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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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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Mar 21. 2023

영희는 법으로 싸운다

<탈핵 잇_다> 두번째 이야기

활동성단층 위의 원전     


2016~2021년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이하 신고리5·6호기 취소소송)할 때 주요쟁점이 지진 문제였어요. 신고리 5·6호기 부지 인근에 원전 내진설계에 반영해야 할 활동성단층들이 있는데 반영되지 않아서 위법하다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을 2023년 3월 초 <한겨레>에서 크게 보도했더라고요.     


지난 3월 10일 시민방송 더탐사 ‘원자력 X파일’에 출연한 영희 변호사가 월성, 고리 원전 인근에 존재하는 활성단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간다. 탈핵 전문변호사가 지질학자보다 더 쉽고 자세히 지진에 설명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이 있다. 

지난 3월 2일 <한겨레>는 ‘활성단층 위에 지어진 원전, 내진 보강이 필요하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고리·월성원전 인근에 ‘설계 때 고려했어야 하는 설계고려단층이 5개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밝혀진 활성단층은 울산 삼남읍 상천·방기·신화리의 삼남분절(2.0~10.5㎞), 경주 암곡동 왕산분절(2.1~5.9㎞), 울산 북구 창평동 차일분절(2.8~4.2㎞), 경주 외동읍 말방·활성리 말방분절(3.5~4.3㎞), 경주 천군동 천군분절(2.0~4.0㎞) 등 5개다. 차일분절은 월성원전까지 불과 12㎞로 원전과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천군·왕산·말방분절은 월성원전 반경 13~21㎞, 삼남분절은 고리원전 반경 26㎞ 안에 위치한다. 

5개 모두 30km 비상계획구역 안에 존재했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커 짓지 말아야 할 곳에 원전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한겨레> 기사는 지난 1월 행안부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누리집에 올린 ‘한반도 단층 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최종 보고서를 근거로 삼았다. 

박근혜 정권 당시 지진관측 이래 최대규모였던 2015년 규모 5.8 경주지진 이후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2017년 발주한 5년여의 연구보고서에서는 한반도 동남권(경남·북, 부산, 울산)에서만 14개 ‘활성단층 분절’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미 지난해 말 보고서가 나왔지만 원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여야 할 윤석열 정부는 달갑지 않은 보고서를 관련 기관 누리집에 올린 것으로 150억 원짜리 연구 결과가 잊히길 바랐을 것이다. 

원자력 이용에 따른 안전관리에 필요한 대책 등을 마련하는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50만 년 이내에 2차례 이상 또는 3만5천 년 이내에 1차례 이상 움직인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원전 반경 32㎞ 안에 위치하면서 길이가 1.6㎞를 넘거나 반경 80㎞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8㎞ 이상인 경우 ‘설계고려단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활동성단층은 고리, 월성 16개 원전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규정대로라면 원안위는 원전건설 허가를 내 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연구자료가 아니어도 지질연구자료를 조금만 살펴봤어도 170km에 이르는 거대한 양산단층과 40km의 울산단층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희 변호사는 두 기관 모두 위법을 저질렀으니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에 따른 법적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더탐사 ‘원자력X파일’ 진행자 이정윤(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가 핵마피아 카르텔로 묶여있는 원안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방송 내내 분통을 터뜨리며 영희 변호사에게 묻는다.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 때 활성단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그럼요. 이번 행안부 용역결과가 아니라도 지질, 지진관련 자료들에서 이미 확인했었어요. 재판부가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뿐이죠.     


영희 변호사는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 당시 “활성단층과 지진, 인구밀도 제한 기준 위반이면 신고리 5·6호기만 문제가 아니라 모든 원전이 다 문제이지 않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신규발전소인 신고리 5·6호기다.”라고 답했지만, 사정판결을 내린 배경에는 ‘만일 신고리 5·6호기가 지진 위험과 인구밀도 제한 기준 위반으로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리면 고리 원전 10기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라는 재판부의 우려가 컸던 것 같다.

정의와 상식을 잃은 판결임이 틀림없다.      


땅이 운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이하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를 만나러 2월 중순 일요일 오후 그의 집을 찾았다. 사회연결망(SNS)에 매일 평균 두세 개씩 올리는 지진, 탈핵, 기후위기, 사법정의 기사들 틈에 끼어든 피아노 이야기며, 반려식물, 요리와 아들, 조카 이야기들까지 탐독한 덕인지 오랜 친구 집 같다. 2월 중순 맵싸한 겨울 추위 가 뒷 끝을 보여도 낮 기온은 웃옷을 벗길 태세다. 해가 떠 있는 내내 볕으로 가득한 거실 중앙에 놓인 피아노와 반려 식물들을 둘러보다 ‘법으로 탈핵하는’ 김영희 변호사가 지진에 천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SNS에는 도전하기 어려운 '새우젓 담기' 같은 요리들이 종종 올라온다. 탈핵이야기 보다 음식사진이 더 인기이니 '요리' 사진은 '분위기 전환용'이다.  ⓒ 김영희


후쿠시마 핵사고가 지진으로부터 시작했잖아요.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큰 규모의 지진이 많았는데 이를 반영한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고작 0.2g~0.3g예요. 0.3g 내진설계로 규모 7.0 지진에 대비할 수 없어요. 규모 7.0수준의 내진설계를 강화했다고 하면서 지반가속도 0.3g를 기준으로 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에요. 눈속임이죠.      


