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화의 인생, 그 아름다움을 섭렵하다
#이 기사는 2002년 인터뷰 기사입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나(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 사랑을 애걸하는 사람(愛を乞う人), 개 달리다(犬, 走る DOG RACE) 등 일본 영화계에 굵은 획을 그은 작품들의 각본을 담당한 정의신. 극단 신주쿠 료잔파쿠(新宿梁山泊)의 극본가를 거쳐, 최양일 감독과 손잡은 <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1997년<사랑을 애걸하는 사람>으로 일본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 지난해 개봉한 <OUT>은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되는 쾌거를 올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오에 정의신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그를 만나고파 했는가! 초인종을 누르자 영화감독 최양일씨가 문을 활짝 연다. 화사한 겨울 햇발이 방안 가득 스며들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곤니치와’란 일본어가 절로 튀어나온다. 묵직하리라 상상했던 정의신씨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필자 앞에 앉았고, 최양일 감독은 손수 향내 짙은 커피를 내 앞에 내 놓는다.
정의신, 그가 쓰는 영화
정의신은 작가 양석일의‘택시 광조곡’을 영화화한‘달은 어디에 떠 있나’에서 일본영화계의 신성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최양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1993년도 흥행 1위를 기록, 키네마 준포(キネマ旬報)의‘최고영화상’을 수상하여 영화계에 재일영화인의 저력을 과시한 작품이다. 이후‘사랑을 애걸하는 사람’으로 일본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하였고, 돼지의 보복(豚の報い/1997), 개 달리다 등을 발표하여 영화계에 굵은 획을 남겨왔다. 2002년 개봉된‘OUT’은 미국에서 열릴 아카데미상 외국어부문 후보작으로 올라있다.
“‘OUT’이 미국본토의 아카데미상에 출품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쓴 작품이라는 실감보다는 영화가 독립적으로 자기발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죠. 아카데미상 출품보다‘OUT’의 제작ㆍ배급을 20세기 폭스사가 맡았는데 그런 대형회사가 제작ㆍ배급을 맡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20세기 폭스사 로고가 나오는데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정의신의 영화는 주로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을 영화에 맞추어 각색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각색은 때로 원작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라 각광을 받는다. 어머니로부터 아동학대를 받고 자란 소녀가 성장하여 어머니가 되어 자신의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사랑을 애걸하는 사람’에서 그는 원작에는 없는 씬을 넣었다. 어머니가 된 소녀와 할머니가 된 어머니의 재회의 씬을 정의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삽입시킴으로써 영화는‘가족애’ 더 애잔하게 화면에 담았다.
“원작의 정신을 그대로 옮기고 싶습니다. 문학작품을 영화화하자면 각색이 필요하고, 또 제 나름대로의 해석도 당연히 들어가지요. 혹 영화에 원작과 좀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원작이 가진 정신만큼은 바뀌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도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사랑을 애걸하는 사람’에서는 어머니와 딸을 등장시켰고,‘OUT’은 4명의 주부들이 일으킨 살인사건을 그렸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엔 여자를 그리는 일이 아주 서툴렀다고만 답한다.
“잘 아는 아주머니가 저에게 "당신은 여자를 너무 미화해서 그린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얼마전 그 아주머니가 "요즘은 여자를 그리는게 아주 늘었구나. 반대로 남자를 쓰는게 좀 서툴러졌어." 그러시더라구요. 여하튼 기뻤어요. 여자가 공감할 수 있는 여자를 쓸 수 있게 되었구나 하셨거든요.”
정의신 영화의 또하나의 특성은 심각한 장면에서 쏟아져나오는 유머들이다. ‘형무소 안에서’(刑務所の中)는 형무소 안에 사는 범법자들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내었다. 일반인들에게 형무소란 지옥과도 같은 곳을 연상시키는데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삼시세끼 밥을 먹고 이틀에 한 번씩 목욕을 하며 평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책상 밑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기 위해 반드시 손을 번쩍 들고 “예! 부탁이 있습니다.”하며 큰소리를 내야하고, 복도에 그려진 발바닥 모양에 발을 딱 대고 서야 하고, 남의 책에 낙서를 하면 독방신세를 져야하는 형무소 안, 꼭 짜여진 규율속에서 살아가는 범법자들의 일상을 훔쳐보다 웃음이 터져나온다.
