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키 유타카의 음악과 죽음

일본현대사 #10 일본청소년의 영원한 우상

by 김민정

일본청소년들의 영원한 우상, 오자키 유타카(尾崎豊)


1992년 4 25일 오자키 유타카는 폐수종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4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오자키 유타카 그는 누구였으며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자 했을까.


<10대들의 통과의례>

젊음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살아숨쉰다. 그것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어 불안을 형성해낸다. 혈기, 강인함, 당당함, 그리고 연약함, 순수, 공허, 외로움, 사랑, 아픔. 그 모든 것의 결정체가 젊음이다. 그리고 젊음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뮤지션이 바로 오자키 유타카가 아니었을까. 한 한국에서 포지션이‘I LOVE YOU’란 일본노래를 리바이벌 했는데, 노래가 바로 오자키 유타카의 최고 히트곡이었다.

일본의 청소년들은 아직도 통과의례처럼 그의 노래들을 들으며 성장한다.

‘훔쳐온 오토바이 ‘100엔짜리 동전으로 얻을 있는 훈훈함, 캔커피라는 가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열 다섯의 이란 표현은 오래도록 가슴 켠에 자리하던 사춘기 시절의 어정쩡한 정체성에 대한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왜인지 서글픈, 왠지 가슴시린 10대의 밤들을 그는 다섯의 이란 말로 축약했고 많은 이들이 그를 사랑했다.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린 그의 노래와 그의 마음과 그의 시들, 그의 음악을…….


<오자키 유타카의 삶>

오자키 유타카는 1965년 도쿄 세타가야구에서 태어났다.‘세타가야구’하면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부자 동네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청담동쯤 될까. 게다가 그는 아오야마학원대학 부속 고교에 입학을 한다. 아오야마학원대학 부속고 역시 경제력있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다니는 명문고로 소문난 학교다. 그런데 그는 고교를 미련없이 중퇴하고 음악의 길을 택했다.

신주쿠에 있는 클럽의 스테이지를 거쳐, 82년 소니 주최의 오디션에 합격, 83년 첫 싱글열다섯의 ’, 첫 앨범열일곱살의 지도를 발표, 명문대 진학이 에스켈레이터식으로 가능한 아오야마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의 세계에서 열정을 발휘,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된다.

스물 여섯의 나이에 폐수종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10년간을 가수로서의 삶을 보낸다. 자유를 무기로 음악의 인생을 살아온 10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꿈이었고 청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성제 복용으로 구속을 당하는 그의 뒷면에는 반드시 화려하거나 행복하였다고만은 없는 또하나의 인생이 투영되어 온다.

그의 음악에 내비치는 반항심과 어설픈 사랑과 순수로 인한 갈등, 이런 요소들이 바로 인생의 아픔의 시작임을 그는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있고 그의 음악은 인생의 미로에 발버둥치는 우리의 가슴에 하나의 반향으로 자리잡았다.


<사랑과 자유를 부르짖다>

10대. 참으로 묘한 울림이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니다. 청소년이란 말도 대상이 불분명하다. 사춘기라 표현하면 더더욱 색안경의 색깔이 짙어진다. 일본에서 10대를 맞이하면 누구나 번쯤 오자키 유타카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살아야하는지, 공부가 중요한지, 우정이 무언지, 사랑 또한 무엇인지. 오자키 유타카는 모든 해답을 그의 음악을 통해 남겨놓았고, 10대들의 대변인으로 모든 세대에 살아숨쉰다.


그가 10대에 제작한 앨범 열일곱살의 지도를 일본의 청소년들도 듣고 자란다. 그가 가진 생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는 장이다. ‘I LOVE YOU’ 시작해서 다섯의 ’,‘Oh, My Little Girl’ 이르기까지 10대의 나이에 첫앨범으로 대중성과 더불어 깊이와 완성도 높은 음악들을 만날 있다.


10대에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여전히 10대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오자키 유타카.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음악으로써 사회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무언가를 지키고자 끊임없이 고뇌했던 20세기 마지막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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