언론보도에 대해 해당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3월 3일 공고를 통해 신고리 3~6호기 4기 및 신한울 1·2호기까지 총 6기에 규모 7.0 (지반가속도 0.3g) 기준으로 내진설계를 강화했다고 반박했다. 행안부 조사에서 발견된 5개 활동성 단층에 대해 한수원은 지진 안전성을 자체 평가한 결과 안전성이 확인되었으며, 향후 원안위 적합성 심사를 거쳐 보완이 필요한 경우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전에 준공한 가동 원전 22개 호기도 모두 6.5 이상으로 내진설계를 보완하였고, 특히 핵심 설비에 대해서는 7.0 수준으로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규모 7.0 지진에 대한 내진설계의 핵심은 최대지반가속도 ‘0.3g’로 충분한가이다. 단층, 토질상태, 발전소 위치 등에 따라 원전에 가해지는 최대지반가속도가 다르다. 최대지반가속도 0.3g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강화된 일본의 내진설계기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산자부 반박 공문은 아이러니하게도 활성단층 위에 줄줄이 지어진 22기의 원전의 내진설계가 한참 부족하다는 점을 자인한 꼴이다.    

  

우리나라가 기계로 지진을 측정하기 시작한 건 1978년도예요. 1905년에 일본 사람이 처음 지진을 관측했는데 그전 지진 기록을 역사기록이라고 해요.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과거에 우리나라에 큰 지진이 많이 있었어요. 서기 2년부터 1904년까지 기록된 한반도 지진이 2,161회나 되고요, 그 중 진도V 이상의 지진이 440회나 돼요. 특히 삼국사기에는 경주에서 규모 6.0~6.9 상당 지진이 10번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어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지진은 조선 인조 때 1643년에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6.8에서 7.0 사이의 지진이에요. 고리원전과 가깝죠.     


영희 변호사는 지진 주기가 있는데 15~6세기 지진이 많았던 우리나라가 지진이 올 주기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김영희 변호사뿐 아니라 학자, 전문가 등도 동일본 대지진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쳐 한반도 지질 환경이 불안정해졌고, 이 때문에 지진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발생한 튀르키에 강진처럼 갑자기 대규모 지진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주 보문단지 안에 지진으로 땅이 크게 찢겨 협곡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 있다. 이 협곡 옆에 있는 골프장 공이 절벽 아래로 빠지면 공을 주우러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역사지진과 각종 지질연구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 한반도는 수백 킬로미터 배관과 7,200km 케이블이 뻗어있는 원전 아래 대형지진의 위험에 놓여 있다.     


월성원전은 경주지역이 역사지진이 많아 위험한데다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 1·2·3·4호기가 특히 더 지진에 취약해요. 폐로 된 월성1호기도 ‘사용후핵연료’가 수조에 그대로 있어요. 
월성원전의 경우 원자로가 ‘가압형 중수로’라고 해서 핵폐기물이 더 많이 나오고 원자로 자체가 지진에 취약한 구조예요. 가동 중인 월성 2·3·4호기에는 380개의 원자로(압력관)이 가로로 누워있어요. 세로로 서 있는 경수로 원자로보다 380개 원자로가 가로로 누워있는 월성 2·3·4호가 지진이 오면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더 위험하죠.      


영희 변호사는 중수로 원자로의 내진 강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380개 원자로 두께를 다 높여야 하는데 사실상 새로 설치해야 해서 경제성이 없다고 한다. 원전은 ‘싸고 경제적이다’라는 것이 45년 동안 국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뇐 말인데 경제성에서 뒤집히면 원전 입지가 좁아진다. 최대한 감추고 눙치는 것이 상수다. 

2016년 6월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와 정의당 초청으로 한국에 온 지진전문가이면서 탈핵 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경주지진은 ‘하늘의 경고’라고 말한다.      


“경주 지진은 내륙형 직하지진이다. 일본은 95년 고베 지진과 후쿠시마 지진을 계기로 원전 내진 기준을 최대 2.34g로 높였다. 최대지반가속도가 1g를 넘으면 지상의 물체는 허공에 떠버린다. 원전이 직하지진에 직격탄을 맞으면 내진설계와 상관없이 붕괴된다.”     


2016년 9월 12일 월성원전에서 겨우 27km 떨어진 지점에서 일어난 규모 5.1, 5.8 경주지진은 먼 바다가 아닌 내륙에서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월성 원자로 6기 중 4기가 멈췄지만 4기 가동을 멈추는 데 4시간이나 걸렸다. 히로세 다카시는 가장 무서운 ‘내륙형직하지진’임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적은 것을 “천만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요행이 언제까지 우리 편이 되어줄지 모를 일이다.      