“인간이 비장함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을 때 의외로 그 모습이 제삼자의 눈에는 아주 재미있게 보이기도 하지요. 인간이 필사적이면 필사적일수록 우습게 비춰지는 일은 아주 많아요. 너무 심각해서 우습고 어리석게까지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저에게는 아주 사랑스럽게 비추어진답니다. 그 모습들은 비난을 받아야할 것이 아니라 사랑받아 마땅한 모습들이지요.”
부조화의 인생, 그 아름다움을 섭렵하다
“저의 고향은 효고현 히메지시인데요. 거기는 재일한국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작은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어요. 그 마을에 살았던 일은 여러 의미에서 지금의 제 자신을 있게하는 바탕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우리 할머니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쓰셨죠.”
그의 외할머니는 14살에 결혼을 해서 일본에 살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 왔다. 옛 시절 외할머니는 남편 얼굴 한번 제대로 못보고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에까지 찾아왔다. 일본에 건너와보니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아닌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가정에서 그런 남편의 몫까지 해대느라 고달팠던 외할머니. 그 여인의 네 딸 중 하나가 일본에 공부를 하러왔던 정의신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였다.
“우리집은 억지로 끌려온게 아니라서 아주 큰 슬픔같은 건 솔직히 없어요.”
그러니, 가슴 아픈 역사의 기록을 들으려거든 다른 사람을 찾으라며 웃음을 보인다.
내가 그에게서 듣고픈 건 그 역사와 비롯하여 한일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정의신의 글을 읽어보면 위화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다분히 등장한다.‘겨울의 선인장(冬のサボテン)’에서는 게이라는 정체불명의 성으로 고민하는 4남자를 둘러싼 이야기가, 연극‘천년의 고독(千年の孤獨)’에서는 고독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자기성찰을 꼼꼼하게 전개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 기본적인 의문들이 그의 작품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거리이자 테마이다.
“예전에는 위화감을 많이 느꼈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모라토리엄(인간이 성장하여 사회적 의무의 수행을 지연하고자 하는 기간, 또는 지연시키고 싶어하는 심리, 에릭슨이 제창)이란 단어가 유행을 했었어요. 자신을 주체할 줄 모르던 저는 연극을 하고 영화를 하고 그랬죠.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할지 막막했던 시기였어요. 지금은 조금씩 용서를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죠. 그 시절과 비교하면 아주 많이 달라졌어요.”
재일한국인 부락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어린 시절,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차 속에서 잠을 자는 어른들이 그에게는 인생의 낙오자로밖에는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그는 세상사가 아주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생사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여, 그는 살아있음에 있어 모두가 평등하며, 살아있음만으로 인간은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오감으로 실감한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는 젊은 시절 누구나의 가슴에나 숨어있는 명제다.
정의신의 글속에서 묻어나는 부조화는 아마 그가 느꼈던 삶에 대한 진실에의 추구가 아니었을까.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한 일년 후 학업을 중단하고 일본영화학교를 찾은 그는 영화의 세계를 탐독하였다. 이후 영화사의 미술조수를 거쳐 연극의 세계에 뛰어든 정의신. 사회와의 부조화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정의신이 가진 단면처럼 내게는 느껴졌다.
꿈,달리다
한때 정의신이 가졌던 위화감이란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기 때문에 느껴야 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은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재일한국인이란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한다. 그의 형은 치과의, 동생도 의사다. 손에 직업을 익히는 것이 재일한국인이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일이었던 시절에 그는 연극, 영화계를 오가며 원하는 길을 자연스럽게 걸어왔다.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억지스런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자유인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에게 자신이 재일이란 사실이 신경쓰이느냐고 물었다니 신경쓰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 가장 자연스러운 답변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내어 놓는다.
영화와 더불어 연극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정의신. 올 겨울엔 ‘안닝토후의 마음(あんにん豆腐の心)’을 도쿄, 나고야, 오사카의 무대에 올렸다. 영화와 연극이라는 두 개의 표현수단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꼭 부여잡고 있는 그의 연극은 한국의 무대에서도 자주 오른다. 그래서 한국을 찾는 빈도도 잦다.
