어요. 47점. 뭐야? 50점 만점인 거야? 근데 아무리 봐도 100점 만점에 47점이었습니다. 저는 경악했어요. 왜냐면 저는 정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낮은 점수는 76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어는 당연히 100점 또는 98점이었고, 국사, 지리, 세계사 등 모든 암기 과목이 100점이거나 하나쯤 틀리는 수준이었어요. 학생들 평균이 30점 나온 물리 시험도 저는 90점대였습니다. 아니 나의 DNA가 어디로? 하며 오만한 마음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 친구 꺼 안 베끼고 내가 혼자 다 풀었어요."


여하튼 그 시험 점수 때문이었는지, 그 후 아이의 산수 점수가 모두 80점 이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학교에선 점수가 좋지 않은 학생을 각 반마다 5-6명쯤 추려서, 방학 후 3일간 하루 1시간씩 보충 수업을 해줍니다. 초2-3학년은 5일간 보충수업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나머지 공부를 해야하는지는 비밀이에요.

우선, 나머지 공부반을 <파워 업 클래스>라고 부릅니다. 저는 파워 업 클래스에 참여하라는 편지가 왔을 때, 그게 나머지 공부반인지도 몰랐어요. 아주 교묘하죠? 절대로 공부부족반, 나머지공부반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둘째, <파워 업 클래스>를 들어야 하는 학생이 누구인지 비밀이에요. 담임 교사는 <파워 업 클래스> 학생에게만 몰래 참가희망서를 배부합니다. 그러면, 보호자는 출석에 도장을 찍어 보냅니다. 결석을 할 경우, 어떤 식으로 집에서 공부를 할지에 대해 꼼꼼히 적어 내야 합니다. <파워 업 클래스>가 열리기 전까지 같은 반에서 누가 참여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셋째 <파워 업 클래스>에 참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감추기 위해 학교는 다양한 방편을 준비해두고 있어요. 이 파워 업 클래스 참여자는 매일 학교 갈 때 쓰는 란도셀 대신 일반 가방을 들고 가도록 하고 있어요. 혹시나 오가는 도중에 친구를 만났을 때, 방학인데 학교에 가는 것이 알려져, <파워 업 클래스> 학생이란 게 들통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파워 업 클래스>가 열리는 기간 중에는, 교문을 경비 아저씨가 삼엄하게 지킵니다. 다른 아이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며,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야 학교를 오픈합니다.

또, 일본 초등학교 신발장에는 아이들 이름이 적혀 있어요. 혹시나 이 기간에 학교에 등교한 것이 탄로날까봐 신발장도 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파워 업 클래스> 참여 학생은, 신발을 교실까지 들고 들어가서, 교실에 미리 마련된 신문지 위에 놓게 하고 있습니다.


007 첩보원 작전 같죠? <파워 업 클래스>는 이렇게 비밀리에 열리는 나머지 공부 교실입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 아니 시험 점수가 나쁜 것은 숨겨야 하는 일일까요? 저는 그게 딱히 나쁜 일은 아니고 감춰야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자신의 성적이 나쁜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비관할 수 있고, 그런 점이 드러나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치만 아이를 너무 약하게 키우는 건 아닌지 싶은 마음도 들어요. 성적이 탄로나고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 저희 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되었잖아요. 나머지 공부를 하는 아이가 있는 건 알았지만, 지금에 와선 누가 나머지 공부를 했는지 눈꼽만큼도 기억이 나지 않고요. 하지만, 성적 때문에 자존심이 다칠 지 모를 아이들을 위해, 007 작전은 오늘도 시행됩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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