핵발전소는 원자력안전법령에 따라 새로운 호기를 건설할 때마다 건설허가 단계에서 부지조사를 해야 하고, 지진 지질조사를 엄밀하게 해야 해요. 부지선정단계에서도 지진 위험 관련하여 부지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죠. 소송 과정에서 지진 문제로 치열하게 다투었음에도 한수원과 원안위는 ‘신고리 5·6호기 소송단’의 주장을 부인하고 묵살했어요. 
지금이라도 한수원과 정부는 용역 결과를 반영해 내진설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경제성이나 기술적 문제 등으로 내진설계 반영이 어렵다면 고리, 월성원전은 모두 폐쇄해야 해요.      

후쿠시마 핵사고 수습 비용이 2천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폐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도 2041년에서 2051년 사이에 완료될 전망이다. 수습만 30~40년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다. 추정과 예상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수습에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기간도 장담할 수 없다. 

활동성단층 위에 핵발전소 22기가 줄지어 서고 돈 앞에 안전은 모르쇠 하는 핵마피아들이 득세하는 이 나라에서 지진의 경고를 제대로 알아들은 이들은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영희 변호사 또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날들이 늘고 있다.     


태풍 앞의 원전     


현실적으로 더 무서운 건 태풍이에요. 
지진은 안 일어났으면 하는 요행이라도 바랄 수 있지만, 태풍은 매년 서너 차례 이상 겪고 있는 자연재해예요.      


발생빈도에 있어 태풍이 지진보다 원전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핵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기후위기로 폭우가 잦고, 바람도 거세졌다. 태풍은 점점 더 강해질 기세다.      


2020년 9월에 발생한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영향으로 우리나라 원전 8개(고리1·2·3·4, 신고리1·2, 월성2·3)가 발전소 외부전원이 상실되거나 터빈이 정지한 사례들이 있었어요. 전원을 제대로 컨트롤 못하면 중대 사고로 이어지잖아요. 지금 기후위기로 더 태풍이 잦아지고 더 강해져요. 갑자기 폭우도 많이 내리고요.바람이 세지면서 파도가 높아지잖아요. 그게 문제예요. 고리원전 같은 경우는 고리 해안 방벽이 있는데 방벽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와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높은 파도를 경험하지 않았었죠. 지난해 여름 힌남노 태풍이 왔을 때 제주도에서 30m가 넘는 파도가 관측됐어요. 고리원전 해안 방벽은 10m인데 10m가 넘는 파도가 실제로 얼마든지 올 수 있어요. 후쿠시마 사고 때처럼 파도가 방벽을 넘어 건물을 덮치면 기계가 물에 잠기거나 젖어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한순간에 15m 파도가 오면 원전까지 덮쳐 침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원전에 전기를 공급해야 할 전원시설이 끊겨 전기공급이 안 되면 냉각수 공급에 문제가 생겨요. 냉각수로 원자로를 식힐 수 없으면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멜트다운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게 바로 후쿠시마 사고예요.      


지진보다 태풍의 위협은 원전사고 가능성을 더욱 현실화한다. 

기후위기 시대 원전은 태풍과 호우, 산불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태풍이나 호우로 이미 원전이 25차례 가동을 중단했고 바다 수온 상승으로 유입된 해양생물이 원전 배수구를 막은 탓에 가동을 멈춘 사례도 무려 8번이다. 

지난해 삼척과 동해의 큰 산불은 울진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해 모두의 가슴을 졸였다.

지난여름 유럽에 닥친 폭염과 가뭄은 원전 강국 프랑스 원전의 절반을 멈춰 세웠다.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대안은 핵발전이 아니다. 그러니 싸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하루라도 빨리 갈아타야 한다.      


영희는 법으로 싸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가 뒤집혔잖아요. 후쿠시마 핵사고 장면을 봤을 때는 저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고 자체로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때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탈핵운동을 시작하면서 읽은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이 쓴 「원자력 신화는 없다」 책이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다카기 선생님이 원전에 대해 통달하신 분이기 때문에 쉬운 언어로 가장 필요한 얘기를 잘 전달 하신 것 같아요. 
 다카기 선생님이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늘 원전 걱정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어느새 저도 다카기 선생을 닮아가고 있더라구요.      
2016. 11. 2. 사용후핵연료 국회 토론회에 참여한 김영희 변호사 ⓒ 김영희


원전은 1950년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핵에너지의 평화적이용’이라는 모순된 슬로건으로 일상으로 들어오고 안방까지 차지하면서 부흥기를 맞는다.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핵무기 개발은 군비경쟁과 세계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의 결과물이었다.

원전에서 우라늄을 태우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에서 얻는 ‘플루토늄239’ 추출 비용은 우라늄 농축 비용에 비해 싸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원자로에 증기발생기와 터빈만 설치하면 ‘원자력발전소’다. 핵무기와 원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쌍생아다. 

지진에 취약한 월성원전이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나오는 중수로 원자로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졌다.      


원전 문제를 알고 나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어요. 알기 전과 후는 너무 달랐던 거죠. 원전 문제는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일이 되었어요. 
그런데 탈핵운동은 거대한 핵마피아들과의 싸움이라 엄청 힘들어요. 이런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후운동은 응원과 지지가 많아요. 둘 다 생존에 대한 운동인데 호응에는 차이가 커요.     