“처음엔 한국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들은 제가 재일동포라면 한국사람이 왜 한국말을 못하느냐고 다짜고짜 달려들곤 하잖아요. 할머니가 부산사람이어서 부산사투리라면 좀 알아들어도 말을 잘 못하니까 답답하곤 했어요. 요즘은 한국의 연극인, 영화인들과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 친구들 개개인에 대한 애정이 커졌어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는 애정이 큰만큼 증오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감정들이 많이 사라졌지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효고현의 히메지시가 제 고향이라 느껴요. 할머니는 부산에 묘지를 만드셨지만 제 고향은 어디까지나 제가 살아온 여기에 있지요.”
그의 수필집‘안드레아스의 모자’에서 그는 영화에 관여하는 것이 꿈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나는 묻는다. 이제 영화계의 알아주는 거물급 작가가 되었으니 꿈은 이루어졌느냐고. 그는 답한다.
“꿈이 이루어졌느냐구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영화라는 대상이, 영화가 한편 완성되었다고 끝나는 건 아니거든요. 다음으로 또 전진해나가야지요. 연극도 마찬가지구요. 다음 종착역을 향해 제 자신도 점점 걸어나가야지요. 좀 뒤떨어진 것이건 옛것이건 그런 건 상관없구요, 항상 재미있는 것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인간에겐 자리하고 있잖아요. 영화작업에 참여한다는 꿈은 이루었지만 그 꿈을 더 크게 더 확실하게 일구어나가고 싶어요.”
작가 정의신과 영화감독 최양일이 함께 하는 사무실은 시부야구의 한켠에 있다. 조용한 주택가 언덕, 우체국 옆에 그들의 사무실은 자리하고 있었다. 우체국 옆에 사는 기분이란 어떤걸까, 우체국 앞에서 연인에게 편지를 띄우는 기분이란 어떤걸까.
작가 정의신이 내 마음에 아픔과도 같은 흔적을 남긴 건 이년여전의 일이다. 우연히 읽었던 어느 잡지에 그는 짤막한 수필 한편을 기고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수필은 밤의 거리에 사는 이름모를 여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남자는 신주쿠의 길목을 서성거린다. 그래, 아마 신주쿠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밤의 불빛들 사이에서 휘청이며 환상에 취해있다. 여인은 그 남자의 환상이었을까? 여하튼 여인은 얇은 원피스를 걸치고 단칸방에 앉아있다. 여인의 직업은 술취한 남자들에게 무릎을 빌려주는 일. 술독에 빠진 남자들은 그녀의 무릎을 베고 속속들이 잠에 빠진다.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뒷골목의 분위기와 삶에 지친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수필이었다.
그 수필 때문에 팬이 되었다고 필자는 나즈막히 고백한다. 그는 “참 웃기는 얘기였죠? 아마 그 달의 그 잡지의 테마가 이상한 얘기였을 거예요? 이상한 얘기를 써달라고 청탁을 받아서 썼는데 정말 이상한 얘기가 되어버렸어요.”하며 웃는다.
나는 왜 그의 영화와 그의 글들에서 아픔을 느끼는 것일까? 깔깔대며 웃다가도 가슴을 바늘로 콕콕 거리는 따가움을 느끼곤 한다. 나는 그것들을 그가 내뿜는 삶에 대한 위화감이라 느끼고, 그는 이제 위화감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을 뿐이라 답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좋은 작품을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정의신. 침체된 영화계와 연극계에서 재미있는 것을 꾸준히 창조해내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한다.‘와하하하’웃으며 작업에 임하고 싶다고.
“인터뷰 때마다 사람들은 묻곤 하죠. 무엇을 표현하고 싶냐구요. 저는 사랑이라고 답해요. 웃으면서요. 웃기지 않아요? 하하하”
그렇게 웃는 그가 쓴 글을 빌려서, 이 인터뷰를 끝내야겠다. '용기, 희망, 약간의 돈, 그리고 사랑이 있으면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다'.
정의신(鄭義信)
1957년 효고현 히메지시(兵庫縣姬路市) 출생. 극작가. 도지샤대학 중퇴 후, 요꼬하마방송영화전문학원(현 일본영화학교)를 졸업. 쇼치쿠의 미술 조수, 극단‘구로텐트’를 거쳐, 1986년 극단‘신주쿠 료잔파쿠’결성 공연에 참가. ‘더 테라야마’로 제38회 키시다희곡상 수상. 최양일 감독의 영화‘달은 어디에 떠 있나’의 각본을 담당하여 키네마 준포 각본상, 매일영화콩쿨 각본상 등을 수상. 이후, 영화, 연극계에서 활약 중. 최신작으로 영화‘OUT’,‘형무소 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