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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Oct 03. 2016

오타쿠의 탄생(90년대)

일본현대사 #5 덕후의 어원을 찾아서

90년대의  오타쿠 문화, 일본문화의 상징오타쿠

'덕후'의 어원을 찾아서


<‘오타쿠’=당신 / 당신네   ()?>

 사전에서 오타쿠(御宅)를 찾아보면 ‘①상대방의 가정남편회사를 가르키는 존경어 ②상대방을 일컫는 당신. you (고단샤 일본어 대사전 2)’ 풀이되어 있다이러한 의미의 오타쿠’는 1980년대 이후 어느  분야에 광적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변화하였고최근에는 세계적으로도 통용되는 단어로 부상하고 있다. 설마 이 단어가 한국에 와서 '덕후'가 되리라곤 누가 상상을 했을까.

 일본어에서는 당신을 지칭할 때는 한자로 오타쿠(お宅)라고 쓰고광적인 매니어를 지칭할 때는 가타카나(オタク표기를 사용하여그 차이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당신을 의미하는 오타쿠가 어떠한 연유로 광적인 매니어를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1982년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이끌었던 수작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제작한 사람들에 의해 ‘오타쿠 단어가 일반층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크로스 제작자는 게이오 대학 부속 유치사(초등학교) 출신의 동창생들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상대방을 부를 때 오타쿠란 단어를 사용해왔는데, 게이오 대학을 졸업한  이들 동창생  몇명이 애니메이션 기획사 스튜디오 누에’에 취직해서 함께 마크로스를 만들었다그들은 마크로스의 주인공들의 대사 속에 ‘오타쿠 사용하였다.“오타쿠(=야!), 오늘 시간 있어?”란 대사는 여자 주인공 밍메이가 남자 주인공 히카루에게 썼던 아주 중요한 대사다


 비디오 보급이 시작되고 만화 잡지 발행이 붐을 이루었던 시절마크로스의 제작자들은 일본 만화팬들의 우상이었다그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친구, 동료를 오타쿠’로 부르자, 일본 만화팬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오타쿠’라고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화붐에 냉정했던 사람들은 만화에 빠져 상대방을 오타쿠라고 부르는 무리들을 통틀어 오타쿠(オタク)’라고 지칭하였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여하튼오타쿠는별 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로 20년 가까이 쓰여오다가, 일본에서 그 단어가 조금 사라질 무렵, 한국으로 건너가 '덕후'가 되었다. 역시나 믿거나 말거나.


 ‘오타쿠낙오자인가, 창조자인가?

‘오타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왠지 어두침침하고 자기틀에만 박혀 사는 사람들이다. 밥도  먹고 월급의 90%를 게임에만 쏟아붓는 사람, 30이 넘어서 여자만화주인공만 방안 가득 모아둔 콜렉터, 스타워즈의 대사는 물론 효과음까지 120분 정확하게 외우고 흉내낼 줄 아는 사람. 너무 광적이어서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오타쿠는 사회의 낙오자적 이미지도 안고 있기 때문에, 오타쿠란 말을 함부로 쓰면 대단히 실례가 되는 표현이다.


 80년대부터 일본에서 발생한 오타쿠 문화는 교육, 정보, 소비가 한데 섞인 가운데 자라난 젊은이들이 낳은 문화다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텔레비전을 접해왔고, 80년대 비디오의 확산으로 시각문화 1세대의 길을 걸어왔다고속경제성장의 시대에 태어나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소비화 운동의 절정을 겪어왔고, 학교에서는 극심한 경쟁 사이에 놓여있었다스트레스에 민감한 그들은 자신들 속에 갇혀 현실보다 만화 주인공들과 놀기를 더 좋아한다.


 오타쿠 문화의 중심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있고, 부수적으로 영화광야구광 등도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오타쿠는 단순한 매니아가 아니라고 오타쿠 평론가 오카다 토시오씨는 말한다그는“고래 매니어는 있어도 고래 오타쿠는 없다. 고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래 매니어지만, 오타쿠가 되려면 환경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서 환경 오타쿠가 되었을 때 진정한 오타쿠라고 할 수 있다. 오타쿠란  폭넓은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일본의 장인 정신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서양 문화는 메인컬쳐에서 카운터컬쳐를 거쳐, 서브 컬쳐로 변화해왔다메인컬쳐란 귀족문화를 뜻하며, 지금도 유럽에 남아있는 계급사회의 밑바탕이다계급사회에서는 메인컬쳐, 즉 클래식 음악아트문학역사과학 등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저절로 사회계급이 낮아지게 마련이다그리하여 그들은 어린이들에게 자아가 확립된 반듯한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 메인컬쳐를 확실히 배워서 나름대로의 계급을 손에 쥐고 살기를이 메인컬쳐에 반대한 움직임이 카운터걸쳐다. “메인컬쳐는 똥이다! ” 하고 주장한다. 반듯한 어른이   있는 일이란  고작 전쟁뿐이라고 사회를 비판한다. 카운터컬쳐의 대표자는  스타들로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질서와는 무관계하다. 지각을 하는 것이 예사고 관객서비스도 형편없다. 그러나 그것이 계급사회 질서에 대한 반항이다. 카운터컬쳐는 미국에서 서브컬쳐로 태어난다계급사회가 아닌 미국에서 계급에 대한 반항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미국의 젊은이들은 아예 어른이 된다  자체에 반항을 한다그리고 동부의 청교도 사상에 반대하여 대량소비를 창출하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키스 헬링의 그림이 아트로 승화되고바스키야는 영웅시된다. 일본의 오타쿠는 서브컬쳐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고 있다그러나그들의 흐름은 이런 서양식 문화를 따라온 것이 아니라 일본의 장신정신의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일본에서는  장르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고수많은 장인들이 오랜동안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요리계의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보기에도 아름다워야 하고, 무언가 특별한 개성도 겸비해야 한다나름대로의제멋’을 고집하면서 창조를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장인인 것이다. 이런 정신이 음악과 영화애니메이션을 단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구하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바로‘오타쿠 아닐까?


 80년대 오타쿠 문화가 지나친 광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90년대에는 서브컬쳐의 선두주자가 오타쿠였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층으로 대두하고 있다. 21세기는 다양성의 세기다다양성이 인정되는 세기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전문지식에 대한 성장은 만화광게임광, 영화광 하나에 대한 지식이 깊으면 깊을 수록 취직시험에도 유리할 뿐더러 이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힘으로 발휘된다. 실상최근의 인터넷상의 유명 캐릭터 제작자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어릴 적부터 오타쿠의 길을 고수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타쿠들이 매료된 문화는 그대로 오타쿠들의 손에서 새로운 문화로 창조되어 태어난다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들의 약점이기도 하다. 오타쿠의 손에 의해 창조된 문화는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가슴이 크고 목소리의 톤이 높은 여자 주인공. 시대는 변화하는데 여주인공들의 모습은 80년대에 머물러 있다. 오타쿠들은 기술적으로는 큰 성장을 보였으나 사상적으로는 아직 미숙하다. 사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그은   안에서 나와야 하며그리하였을  진정한창조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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