영희 변호사 SNS에는 기후위기 관련 기사와 글들도 자주 올라온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5세 미만 아기 60명이 원고가 되어 벌이는 기후소송도 시작했다. 국내 언론은 물론 BBC, 가디언, 독일언론 등 세계 주요 언론에도 비중있게 보도되었다.

폭우, 산불, 홍수 등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급증하고 ‘나’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은 기후운동, 기후소송 등에 지지와 관심을 높인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느낄 수 없는 ‘방사능’과 싸워야 하는 탈핵 운동은 대중들의 지지도 적고, 물고 뜯는 핵마피아들의 공격에 대항하려니 원자력 전문가 수준의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값싸고 안전하다”라는 ‘원전 신화’와도 싸워야 한다. 원전 사고 한 번이면 한반도가 날아갈 판이니 사고 이후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의 싸움은 힘겹고 고독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으니 말이다.      


TV나 언론을 보세요. 진보, 보수 매체 가릴 것 없이. 기후위기 관련 다큐멘터리도 많고 기업광고도 많아요. ‘기후위기’가 2022년 구글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언론 노출과 관심의 반증이죠.      


탈핵의 길     


영희 변호사가 생각하는 탈핵으로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아예 입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탈핵하는 거예요. ‘원전 폐지법’ 같은 걸 만드는 거예요. 
원전, 탈핵이라는 단어를 넣어 전선을 분명하게 하거나 날카롭게 대항하는 것보다 ‘에너지전환법’처럼 포괄적이면서도 대안적 법이면 더 좋겠어요.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뻥 뚫린다. 

영희 변호사는 법률가를 ‘전문분야의 기술자’라고 말한다. 인류사회의 모든 영역은 마지막에 법으로 통하니 그런 면에서 탈핵 운동에서도 법률투쟁의 쓰임은 더욱 많아질 것 같다.


두 번째 방법은 교육과 홍보예요. 국민과 소통을 통해 여론을 바꾸는 거예요. TV 켤 때마다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고와 비리가 많은지 방송해 봐요. 그리고 안전한 재생에너지가 대안이라고 알리는 소통을 열심히 했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만큼은 아니었겠지만, 탈핵이 지금 같은 처지가 됐을까요? 통탄할 문제예요.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로 첫단추를 완전 잘못 뀄어요. 주어진 권력을 통째로 제물로 바쳐 버린 격이에요.     


이기고도 진 신고리 5·6호기 소송’ 그리고 공론화     


40여 년간 원자력 안전 신화와 경제개발 성공 신화에 취한 대한민국을 고작 몇 달 만에 바꿀 수 있다고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섣부른 결정이었어요. 탈핵 운동 진영도 입장이 갈라지고 대다수가 공론화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탈핵 진영의 패배였어요. 뼈 아픈 일이에요. 


문재인 정부는 1호 공약이었던 탈핵 선언을 후퇴시킨다. 탈핵 선언의 골자는 ‘신규핵발전소는 짓지 않는다, 수명연장 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관리한다’였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2017년 6월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3개월간 일시 중단하고 공사 여부를 공론조사에 맡기자고 결정한다. 7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9월 16일 천안에서 개최된 첫 오리엔테이션에 총 478명의 시민참여단이 참석해 ‘건설중단/건설재개’ 양측 입장 청취 및 질의응답 등의 시간을 갖고, 2차 설문조사에 응했다. 이어 공론화위는 약 한 달간의 숙의 과정을 거친 뒤 10월 20일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건설 재개 59.5%, 건설중단 의견은 40.5%로 건설 재개에 손을 들어주었다. 무려 19% 차이의 완전한 패배였다. 문재인 정부는 10월 24일 공론화위의 권고를 수용,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탈핵로드맵은 2017년 현재 24기에서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오히려 원전이 증가하는 ‘친원전 로드맵’이었다.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와 오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해바라기’와 영희 변호사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탈핵운동 최대연대체인 ‘탈핵공동행동’도 분란을 거듭하다가 참가단체들의 각자 결정에 맡기기로 하고 헤쳐모였다. 대다수 탈핵 운동단체들이 공론화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공약은 ‘계속 건설’로 물거품이 되었다.

공론화 패배 이후 ‘신고리 5·6호기 소송’은 오히려 희망이 되었다. 공론화에서 졌어도 소송에서 이기면 더 결정적인 승리가 될 수 있었다.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원안위와 한수원은 공론화에서 건설중단 측이 내세운 논리가 패배한 것을 들먹였지만, 그것은 공론화일 뿐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위법한지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영희 변호사는 공론화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영희 변호사가 주장한 내용들이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공론화 패배 이후 청와대 안에서도 탈핵은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고 들었어요. 40년 가까이 원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라고 세뇌되다시피 한 국민에게 단 1달 만에 몇 차례의 논의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것 자체가 중대한 오판이죠.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지지율을 믿은 건지는 몰라도 섣부른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 결정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꼴이 되었어요.      


