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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Sep 01. 2016

부모의 책임

서울여자 도쿄여자 #36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아침부터 티비에선 한 엄마가 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사과중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카하타 아츠코, 61세입니다. 그녀는 젊었을 때 아무도 모르는 배우였습니다. 드라마의 단역과 연극무대를 오가다가 간혹 조연으로 열연을 했고, 약 15년 전, <창가의 토토>를 쓴 구로야나기 데츠코와 2인극을 한 후,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타면서, 10년전부터 베테랑 배우로 티비와 영화까지 폭을 넓혔습니다. 연극배우로 쌓아온 연기력과 관록은 그녀가 50세가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그렇게 큰 인기를 누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뒤늦게 핀 그녀의 꽃을 꺾은 것은, 그녀 자신의 연기력, 스캔들, 병마가 아니라, 그녀가 혼자 키워온 아들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자, 배우로 막 발을 디딘 다카하타 유타는, 일로 갔던 어느 온천 여관에서, 종업원 여성을 성폭행했고, 바로 검거 되었습니다. 만 22의, 유명 배우를 어머니로 둔, 아들은 처음엔 어머니 덕분에 티비에 출연을 했지만, 요즘은 밝은 캐릭터와 타고난 연기력으로 어머니의 후광을 벗어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이번 범행은 일본 열도를 흔들었고, 결국 어머니는 무려 한 시간 이상 기자들의 질문에 정성을 다해 대답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아들이 성인인데 왜 어머니가 사과를 해야하느냐고 꼬집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이 성인이긴 하지만, 어머니 덕분에 방송을 타고 있으니, 어머니가 사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어머니란, 아니 부모란 자식을 언제까지 책임져야 할까요? 


저는 평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사죄를 하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더 큰 의미에서요. 


엄마는 제가 스물이 되자, 네 인생은 네가 책임을 지라고 했습니다. 용돈을 끊고, 연애도 마음껏 즐기라고 했어요. 집에 안 와도 좋으니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려달라고, 엄마와 딸의 신뢰는 딸이 엄마가 모르는 곳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아니라, 엄마가 아는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일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요. 그렇다면 엄마는 그걸 막지 않을 것이고, 네가 늘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하지만,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엄마는 매우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스물이 되자 제 손을 놓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고, 가끔 혼자 사는 남자친구네 집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언제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오늘 누구누구네서 자고 갈게."라고요. 엄마는 "어, 그래. 누구누구에게 안부 전해줘."라고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평가해주길 바랬어요. 예, 저는 엄마에게서 독립을 했지만, 여전히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의 감정을 거치게 했고, 남자친구과 있을 때는 꼭 엄마에게 전화해, 상황보고를 했습니다. 네, 저는 반은 독립을 했지만, 반은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독립한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과 제 신체적인 자유였어요. 하지만 제 행복에 대해서는 완벽히 독립하지 못햇습니다. 아니, 안 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가치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처음 해보는 연애여서 제 삼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어요. 그럴 때 엄마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행복'. 그걸 추구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게 뭔지 너무나 애매할 때가 있어요. 이 길을 가야 행복할지 저 길을 가야 행복할지. 엄마는 언제나 "네가 택한 길을 천천히 가다 보면, 보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월급이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또다른 형체로 네 곁에 다가올 것이라고요. 엄마는 늘 저를 믿어주었고, 제가 연애로 고민할 때는 상담도 해주었습니다. 자식으로서 역시나 완벽한 독립은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사상적으로 독립했다고 하더라고, 엄마의 의견이 궁금하니까요. 엄마는 아마 제가 행복한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부모의 책임이 너무나 커서 매일매일이 쉽지 않습니다. 초1 큰아이가 방학 숙제를 모두 끝냈는데, 그 방학숙제를 가방에 챙겨넣어주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부모란 아이가 다 하지 못한 것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 같아요. 아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아이에게 맡기고, 아이가 하지 못한 부분을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 아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더 커지면서 서서히 엄마로서 아이의 손을 놓게 되는 거겠지요.


저는 아이가 스물이 되면, 이제 너는 자유라고 선언할 생각입니다. 네 신체적 자유는 이제 네 것이니, 어디를 다녀도 좋고, 언제 집에 들어와도 좋다. 하지만, 네가 어디에 있는지는 반드시 알려달라. 사랑도 마음껏 하거라. 아름다운 사랑을. 그렇게 말해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제 손을 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갓 스물이 되었던 저처럼 아마 당황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사랑을 하고 저에게 연애 상담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서로가 서로의 손을 놓아도, 눈에 보이지 않은 끈으로 묶여있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이란 걸, 아이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제 엄마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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