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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Dec 14. 2021

구름 속으로 사라지다

설악산 케이블카, 현실을 벗어나 마법공간으로 가듯~


  설악산을 간 적이 있다. 나는 산을 원체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휴가지로 산과 바다 중 고르라는 질문을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를 꼽는다. 나이가 서서히 들면서 주변 친구들이 운동도 할 겸 등산을 좀 하자고 하면 공원이나 한강길이나 뭐 그런 평지들도 많은데 왜 굳이 산을 오르려고 하느냐며 그게 더 관절에도 안 좋다며 되려 핀잔을 농담조로 건네기도 한다. 산은 그저 우리 조상님들, 양반님들이 그랬듯이 멀리서 바라보며 차 한 잔, 술 한 잔과 함께 그윽이 즐기는 게 최고라고 늘상 얘기하고 다닌다. 어차피 내려올 것을 동네 머슴도 아니고 왜 그리 아등바등 기어오르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산악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얘기지만 난 산을 그렇게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설악산을 간 적이 있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생기는 법이다. 물론 이 때도 설악산을 가긴 했지만 등산을 하진 않았다. 대신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까지만 슬쩍 갔다 올 계획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도착지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고 하니 뭐 그 정도야 해주지 하는 심산이었다. 여름이었고 오후 시간이어서 땀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딱 그렇게 그만큼만 다녀왔다. 산악인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겠다. 거기까지 가서 어찌 그러고 돌아왔느냐고. 하여튼 산을 싫어하는 나는 그런 식으로 설악산이라는 데를 두어 번 다녀왔다.


  그렇게 설악산을 다녀왔다. 이날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권금성까지 갔다가 내려오니 시간은 이미 저녁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고, 흐린 날씨에 산 안개(구름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까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승강장 건물을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려는데 산 쪽을 보니 케이블카가 권금성 쪽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실어 내리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안개 속에서 다시 나타나면서... 마치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마법의 자동차같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가 있다. 일이 너무 많아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일에 치이는 것은 그나마 괜찮은데 사람에 치이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면 현실을 벗어나 여유롭고 편안하고 심적으로 고요할 수 있는 곳을 자꾸만 찾게 된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줄 마법의 자동차 같은 걸 찾게 된다. 짙게 내려앉은 이 현실의 구름 속을 뚫고 그 너머 어디론가 가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며 아무 생각도 없이 나른한 낮잠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빛 속에 화사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있고 적당한 나무 그늘 밑에 작은 돗자리 하나 펴 놓고 거기에 누워 나뭇잎 새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스르륵 졸고 싶은 여유와 편안함...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세계로 이어줄 마법은 없다. 하지만 그런 세계로 보이게 하는 마음은 있다. 마법을 찾지 말고 마음을 먼저 살펴볼 것! 어쩌면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벽 안에서 아등바등하며 세상을, 사람을 증오하며 벽 너머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벽이 내가 만든 것인줄은 까맣게 잊은 채로.

   그러니  발짝 물러서서 세상에, 사람에 조금만 더 너그러워질 것.

   그래도 정 힘들면 가벼운 여행을 떠나도 괜찮을 듯 싶다. 달라진 공간에서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그럼에도... 나는 항상 어디엔가 이어져 있음을 기억하자.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케이블처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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