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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Sep 16. 2016

영화감독, 구수연

CF감독, 작가, 영화감독

#이 기사는 2002년 인터뷰 기사입니다


구수연  1961 야마구치현 시모노세끼출생. 재일한국인2세. 26살때 CF디렉터로 데뷔. 이후 케빈 코스트너의 산토리 모르츠 맥주, ‘벗어도 자신있어요의 TBC 에스테틱 살롱, 장 르노의 HONDA 화제의 CF를 제작하는 한편, 울프스의 뮤직비디오 제작  작가사로서도 활동중.


 CF계의 기재(奇才) 통하는 남자, 구수연.

 텔레비전 광고의 실력파 디렉터 구수연이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자살한 누나에게 조국 한국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14살 재일한국인 소년은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누나의 시체를 차에 싣고 하카타로 향한다. 이엽기적인 드라이브를 그린 영화‘우연히도 최악의 소년 기재 구수연의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긴장을  감춘채로 고탄다(五段田)에 자리한‘하드 로맨틱커스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새하얀 벽과 새하얀 계단, 계단 손잡이에만 상큼한 오렌지색을 입혀놓았다. 30명쯤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듯한 직사각형 테이블도 색잃은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고, 대신 테이블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파스텔 컬러의 의자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구수연은‘창고일 뿐’이라 일관했으나 내게는꼭 한 번 일하고픈 화사하고도 사치스런 공간’으로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 첫소설 제목이‘하드 로맨틱커(HardRomanticer)’였다. 이 사무실 명칭도하드 로맨틱커스(Hard Romanticers)’인데,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요?

구수연 (이하 ) : 원래 나는로맨티시즘이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되도록이면‘로맨티시즘 배제하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깊이 한 번 생각해보니, 실은  자신이  강렬한로맨티스트’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드로맨티스트랄까?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란 의미에서 말이죠.


- 이번에 소설‘우연히도 최악의 소년 영화화 되었는데, 소설을 쓸 당시 이미 영화화를 계획하고 있었나요?

 : 전혀. 소설도 누군가“한  써보지?”하기에 집필을 시작했어여. 우연히 어느 프로듀서가 제 소설을 읽었고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왔지요. “당신이 썼으니 당신한테 영화화할 책임이 있다면서……. 처음엔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 이태껏 텔레비전 광고를 만들어왔는데, 영화와 CF 궁극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 물리적으로 CF는 촬영시간도 방영시간도 짧지만, 영화는 우선 대단히  시간이 소요되고 요구됩니다. 촬영시간이 긴만큼 영화의 경우는 체력이 좋아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요. CF에는선전이라는 명백한 목적이 주어져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CF감독(디렉터)의 사명이죠. 그러나 영화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제작하는 것일까? 그 목적을 나는 발견할 수 없었어요. 영상세계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감독 데뷔를 꿈꾸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영상매체 보다 문자매체를  좋아합니다.


- 영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CF계의‘기재’로 통하고 있는데?

 : 싫어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백지장 차이에 지나지 않아요. 저같은 경우는 영상을 선호하지 않은 것이 역으로 큰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영상매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가 알기 쉬운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왔고, 언제나 객관적인 시점에서 제 작품들을 평가해왔죠. 작품이 완성되면“정말 이대로 방영되도 괜찮을까?”하는 의문을 매번 제기하고, “다음번엔 이렇게 만들어보자고 결심합니다. 그런 긴장감이 있기 때문에 대중과 친밀한 작품들이 절로 나온  아닐까 싶어요."


  영상매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가 15초의 세계에서 뛰어나와 100분이 넘는 영화의 세계에서 제작한 첫 작품이‘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이다.

  평일 오후, 가부키쵸의 영화관에는 젊은 여성관객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자살한 누나의 시체를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도쿄에서 하카타까지의 드라이브를 계획한 소년 히데노리, 14세. 빔 벤더스 감독‘밀리온달러 호텔 주인공 톰톰을 떠오르게 한다. 삶에 서투르긴 하지만, ‘옳다’고 판단하면 즉각 실행에 옮긴다. 누나와 함께 한국에 가기 위해 강도질 하러 들어간 전당포.“돈 좀 주세요”하고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이 이질적임과 동시에 자연스럽다.