탈핵진영도 공론화문제로 입장이 갈라지고 분열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을 묻기엔 너무 많은 환경과 조건들이 변했고 우리의 반성과 평가는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공공의 선에 서서     

정의로움, 올바름의 추구를 위해 전문가가 되어 싸워야 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2014년 '나는 반대한다' 영화를 보고 소감을 나누고 있다.
제가 연대 86학번이에요. 80년대 후반 학교에서 데모는 일상이었어요. 그러다가 1987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 저도 학교에 있었어요. 이한열 열사가 세브란스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병실 앞까지 찾아갔었고 저도 그날 학교에서 밤을 새웠어요. 그 사건이 제 인생의 기로가 된 것 같아요.
 87년 이후 노동자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학연대 등 각 단위 간의 연대투쟁도 전국적으로 일어났어요. 하루는 상대 앞 버드나무 아래에서 빨간 머리띠를 두른 건강한 노동자들이 팔뚝을 휘두르며 힘 있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제가 저분들을 위해 투쟁하고 저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현타'가 오더라구요. 제가 그때는 여리여리하고 작았거든요. (웃음)     


영희 변호사는 운동의 방식에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노동자가 되어서 함께 싸우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전문가로 싸우는 방법이다. 영희 변호사는 전문가가 되어 공신력으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제가 무슨 이념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한다거나, 올바름과 정의로운 삶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바로 고시 공부에 뛰어들지는 않았어요. 법대 여학생회장도 하긴 했지만, 운동권은 아니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느라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어요.

 
변호사가 되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에 가입하고 개혁에 힘을 보탠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과 이후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을 맡아 경제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재벌개혁 운동,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했다.


재벌들이 자기 재산처럼 횡령하고 이익을 빼돌리고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했잖아요. 
재벌개혁에는 두 방향이 있는데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것과 재벌 자체를 개혁해 공정한 사회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는 후자를 택했어요. 재벌 자체를 개혁해 경제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자본주의가 건전성이라도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재벌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소송이 삼성 에버랜드 불법 승계 문제였어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회사가 당시 에버랜드였고 삼성그룹 경영권의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배임행위와 탈세 여부가 쟁점인 사건인데요, 이 소송은 제가 혼자 진행했는데 승소했어요. 제겐 자랑스러운 소송 중 하나죠.


에버랜드사건에 대한 형사판결에서는 배임죄에 해당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나, 영희 변호사가 수행한 에버랜드 민사판결(주주대표소송)에서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아 낸 것은 큰 성과였다.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를 법적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영희 변호사는 삼성 특검에도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으로 참여해 싸웠지만, 삼성은 거대하고 힘이 셌다. 
다음은 현대차그룹이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 소송 2건 다 승리했다. 삼성, 현대 등 재벌들에겐 영희 변호사가 저승사자 같았을 것이다.     

 

지는 재판도 세상을 바꾼다     


영희 변호사는 2016~2021까지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에서 건설 허가에 위법성이 있지만 사업자의 손해가 크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지 않는 ‘사정판결’을 받아냈다. 내용은 승소지만 결과은 패소인 이상한 판결이었다. 사정판결은 말 그대로 처분이 위법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정’을 봐주어서 취소시키지 않는 판결이다. 

법 준수를 따지는 법정에서 ‘사정’을 봐준다니 자주 있을 리 없는 판결인데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서 사정판결이 선고되었다.      


2016년 9월 12일 소송을 시작해 1심판결까지 886일 동안 14회 재판을 했어요. 560명의 국민이 원고로 참여하는 국민소송이었어요. 한수원은 1심에서 1조 원 매몰 비용을 주장하더니 2심에서 5조 원으로 매몰 비용을 5배 올리더라고요. 한국전력 자료 기준으로 후쿠시마 사고 수습 비용이 2,492조 원이에요. 매몰 비용 1조 원에 비하면 2천 배잖아요. 그런데도 1심 재판부는 사업자인 한수원의 손해가 크다고 사업자의 ‘사정’을 봐준 거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도 건설 주장 측이 ‘경제성’을 내세웠는데 재판부도 ‘안전’보다 아닌 ‘경제성’을 중요하게 판단한 거예요. 경제성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고대비 비용,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등 사후관리비용이 쏙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사업자가 내민 눈앞의 손해만 본 거죠.      


소송단은 원안위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설 경상분지에 대한 지진 단층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원안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의결할 때 자격이 없는 원안위원 2명을 참여시킨 점 등 14가지 이유를 들어 건설 취소를 주장했으나 2021년 8월 대법원은 판결 이유조차 밝히지 않고 상고 자체를 기각하며 2심 사정판결을 유지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처분이 위법성이 존재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으니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요. 해바라기가 첫 번째로 소송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사고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인데, 2015년 원안위가 이를 받아들여 중대사고 평가를 하게 되었죠.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사고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는 1심의 판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후 고리 2호기 수명연장 과정에서 제대로 하진 않았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 중대사고 평가를 일부라도 반영하게 되었어요.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결정 당시 자격 없는 원안위 위원 2명이 표결에 참여했던 점도 위법 사항으로 판결했어요. 
재판 결과는 ‘패소’였지만, 시민들이 ‘핵발전건설과정’에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이 건설허가의 위법성을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한 단계 나아간 의미 있는 소송이었어요.      
2009년 11월 26일 4대강 소송 기자회견에 참여한 김영희 변호사.  ⓒ 김영희

법원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취소 될 경우 사업자와 관련 업체들이 입을 경제적 손실을 ‘공공의 이익’이라고 보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위법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업자의 ‘사정’을 봐주어서 취소하지 않는다는 ‘사정판결’을 한 것이다. 사업자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이라고 판단한 사법부에게 국민과 국가의 안전은 안중에 없었다. 

