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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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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창 Apr 25. 2023

동료시민의 힘을 믿는 장마리

<탈핵 잇_다> 세번째 이야기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장마리

후쿠시마는 적어도 나에게는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이자, 2011년 3월 11일에 벌어진 과거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대두되면서 후쿠시마는 과거만이 아닌 지금까지 지속해서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사고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과 이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사람 중 그린피스의 장마리 캠페이너가 있다. 신문과 방송,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 그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특정 사건이나 이슈에 대한 설명 너머 장마리 캠페이너와 그가 해왔던 활동들이 궁금해졌다. 2023년 4월 6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외 석탄발전 투자중단 캠페인(그린피스 제공)

현재 일하고 있는 기후에너지 팀을 소개해달라.


기후에너지 팀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은 기후참정권, 내연기관차 반대,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확대, 후쿠시마와 국내 원전 캠페인으로 총 4가지예요. 정책 제안을 위한 정책 자문위원과 금융 자문위원들도 함께 일합니다. 이외에도 그린피스에서는 생물다양성 캠페인, 플라스틱과 해양 캠페인 등 여러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어요. 시민참여 팀은 일반 시민들이 지역 중심으로 혹은 활동 중심으로 그린피스 캠페인을 더 가깝게 만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장마리 캠페이너는 그린피스 입사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기후에너지 팀에 배치되어 한국 정부의 세금으로 해외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린피스에 들어오기 전부터 ‘원전 캠페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원전 캠페인을 하고 싶어서 그린피스에 입사했어요. 당시 제가 들어왔을 때가 2018년도 2월이니까,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취소소송의 1심이 진행 중이었었어요. 제가 맡았던 해외 석탄 캠페인과 함께 신고리 5, 6호기 취소소송을 3심까지 진행했어요. 해외 석탄 캠페인, 후쿠시마 캠페인과 함께 국내 원전 이슈에 대해 계속 관심이 있었죠.


그럼 본격적으로 국내 원전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언제였나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원전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기후변화를 알리는 중점 캠페인들에 집중하다가 다시 국내 원전 캠페인이 진행된지 한 2-3년 정도 된 거죠. 그린피스 단체 자체는 반세기 넘게 원전 반대 캠페인을 해왔지만, 제가 국내 원전을 다룬 시간이 그 정도입니다.. 첫번째 주요 프로젝트로 ‘월성 원전 1호기 사용후핵연료 누설 문제’를 다루기 전에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내 원전 이슈를 알리는 데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내놓는 여러 형태의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나, 이슈 메이킹을 하는 것에 대한 언론의 반응... 사실 그때는 원전 캠페인을 국내에서 진행하기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말기였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원전을 다시 지으라는 요구가 거셌잖아요. 탈원전과 친원전이라는 첨예한 입장 차가 나라 전체를 뒤덮었고요.


장마리의 말처럼 당시 원전 문제는 대통령을 뽑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일 정도로 갈등이자 이슈의 중심에 있었고,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원전의 문제를 알리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리는 시행착오와 어려움만을 말하지 않았다. “우리 메시지가 언론을 뚫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힘이 가장 약했던 시기이지만, 그것이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가 올바른 ‘방향’을 잡게 되었기 때문이죠.”


장마리 캠페이너(그린피스 제공)

시행착오 끝에 나온 국내 원전 캠페인의 방향     

그 방향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저희는 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통해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단체이다 보니, 시민들에게 ‘지지’받으며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방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물론 모든 캠페인을 그렇게 할 순 없지만, 국내 원전 캠페인은 함께 하는 시민의 숫자와 얼굴과 목소리, 의견들이 더 눈에 드러나고 같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힘들더라도 그걸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마리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다음의 말들을 덧붙였는데, 한 자 한 자 힘이 실려 있었다. “시민들에게,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접근해야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언론과 시민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들을 알릴 수 있을까, 더 많이.”