- 영화‘우연히도 최악의 소년 랩이 흐르는 오프닝으로 시작할 뿐더러 10대 소년이 주인공이에요. 그런데 젊은층을 겨냥한 영화치고는 상영시간이 무려 113분에다 대사 사이사이의 간격이  길게 느껴졌는데, 일부러 이렇게 느린 흐름의 영화로 편집했나요?

 : 자살한 누나의 시체를 태우고 가는 드라이브?비현실적이죠.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더욱리얼리티가 필요했어요. 관객이 현실감을 가지고 영화를 봐주었음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죠. ‘리얼리티’는 어디서 비롯하는가? 실제 현실의 일상을 살펴보면, 모든 일들이 100%‘순조롭게또는평탄하게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현실속의 대화만 봐도, 말하기 전에 우선 생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완벽한 대사가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언어로 표현된다. 한 사람의 시청자의 입장에서설마 저렇게 뛰어난 대사가 저렇게 쉽게 나올까?’싶다. 영화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에서는 대사와 대사 사이에 충분한 시간을 두어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일상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가 대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거나, 다른 영화에선 NG로 치부될 부분들을 일부러 사용하였다.


- 영화 주인공‘가네시로 누나를 한국에 데려가려고 여러가지 범죄를 일으킨다. 영화를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범행이 가볍게 느껴졌다. 귀엽게 봐줄  있을 정도랄까? 구수연씨 주변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요즘 젊은이들은…’‘생각보다 평범한데…’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았던 반응이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14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구수연씨는 요즘 젊은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 시대 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파묻혀 사는 요즘 세대는 우리 세대 보다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 시절에는 정보량이 적다보니 새로 들어온 정보는 모두 사실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정보를거짓’과‘진실 가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세대건 젊은이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한  아닐까?


한국도 일본도 싫다. 차별은 당연한 

- 소설‘우연히도 최악의 소년마지막 부분에누나는 끔찍하게 싫은 일본을 떠나는거야. 그래서 끔찍하게 싫은 한국으로 가자 말이 나온다. 구수연씨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 한국? …, DNA? 한국은 존재하고 있고,  안에  피가 흐르고 있다. 단지 그것 뿐이다. 특별한 감정은 없다. 나는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싫고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싫다. 난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속박이 싫다. “당신, 재일교포니까 당연히 한국을 좋아하겠죠?”하는 스테레오 타입이  싫다.


-영화의 주인공‘가네시로 집단폭력을 당하고 있고, 구수연씨는 자전적인 소설하드 로맨틱커에서 이지메, 폭력문제를 서술했다. 일본사회에서 차별을 당했는가?

 :‘차별이란 의미에서 보면 차별일 것이다. 어느 사회든 차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차별의 원인이 다름아닌피’에서 비롯한다면 너무나도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어제는 밤새‘차별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없었다. 사전에는‘차이를 두고 취급하는 것’이라 나와있다.

 :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기술. 자기현시(自己顯示)를 위한 욕구.‘내가  사람 보다 잘났다는 건, 차별이라면 차별이라  수도 있는데, 나쁜 의미의 차별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사람 보다 잘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은 코가 낮아요”“저 사람 어머니는 ◯◯래요”하고, 상대방의 신체적 결함을 꼬집거나 가족의 약점을 고자질하는 행위는 정당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싸움의 상투수단이다. 손발이 없는 사람한테 대고“손이 없다라고 떠벌여서 자기현시욕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너무나 수준 낮은 발상이 아닌가? 엄밀하게 차별의 경계선을 그을  있는 사람은 없다. 문화에 따라, 국가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수와 소수의 정의가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좋은 차별나쁜 차별 구별해 사용하고 있다.


-‘좋은 차별’과나쁜 차별?’