2007년 4대강 소송을 한 영희 변호사는 4대강 사업의 위법성을 증명해 2심에서 사정판결을 받아 내는데 기여했다. 

대법원이 사정판결마저 뒤집어 4대강 소송도 결국 패소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생명과 환경,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공익성을 져버린 4대강 사정판결은 2019년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에서도 판박이처럼 되풀이됐다. 사정판결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제가 ‘사정판결 전문’이라고요. 몇 번 내리지 않은 사정판결 중 2개나 받아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영희 변호사에게 소송은 투쟁 수단이다. 승소하면 좋겠지만 재판과정에서 여러 진실이 드러나니 소송은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만약,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제가 이겼으면 신고리 5·6호기는 지을 수 없었겠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지만 두드리다 보면 열릴 날이 옵니다. “지는 재판도 세상을 바꾼다.”고 믿어요.     


이기다      


영희 변호사는 소송을 통해 원전의 위법성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 국가보안과 영업비밀을 내세운 원자력계의 깜깜이 관행과 밀실 행정의 야합이 비일비재했던 원자력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신고리 5·6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사고 평가’ 관련 헌법소원은 이상하게도 기각됐지만, 원하는 대로 관련 규정을 개정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부지승인 취소소송’을 6년 동안 진행하며 원전 부지 허가 규정을 강화했다. 신고리 5·6호기 부지 승인에 위법사유들이 있어서 취소해달라는 소송인데, 그 과정에서 산자부가 ‘원전 부지 사전승인권’을 가진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원전 부지는 지진, 지질, 지하수 등에 대해 심사를 해야 하고 국민 안전과 건강권이 걸린 문제인데 원전 진흥 부서라 할 수 있는 산자부가 심사도 없이 허가해주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 결과 ‘해바라기’가 문제를 제기한 대로 원전 부지 사전승인권이 규제기관인 원안위에게 넘어가는 내용으로 ‘전원개발촉진법령’이 개정되었다. 


2017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내용을 설명하는 김영희 변호사. ⓒ 김영희


영희 변호사는 원전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케이스로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을 꼽는다.   

2012년 11월 설계수명 30년을 채워 가동이 중단된 월성1호기를 2015년 2월 원안위가 2022년 11월까지 수명연장 할 수 있도록 운영변경 허가를 내주면서 재가동한다. 경주, 울산지역 주민 2,167여 명의 국민소송단은 원안위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운영변경허가 처분이 무효’라는 소송을 냈다. 2017년 5월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원안위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월성1호기 안전성평가보고서 심사 때 월성 2~4호기에도 적용된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고, 한수원이 수명연장을 위해 원자로 등 설비를 교체한 것에 대해서도 원안위 심의·의결이 아닌 과장전결로 처리했으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등의 위법사유가 인정되었다.

원안위가 항소하면서 2심 재판이 시작됐지만, 월성1호기는 고장과 정지를 거듭하며 재가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2016년 설비고장으로 불시 정지를 2차례 겪었고, 2017년에는 계획예방정비 도중 원자로 건물 콘크리트 부벽에서 결함이 발견돼 발전이 정지됐다.

한수원은 2018년 6월 이사회에서 월성1호기의 경제성, 주민수용성, 언전성을 이유로 조기 폐쇄를 결정했고 2019년 12월 원안위가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허가’를 승인하면서 월성1호기는 공식적으로 폐쇄가 결정됐다.   

   

윤석열 정부가 월성1호기 폐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쟁점을 만들었잖아요. 누가 봐도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월성1호기가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리라 생각도 못 했어요. 안전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게 없고 여야가 따로 없는데 윤석열 정부가 월성1호기가 안전하고 경제성이 있다며 국민을 속이고 호도하면서 정쟁의 대상으로 몰아간 것이 속상해요.      


핵마피아들은 질기다. 법률적 근거도, 완료된 행정처리도, 경제성을 이유로 사업자 스스로 내린 폐쇄결정도 호시탐탐 노리다 뒤집기를 시도한다. 탈핵운동이 더 질기고 강해져야 할 이유다. 