구체적으로 그린피스에서 장마리 캠페이너가 했던 첫 번째 국내 원전 캠페인인 월성 원자력발전소 이슈에 대해 물었다.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와 우리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원전이슈가 있는데, 어떤 부분부터 다뤄야 할까,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역이나 서울에 있는 원전 관련 활동가들과 함께 전문가 강의를 20회 가까이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월성 원전 문제를 더 깊이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건 그린피스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구체적인 문제의 정황을 드러낼 수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원전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방사능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위험이 원자력발전소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의 실체에 가까이 가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월성 원전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물리적인 확인할 수 있는 문제였죠. 게다가 월성1호기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원전이었어요. 이미 ‘정치화’가 된, 사건의 중심에 월성1호기가 있었으니까. 원전이 어떻게 생겼고, 몇 개이며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만 계속해서 알리는 것보다, 이미 알려진 것, 익숙한 것을 활용하는 것이 캠페인으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거대하고 단단한 성벽을 뚫고 문제에 다가가기     

장마리 캠페이너가 시작한 월성 원전 캠페인의 중심에는 ‘방사성물질 누출 문제’가 있다. 이 사건은 내부고발자가 보고서와 자료들을 오랫동안 월성 원전의 안전 문제를 제기해온 경주환경운동연합에 전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수백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와 자료들을 꼼꼼히 읽은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결국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SFB)의 차수막이 파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차수막 밑의 지하수 방사능의 양이 주변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2020년 연말부터 알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내부 고발자와 전달받은 내부문건을 해석하고 고발한 경주환경운동연합과 이를 함께 보도한 언론사와 다양한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은폐될 수도 있었을 ‘사용후핵연료 누출 문제’를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원전 안전 문제의 핵심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잖아요.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문제 자체에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월성1호기 사용후핵연료 누출 문제는 그 구조적인 은폐, 왜곡,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등 모두가 점철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 문제를 캠페인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이 문제로 월성 원전의 안전 문제로 진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을 했죠.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장마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원전 문제를 다루고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인데, 장마리는 이것을 ‘거대한 성벽과 단단한 방패들로 가려진 문제’에 싸우는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원전 문제의 어려움은 그 문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막혀있다는 점도 있지만, 그걸 쉽게 전달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린피스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나의 기준’이 아니라, 이 문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웃음) 이런 어려운 문제를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언론이나 대중에게 이 문제가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잘 진행되었을 때 비로소 이 사회가 저희에게 응답하는 거잖아요. 물론, 저도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고민을 계속 했죠. ‘마치 거대한 성벽같이 만들어진 원전과 관련된 가려진 단단한 방패들로 문제들을, 뭐 하나라도 뚫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본 거죠. ‘가능하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있다면,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월성 캠페인에 대한 가능성을 확신한 순간     

장마리의 말처럼, 은폐와 왜곡 그리고 불투명이라는 성벽과 방패 안에서 만들어진 ‘원전 안전 신화’는 내부고발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아주 조그만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틈에서 장마리는 무엇을 고민하였고, 또 어떤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월성 원전의 방사능 유출 문제를 알리게 되면서,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꼭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와 오랫동안 연대해왔던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김석연 변호사님, 지역에서 전문가 강의를 스무 번 하면서 알게 된 지역의 활동가 선배들, 열성적으로 취재하고 있던 포항 mbc의 장미쁨기자, 게다가 진행하던 과정에서 추가로 공익제보자가 나타난 거죠. 물론 저도 ‘우리의 기대처럼 이 문제가 제대로 알려질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계속해서 이 문제를 함께 알리는 사람을 만나고, 무엇보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은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자신들이 받아온 피해를 직접 증언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정말 중요했죠.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지만, ‘어, 저거 더 알고 싶은데? 피해자분들은 어디가 아팠지?’ 이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그 모든 사람과 그들의 활동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작용했던 것 같아요. 시민들은 ‘어떻게 공익을 추구하고 국민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국가의 기관들이 혹은 준 국가기관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나’하는 분노를 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잘 모르는 시간 동안 갑상선암 피해자들이 생겼고, 누구는 사망했고,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가족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 거죠. ‘나 이 일에 참여하고 싶어, 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의 서명과 후원. 언론이나 방송에 대한 댓글과 공유...’ 많은 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저희를 지지했는데, 저는 거기서 시민들의 반응을 느꼈어요.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방사능 유출 문제’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심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이 길이 맞다.”라는 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장마리는 하나를 더 바라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활동과 참여, 때로는 내부고발로 가능해진 월성 원전 방사능 유출 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식의 결실은 꼭 있어야 한다.”를 힘주어 말했다. 그가 말하는 ‘꼭 내야 하는, 꼭 내고 싶은 결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꼭 성공하고결실을 내고 싶은 간절한 이유     

