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2021년 11월. 단양에 있는 카페 하나를 찾아갔다. 소백산 자락에 있는 카페이고 산 아래로 단양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훌륭하다고 해서 찾았다. 사진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한 번쯤 찾아가 봐야지 하고 킵해 두었었는데 어느 주말 휙~하고 다녀오게 되었다.
원체 산에 오르는 걸 싫어하지만 산에서 내려다보는 웅장한 풍경까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차로 갈 수 있는 산, 등산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산은 간혹 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찾아간 이 카페는 소문대로 그 풍광이 너무도 훌륭했다. 낙엽수들이 이미 잎을 떨구긴 했지만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들의 빛깔만으로도 산의 능선들은 초록을 빛내고 있었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카페 옆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업체들이 많이 보였다. 차를 타고 올라왔던 그 좁은 도로로는 1톤 트럭들이 분주히 손님들과 패러글라이드를 싣고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산의 내리막 풀밭에 글라이드를 펼쳐놓고 사람들을 기다렸고 이내 다음 사람이 그 글라이드를 메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펼쳐진 산자락과 푸르게 흐르는 강줄기 못지않게 패러글라이드가 날아올라 비행하는 모습도 훌륭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늦가을 단풍마저 지고 있는 고즈넉한 산자락에서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드를 펼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지만...
물론 하늘을 날고 싶어 이 카페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꽤 오랫동안 가봐야지 하고 마음에 넣어두었던 곳이었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의 맛도 그윽할 듯하여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슬슬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에 없던 일을 갑자기 느닷없이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는 별로 부리는 편이 아닌지라 그냥 감상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늘을 날고 싶은 욕구는 그대로 남았다.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가슴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도 이른바 항공샷에 대한 욕구가 많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발아래 펼쳐지는 낯선, 아니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그 풍경을 한껏 눈에, 가슴속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리도 하늘을 날고 싶은 걸까? 날아다니는 새만 보면 무조건 앵글을 들이밀던 데서부터 시작해 항공샷을 탐내고 기어이 내가 직접 하늘을 날며 그 공기와 함께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제주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터를 잡고 살다 보니 자주 탈 수밖에 없었던 비행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의 비행을 위해 가능하면 늘 창가 쪽 좌석을 선택했고 자그마한 비행기의 창을 통해 이륙부터 착륙까지 바깥의 하늘을 쳐다보다 보니 생긴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물론 요즘은 비행기에 타면 무조건 잠에 빠져들어 이륙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착륙해야 잠에서 깨곤 한다. 익숙함은 무려 이런 습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젊다 못해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비행기 창밖의 그 하늘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로망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현재 내 사무실 컴의 바탕화면이다. 비행기 창밖에 비친 제주섬의 모습
그리고...
어쩌면 내가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날게 된다면 그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정해진 길이 없기에 내가 가고 싶은 그곳으로 날아갈 능력만 된다면 마음껏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일상이 답답한 것은 늘 정해진 길이 있고 그 길을 반복하여 오가면서 그 길에 갇혀 지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길이 없는 하늘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벅찬 자유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르는 곳, 익숙하지 않은 곳이어서 약간의 두려움과 무서움은 있겠지만 이내 적응하게 되면서 한없이 주어진 자유로움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하늘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나에게 새겨진 것일 수 있다. 일상의 모든 소란함이 사그라지고 높은 곳을 지나는 바람 소리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절대 자유와 절대 평온을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그것이 하늘을 날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공간에서의 자유와 내적 평화~!
그러고 보니...
여행을 간다고 하면 흔히 비행기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기차여행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어쩌다 보니 섬나라가 되어 육로로는 외국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완전히 새로운 곳을 향하는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설령 국제선 기차가 있다고 해도 왠지 하늘을 날아야만 다른 공간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있다. 그러고 보니... 낯설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이유 역시 하늘을 날고 싶은 이유와 맞닿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