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자태로 홀리다
몇 해 전부터 수국이 떠들썩하다.
대략 한 7~8년 전부터가 아닌가 싶다. 수국을 좋아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고 그만큼 여러 매체에서 수국 명소를 소개하는 일도 늘었다. 어릴 적 그냥 고향길을 걷다 만난 그 길이 이제는 수국 명소라고 소개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수국은 몇 해 전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여름철을 대표하는 예쁘고 복스러운 꽃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깻잎처럼 생긴 잎 사이로 어떤 것은 하얗게, 어떤 것은 푸르게, 또 어떤 것은 핑크빛으로 피어나는 꽃 색깔부터가 참으로 신비롭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꽃들이 마치 꽃다발처럼 모아져서 오밀조밀 사랑스러운 부케를 만들어낸 자태가 너무너무 예쁘다. 그러니 화려한 봄꽃이 남긴 여운을 받아 이어 줄 변변한 여름꽃이 없던 차에 이 수국이 그런 아쉬움을 한껏 채워주는 것이다.
그중 한 곳을 찾아갔다.
작년 여름, 초목도 감상할 겸해서 수국이 아름답다는 화담숲을 찾아갔다. 입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바로 저 사진의 녀석들이었다. '산수국'이라 했다. 가운데 부분은 기존에 알고 있던 수국이랑 비슷한, 하지만 아직 꽃을 피워내지 않은 그런 상태인 모습인 것 같은데... 주변에 별처럼 다섯 잎으로 피어난 꽃들은 뭘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산수국의 원래 모습이라고 한다. 가운데에 부케처럼 모아진 작은 꽃들보다도 가느다란 줄기를 뻗어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더 예뻐 보였다. 어린아이가 손바닥을 펼친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꽃잎을 한 장씩 그려 넣은 접시 같기도 한 그 모습이 참 고왔다. 며칠 전부터 내렸던 비 때문인지 일반 수국 꽃들이 이미 색을 잃고 시들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웠는데 이 산수국이 화담숲 곳곳에서 그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사진을 보며 깨달았다.
사실 이름도 처음 들었던 산수국. 그 꽃의 매력에 빠져 찍어놓은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장자리의 피어난 그 꽃들이 접시처럼 느껴졌던 이유! 꽃이라면 응당 가운데 부분에 암술, 수술이 올라와서 벌, 나비들을 유혹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런데, 없었다!
가짜꽃이었다. 오로지 벌, 나비, 그리고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한 가짜꽃이었다. 암술도 수술도 없이 피어난 이 꽃은 꽃잎 또한 진짜 꽃잎이 아니라 꽃잎처럼 보이는 화려한 꽃받침이라고 했다. 가운데에 모여 있는 진짜꽃(유성화) 하나하나는 너무 작아 암술이나 수술, 꽃잎들을 잘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화려한 꽃처럼 보이는 이 가짜꽃(무성화)이 피어나 기묘한 자태로 곤충들과 사람들을 홀리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화려함에 이끌린 내 눈이, 내 마음이 민망스러워졌다. 하지만 한편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산수국의 삶도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없고, 없는 줄 알았는데 있는 것이 세상살이인가 싶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 말할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한다.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알게 된다. 대충 둘러보고 다 보았다고 말하지 말고, 한두 번 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내 본질을 다 모르겠는데 어찌 짧은 시간에 상대를 다 안다고 할 수가 있을까.
반전 하나 더!
일반적인 수국은 산수국의 친척 식물이다. 수국과 달리 진짜꽃은 없으며, 가짜꽃만 커다랗게 모여 있어 풍성하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