     

부산에 핵폐기장이 들어 온다     


원자력안전법도 있지만 원자력진흥법이 있어요. 원자력진흥위원회(이하 진흥위) 위원장이 국무총리예요.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12월 진흥위에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하 고준위 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해요. 법률은 아니고 실행력 있는 행정계획인데 핵심은 '원전 부지마다 임시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하겠다'라는 계획이에요. 고준위 계획에 근거하여 당장 고리원전 부지에 임시 건식 저장시설을 짓겠다고 한수원이 최근에 이사회에서 의결했어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 13개 중에서 8개가 해운대에 있어요. 피서철이면 100만 인파가 몰린다는 해운대에서 21km 떨어진 곳에 핵폐기장이 생기는 거예요. 탈핵 운동단체들이 당장이라도 ‘부산에 핵폐기장이 들어온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윤석열 정부가 원전부흥을 위해 고준위특별법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국민의힘 대표가 된 김기현 의원이 지난 1월 27일 부산일보와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준위특별법’에 대한 질문을 받자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영구화될 수도 있는데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당 대표가 되면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을 막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느 당이 됐건 간에 원전 소재 지역구 국회의원이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점은 의미가 큽니다. 원전 진흥을 앞세우는 당에서 원전의 계속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지역 여론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한편 여론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준위특별법’이 제정되면 ‘임시’라는 단서를 달고 부산, 울산, 경주, 울진, 영광 등 원전 시설이 있는 5개 지역에 ‘고준위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셈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은 1980년대부터 울진, 영덕, 태안 등 해안을 낀 수많은 지역에서 시도됐지만,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현실적으로 영구처분장을 수용할 지역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임시’가 ‘영구’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희 변호사는 2021년 말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무효확인소송(이하 고준위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소송을 하려면 90일 안에 소장을 내야 하는데, 제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고준위 계획’의 합법화를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대응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짧은 시간 동안 1,000명 넘게 원고를 모았어요. 경주 양남면에서 800여 명이 참여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어요. 울진원전으로부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안에 속하는 삼척시가 지자체로서 원고로 참여하였고, 삼척 주민들도 100여 명 이상이 참여했죠. 영광 주민들도 100여명 참여해주셨고요.        

           

2022년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경주, 울산 인근 지역주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해바라기


소송단 모집할 때 내는 1만 원 참가비가 소송비용인데 원고로 참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상황이라 원고 중 200명이 낸 참가비 200여만 원이 소송비용으로 받은 전부다. 원전 소송에서 정부나 한수원 측 변호사들은 엄청난 물적, 인적 지원과 거액의 보수를 받는 데 비해 영희 변호사는 보수는커녕 교통비, 번역비 등 소송비용도 부족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했던 해야 했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등 단체와 시민 833명이 참여해 2020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한 ‘월성1~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운영허가처분 무효확인소송’은 패소했고 ‘고준위 무효소송’은 진행 중이다. 

‘고준위 기본계획’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지 적합성을 심사할 권한이 없는 산자부가 중간저장시설과 비슷한 수준의 시설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리는가 하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주민의견수렴 등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고준위 기본계획’은 법이 상식이라면 무효가 마땅하다. 

원전 관련 판결에 상식과 정의의 잣대가 공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희 변호사가 ‘지면서도 이기는 소송’을 하는 이유다.      


주민 편     


영희 변호사는 공익 소송 외에도 교육부 자문변호사 및 대학 이사를 지내는 등 교육계 관련 소송도 많이 하고, 환경부 자문변호사도 했다. 최근에는 고형쓰레기를 연료로 하는 SFR소송도 진행했다. 

알고 보니 이혼소송도 전문분야다.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장점 때문인지 이혼소송에서 승소한 의뢰인이 또 다른 의뢰인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생계형 변론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재벌개혁과 주주대표소송 전문가였던 영희 변호사가 후쿠시마 이후 탈핵소송 전문가로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고 늘 원전 피해 주민편에 서는 이유는 현장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2015년 영덕주민투표 지원활동 ⓒ 김영희

원전유치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던 김양호 삼척시장 이전에 김대수 삼척시장은 삼척에 원전을 유치하려고 했다. '해바라기' 법률가들과 영희 변호사는 김대수 전 시장 '주민소환 운동' 때부터 삼척과 인연을 맺는다.      


김양호 시장이 당선되고 삼척이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면서 법률 자문을 위해 30번도 넘게 삼척을 다녔어요. 열차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라 운전해서 삼척까지 다니면서 힘들었지만, 주민투표가 승리해서 보람이 컸어요.     


2014년 10월 9일 전체 유권자 4만 2,488명 가운데 2만 8,867명이 투표해 67.9%의 투표율을을 보인 삼척원전 주민찬반투표는 유치반대 여론이 84.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원전 유치 신청 철회는 국가사무여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주민투표 업무 위탁을 거부해 민간기구 주도로 실시해 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삼척시민들의 민심을 거스를 수 없었다. 

2012년 9월 삼척과 함께 ‘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고시 된 신규원전 후보지였던 영덕은 삼척 주민투표 운동에 힘입어 ‘영덕원자력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결성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영희 변호사는 영덕 주민투표관리위원회 법률자문위원으로 삼척보다 더 먼 영덕을 부지런히 다녔다. 삼척과는 달리 영덕군수가 원전에 찬성해 삼척에 비하면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반대 여론이 2배 이상 높다’라는 것에 희망을 걸었다. 2015년 11월 11일 투표일이 밝았다.     


새벽 6시부터 투표를 시작했는데 그 이른 시간부터 덕군민들이 투표하러 오시는 거예요.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사람은 주민투표를 하러 오지 않기 때문에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원전 유치에 반대하시는 분들인 거죠. 어르신들이 새벽부터 줄 서서 투표하는 광경은 정말 감동이었고, 눈물이 절로 나더라구요.      


