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 도쿄여자 #36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배 수확 프로젝트! 와, 너무너무 기대가 됩니다. 봄에 피는 새하얀 배꽃을 참 좋아했어요. 그 분들은 아마 그 아름다운 배꽃도, 그리고 맛있는 배도 누리시겠죠. 꼭 크나큰 수확이 있기를 멀리 일본에서 빌어봅니다.
제가 하고 싶었는데 도전해 보지 못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은 만화가예요. 어릴 때부터 만화가를 동경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공부는 접고 만화가 연수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앞으로 제가 할 수 있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해보고 싶은 일을 꿈꿔요.
예를 들어 책방. 19금 책방은 어떨까요? 성인용 소설이 즐비하고(성인용이라고 해서 야하기만 한 책이 아니라, 품격도 있고, 재미도 있는 책을 모으고 싶어요), 성인용 만화, 그리고 커튼 안 쪽에 자위기구라든가 성생활을 돕는 재미난 상품들을 모아 진열하고 판매도 해보고 싶어요. 아기자기하고 컬러풀한 공간으로 꾸며서, 성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이 자주 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술을 마시는 바처럼 카운터를 만들어서, 거기에 자위기구를 꺼내놓고 상품평도 해보고, 소설을 같이 읽어보기고 하고, 그런 19금 책방이요. 어느날,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찾아와 연애소설을 사가고, 어떤 날은 오동통한 여성이 연인과 함께 찾아와 성인용 도구들을 같이 만져보기도 하는, 그런 책방을 그려봅니다.
카페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일명 '수유카페'. 수유하는 여성들의 전용 공간입니다. 카페인이 없는 커피와 카페인이 없는 차를 제공하는 카페예요. 수유하기에 좋은 다양한 제품들, 그리고 아기를 위해서는 분유를 판매합니다. 분유는 한 잔에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이유식도 제공하고요. 연령제한, 성별제한이 있어서 오로지 여성, 그리고 만 2살까지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좀 더 큰 형제가 있는 경우를 대비해, 육아도우미가 있는 키즈 카페를 옆에 병설하면 더 좋겠지요. 수유실처럼 막힌 공간이 아니라, 서로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고, 아기가 울어도 신경을 안 써도 좋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실을 원하는 고객에겐 개인실로 모시고. 사실 밖에 나가서 가슴을 드러내고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답답한 수유실이 아니라 넓은 카페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수유를 하고, 카페 안 한 쪽에 기저귀 가는 곳을 두어서 기저귀도 편하게 가는, 오로지 아기와 보호엄마의 편의를 위한 수유 카페입니다. 수유 마사지사가 있어서, 맛사지도 받을 수 있고요. 육아에서 아빠를 제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네요. 그치만 가슴 드러낸 수유 카페에 남성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여성들은 불편할 것 같습니다. 아예 수유 목욕탕을 차려볼까요? 목욕도 하고 수유도 하고, 벌거벗고 있어도 괜찮은 그런 공간.
잡화점 계획도 있습니다. 온리 보더샵. 온세상의 보더나 스트라이프로 된 물건만 취급합니다. 운동화에도 줄이 들어있어야 하고, 필통도 줄무늬여야 하며, 연필이건 휴대폰 케이스건, 티셔츠건 오로지 줄무늬만을 판매하는 가게입니다.
여하튼 무엇을 해도 돈이 필요합니다. 어쩔 수 없이 상상만 해봅니다. 상상만 하다가 소설로 옮겨봅니다. '온리 보더 샵' 또는 '노 보더, 노 라이프샵'의 주인공은 3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그녀는, 영화를 사랑합니다. 매일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갑니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연애를 합니다. 그는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입니다. 둘의 대화는 늘상 영화에 관한 것입니다. 여자는 긴 치마를 즐겨입습니다. 보더를 사랑해서, 티셔츠는 언제나 줄무늬입니다. 그녀는, 프랑스 브랜드 아네스 베의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입습니다. 쫀쫀한 순면의 감촉이 그녀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19금 책방'의 그녀는 40대입니다. 그녀는 오랜동안 주부생활을 했습니다. 어느날 동네 앞에 가게가 하나 비었고, 비자금이 조금 있던 그녀는 가게를 인수 받아 책방으로 꾸렸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번듯한 회사의 회사원입니다. 부부사이에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탈을 꿈꿉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치만 1%부족한 무언가를 그녀는 갈망합니다. 그녀의 꿈은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제는 일본 왕세자의 아내가 된, 마사코비처럼 활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유학을 했고,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녔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니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저 회사란 틀이 불편했고 그러던 중 결혼을 하면서 '옳거니'하며 직장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책들을 추려서, 출판사에 문의를 하고, 단 10권으로 우선 책방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조금씩 책장을 채워나갑니다.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간간히 의뢰가 오는 기사를 쓰고, 월간지에 연재를 하고, 가끔 강사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사원으로 취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문제도 있어서 당분간은 또 이렇게 프리랜서로 살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생각한 가게를 꾸리고 사는 상상 속의 여자들을 글로 풀어보렵니다.
참, 그러고보니 또 한가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네요. <유고문집>과 <자서전>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꾸리고 싶습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면,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사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죽음 이전에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받아 적고 싶습니다. 또 이미 타계한 사람의 가족들의 이야기나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나 글을 모아 <유고문집>만 전문적으로 제작해주는 1인 출판사도 제가 해보고픈 일 중 하나입니다.
저는 꿈꿉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후엔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앞으로 10년 동안, 글을 열심히 쓰고, 그림책도 펼쳐내고, 만화와 관련된 일도 해보고(원작), 그렇게 가서 10년 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릴 수 있다면,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열심히 만나고 보고 배우면서 글을 쓰는 일이 제 인생을 수확하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 된다면 나머지 10년은 열심히 쓰면서 여행을 다닐 생각입니다.
도쿄여자 김민정, 2016/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