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을 걸어보자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2009년 겨울이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피사체들을 찾아 움직이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그날은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보기로 했다. 혜화역을 등지고 비탈길을 걸어올라 낙산공원을 향했다. 공원 너머 성벽길도 걸어보고 그 너머에 있는 창신동 재개발 예정 구역도 돌아볼 심산이었다. 낙산공원까지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파르고 길었다. 운동 부족을 절감하며 바빠진 호흡과 함께 공원에 도착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나의 눈과 카메라를 이끌어 당겼다. 철판으로 만든 좁다란 길 끝에 중절모를 쓴 신사가 빨간색 서류가방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난 길을 따라서는 얼룩무늬 달마티안 한 마리가 같을 곳을 보며 걷고 있었다.
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신사와 달마티안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이제 늦은 오후를 향해 가는 태양이 있었다. 이 예술품의 창작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아마도 했으리라 싶다.) 절묘하게 이들의 시선은 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색감이 다 드러나는 달마티안과 신사의 사진을 찍어두고 작품 뒤로 가서 그들의 시선을 느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저 사진과 같은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은 햇살을 맞이하는 천연색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강렬한 태양빛에 외려 뒤편에서는 신사의 붉은 구두와 서류가방은 빛을 잃었고 달마티안의 흰색과 검은색의 얼룩무늬도 힘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끊어진 길 끝에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강렬한 태양빛을 향해 목적 없이 빨려 들어가듯 홀려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밝은 영광이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으로 착각한 한 사람이 개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되어 그 속으로 무작정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누군가 제시한 거대한 목표를 향해 무비판적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여느 직장인들의 오후 풍경처럼…….
FOMO(fearing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외되는 것에 대한,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 심리라고 한다. 직장에서, 혹은 친구들 사이에도 혼자만 어떠한 정보를 몰라, 혹은 어떤 과업을 해낼 능력을 갖추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은 나도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누구에게든 있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가고 있는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 채,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길의 끝에 다다른 줄도 모른 채 무작정 앞으로만 걸어가려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색깔을 모두 잃어버린 채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좁을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는 저 신사처럼 말이다.
나를 위해, 현재를 위해~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공동체적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만의 개성보다는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혹시 사로잡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볼 일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들을 의식하고 그들을 좇아가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을까 돌아보게 된다. 나는 멀티가 잘 안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은 멀티가 되지 않는 이들을 거의 무능력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몇 번 따라 해보려 애는 써봤지만 역시 난 잘 안된다. 그래서 그냥 인정해 주기로 했다. 멀티능력자들이 받는 대우에 대해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해서 인정받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저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즐기면 된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 하기보다는 내가 목표로 하는 일,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언지 잘 고민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진지하게 임하기로 한다.
내가 현재 걸어가는 길이 오롯이 나를 위한 길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할 것이다.
나는 사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저 설치 미술 역시 그 뜻을 잘 모른다.
그러면 뭐 어떤가? 내가 나에 맞게 해석하고 나에 맞게 이해하면 되는 것 아닌가? 수많은 SNS에 떠도는 그 멋진 미술관과 미술 작품 직관 후기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도슨트의 해설이 어떻든, 혹은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이 어떻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거기서 무언가를 느끼면 그것이 나에겐 최고의 예술이다.
모두가 똑같을 수 없고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