 :‘좋은 차별이란, 당신과 나는 달라, 그러니까 대화를 나누자.‘나쁜 차별’이란 상대의 신체적 결함을 공격하는 . ‘재일한국인의 경우에는‘재일한국인이란 사실이 결코 신체적 결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결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선배가 만든 장애자올림픽의 선전문구가“나한테 손이 없듯이 당신에겐 손이 있다였다. 이것이 바로 정답이다. 모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뿐더러, 자신이 자기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대에 시모노세키에서 도쿄로 상경한 구수연. 상경 직후 아르바이트 면접만 100건 이상 뛰어다녔다. 재일한국인에게 쉽게 일을 맡기는 고용주가 흔치 않았던 까닭이다. 보통은“아주 힘들었다”고 말할만도 한데 그는많은 사람을 만날  있어서 좋았다고만 답한다. 그가 말하듯피’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어리석고 경박한 언동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차별이 있는 것을 당연한 일로 인정하고 있다 구수연은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이‘차별,‘구별또는차이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던 싫던 옳건 그르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 그것이 그가 말하는차별’의 정의다. 그렇다면, 차별은 당연히 존재할  밖에 없다.


 “차별당하는 쪽에 속해있었다는 것은 아이덴티티(정체성) 확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아픔을 알기 때문에 남을 감싸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경험으로 익힐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을 풍요로운 길로 이끈 요소들 중에는차별’‘구별’‘차이 고스란이 존재하고 있었다.


- 어느 기사를 보니‘세상을 우습게 보고 산다 적혀있었다. 실제로 세상을 우습게 여기며 살고 있는가?

 : 그렇게 적혔을 뿐이다. 우습게 여긴다니 당치도 않다. 단지 나는 부모님이 부자도 아니고 능력도 없는 인간이다. 꾸준히 열심히 사는 인간도 아니다. 그런 무능력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가지고 있고 하루하루 매우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정도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세상을 우습게 본다 쓰인  같다.


-광고의 세계는 거짓의 세계에 가깝다. 지금까지 구수연씨가 창조해낸 최고의거짓말’은 무엇인가?

 : 최고의 거짓말? 음…, 지금까지 광고를 만들면서 담배와 경마 CF만큼은 거절했다. 개인적으로는 담배를 좋아하지만,‘상쾌하다 카피를 넣는데는 반발심이 들었다. 경마의 경우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조사를 해보았더니 우량마가 되지 못한 말들이 도살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년 수만 마리의 말들이 도살장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것을 과연이라 단정해도 좋을까.‘거짓’을 말하기는 쉬어도‘그릇됨 말해서는 아니된다. 예를 들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들어있다고 선전하면 이는거짓 아니라그릇됨’이다. 지금까지 살면서그릇’되었다고 판단한 것을‘거짓으로 도배하여 화면에 담은 적은  번도 없다.


  어느 회사의 면접회장, 특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벗어도 자신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여대생. 에스테틱 살롱 TBC CF 일본안방을 배꼽잡게 하였다.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한 산토리 모르츠 맥주, 기무라 타쿠야의 JCB카드, 가하라 토모미의 포카 캔커피……. 구수연이 연출한 CF를 죄다 꼽으라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문제를 해결할  있을까? 즐기는 해결법을 찾기 위해 언제나 생각에 빠져 사는 편이다”


 최근에는 이이지마 나오코의포켓뱅크’, 포테토칩‘프링글스 만들었다. 참신하고 유니크한 감각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현실감각을 중시한 작풍이 안방의 채널을 고정화면으로 붙들어둔다. 앞서만 가기 보다 보폭을 맞추어주는 여유가 그를‘CF계의 기재 등극시킨 것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싶다 말하는 구수연이 슬픔을 즐기는 방법을 전수해주었다.“슬픈 일이 있을 때, 나와 우리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서 다같이 슬픈 노래만 열창한다. 누가 가장 슬픈노래를 가장 슬프게 부르나 내기도 한다. 슬픔에  빠진  상황을   즐겨보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대처한다. 재일한국인이라는‘차이’를 컴플렉스로 여기지 않고 자신만의경쟁력’으로 삼았다. 하여 그는재일한국인이란 사실이 내게는 최대의 무기’라 넉살좋게 주장하는 것이다.

 “우연히 도쿄에 나온 젊은이가 우연히 뛰어든 텔레비전 광고 세계에서 우연히도 히트작들을 줄줄이 뽑아냈었고, 덕분에 소설도 쓰고 영화도 찍었다. 젊은이의 인생은 나이를 먹을수록 우연히도 최고의 인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수연은 자신의 성공신화를‘우연이라고 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러할까?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는 능력,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해내는 실력, 확고한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 현재의 구수연을 구성하는 이 모든 요소가‘필연히도 최고의 인생 가져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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