이틀 동안 주민투표소는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영덕원자력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위원장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11월 13일 “주민투표 개표 결과 원전 유치 찬성표가 7.7%(865명), 반대표가 91.7%(1만274명)로 집계 됐다”고 발표했다. 전체 투표권자 3만 4,432명(9월 기준) 가운데 1만 1,201명(32.5%)이 투표했다. 지자체와 한수원의 방해로 유효투표율 30%를 넘지 못했지만, 온전히 민간주도로 진행된 투표 결과의 힘은 매우 컸다.     


울진이 바로 옆이잖아요. 원전이 들어서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원전 지역이 낙후된다며 울진을 예로 드는 삼척, 영덕 주민들을 많이 봤어요. 삼척, 영덕주민들도 잘 싸웠지만 ‘원전 반대’에 대한 민도가 높았다고 생각해요. “원전은 누구나 반대하는 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영희 변호사는 2019년 5월 삼척이 ‘원전예정구역 지정고시’가 철회될 때까지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0년 6월에는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에도 지원활동을 열심히 다. 

영희 변호사는 ‘해바라기’ 결성 후 단 하루라도 탈핵 소송과 법률지원을 멈춘 적이 없다.

2017. 7. 12. 원자력연구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 김영희

2017년 5월 신고리 5·6호기 공익감사, 7월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 관련 공익감사, 11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공익감사, 2020년 8월 월성1호기 수명연장 관련 공익감사, 2020년 8월 월성1호기 감사 관련 감사원장 공익감사, 2022년 3월 월성원전 방사성물질 누설 공익감사 등을 청구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공론화(월성 맥스터)관련 고발대리, 월성1호기 폐쇄결정에 대한 감사 관련 최재형 감사원장 등 고발 대리, 월성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방사성물질 누설 관련 한수원 등 고발 대리 등 법률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도 6년, 신고리 5·6호기 소송도 6년 동안 진행됐다. 

영희 변호사가 건넨 메모에 빼곡히 채워진 한 줄 한 줄의 소송 기록은 몇 년 치 피땀 어린 노고와 희생의 증거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탈핵은 반드시 돼요문제는...     


탈핵은 될 수밖에 없어요. 세계적인 흐름이고 무엇보다도 경제성에서 원자력은 확실하게 뒤처져요. 정치적인 문제로 윤석열 정부가 친원전 확대 정책을 펴며 뒷북에 열을 올리지만, 원전이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온갖 데이터가 증명하고 있어요. 반면 재생에너지는 기술혁신으로 발전단가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어요. 
머지않아 탈핵은 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해요. 원전 안전관리가 걱정이에요.  


기후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예상치 못한 태풍이나 폭우, 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사고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다. 향후 20~30년 안에 “우리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영희 변호사는 “그래서 더 열심히 탈핵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부터 핵사고가 났잖아요. 1979년 미국 쓰리마일,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다음으로 원전이 많은 나라는 프랑스, 중국, 한국이에요. 한국은 안전관리도 믿을 수 없고 원전밀집도, 인구밀집도 세계 1위이니, 사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원전사고 피해는 나라가 망하는 수준이에요.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고요.     


영희 변호사는 기회가 되면 “원전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지원도 하고 싶다”라고 한다. 원전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에 가려 그 안에서 피폭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보이지 않는다.  

    

원전 노동으로 피해를 당한 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아직 저한테 찾아오신 분은 없어요.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큰데 아쉽죠. 그래서 원전 주변지역 주민 갑상선암 소송은 늘 빚진 마음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김영희 들을 위하여     


인터뷰 며칠 뒤 영희 변호사 SNS가 난리가 났다.  

고창군 ‘수명연장 관련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관련 연구용역 발표차 전북 고창으로 내려가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의 SNS에는 안위를 묻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2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인터뷰 당시 “영광 한빛원전 주변 지자체인 고창군이 반갑게도 연구용역을 주어서 연구 결과 발표를 위해 지난 2월 22일 고창에 간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가 고장 나고 현장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저녁때 발표도 잘 마치고 몸도 괜찮다는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비생계형 탈핵 소송에도 매달리는 시간이 많다 보니, 늘 잠은 언제 자는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게요. 맨날 돈도 안되고 일은 많고 이기지도 못하는 소송에 매달리다 보니 제가 인기가 없어요.(웃음) 저야 그렇다 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일하자고 권하지는 못하죠.정말 영혼을 갈아 일하고 있는데 “이게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과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우리 세대야 항상 그래왔잖아요. “나는 괜찮지만, 너희들은 그러지마.” 이렇게 생각하죠. 적어도 우리 후배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탈핵 운동하는 활동가들 처지도 너무 열악해서 오히려 그게 늘 마음이 아파요. 저에겐 고맙고 귀한 존재들 이에요.     


영희 변호사는 “그 어떤 분야의 시민운동보다 탈핵 운동이 시민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일인데 이념화되거나 정치적 프레임으로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탈핵운동’이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더 많은 ‘김영희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인터뷰는 마쳤는데 고민의 출발에 선 기분이다. 

더 많은 ‘김영희들을’을 위한 고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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