장마리는 “월성1호기 사용후핵연료 누출 문제로 두 명의 공익제보자가 나타났고, 그중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린 이희택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위촉 연구원이 참여연대에서 시상하는 2022 올해의 공익제보자 상을 받았어요. 이건 정말 공익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며 희생을 감수하고 언론과 대중 앞에 서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하신 거잖아요.”라며 힘든 상황에서도 공익을 위해 제보한 이희택 씨를 손꼽았다. 참여연대는 이희택 씨를 <2022 올해의 공익제보자 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30년 넘게 근무하며 원전의 안전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해 온 이희택 씨는 보고서를 통해 KINS에 월성 원전에서 기준치 이상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사실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의 누수 때문이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월성1호기의 안전성을 높인다며 2012년에 설치한 격납건물여과배기(CFVS) 설비가 수조 바닥을 7곳이나 관통해 차수막이 파손되었다는 사실들을 KINS 내부에 알려왔다. 이후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물이 새고 있음을 촬영한 사진, 영상 등의 증거가 나오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이를 인정했음에도 방사능 누출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2022년 10월, 결국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2022년 10월 22일 뉴스타파 <방사능 줄줄 샌다...어느 원전 전문가의 고백>에서 이희택 박사가 상급자인 A 본부장과 나눈 대화를 공개하였는데, A 본부장은 이희택 박사에게 “선배님이 원하는 것은, 향후에도 그 부분을 잘 확인해서 관리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선배님이 사업자들한테 하고 싶은 조치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내부적으로 잘 고쳐지면 되는거 아닌가 정도로 들렸다.. 그러나 이희택 박사는 “아니요. 나는 국민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용을 오픈해서 국민들이 알게끔 해야 되는 게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단호히 반대한다.


저는 거기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제가 그분이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수년간 홀로 힘써온 이력과 정리한 자료들이 공개됐을 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고독한 여정을 선택하기 위해 거쳤을 여러 고민들을 감히 짚어봤어요. 특히 누출 문제를 같이 진행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굉장히 감사하다. 이분은 자신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계신 거잖아요.’ 나도 그렇게 멈추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사실 이희택 박사님은 공익제보를 한 뒤에도 아직 재직 중인데, 저처럼 환경단체에서 일하면서 제 주변 모두가 ‘이것이 문제야’라고 말해줄 수 있고, 이런 캠페인을 할 때 지지해줄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계신 것이 아니잖아요. 40년 가까이 KINS에서 일해서, 그게 전부일 텐데. 진실을 위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런 제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전의 안전 문제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다. 무엇보다 책임감을 느꼈죠.


장마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이 문제를 더 잘 알리기 위한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이 책임감은 ‘꼭 성공하고 싶은, 꼭 결실을 내고 싶은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나타난 공익제보자들의 활약과 우리를 지지해주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제기한 입장에서 그린피스가 이것을 하지 않았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일종의 기분 좋은 부담감’ 같은. 저로서는 정말 죽을 때까지 못 잊고, 이 일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마지막까지 감사하다는 마음일 거고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진행하는 이 캠페인에 동의하고 함께 싸워줄 분들이 정말 많을 텐데, 전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만나고 싶어요. 그분들이 거기, 그곳에 계시는데, 황분희 어머니처럼 오랜 시간 마을에서 상여시위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활동가, 기자, 변호사들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서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저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료시민’이 있다는 거예요.


동료시민 찾기     

2019년 8월 19일 TBS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에 출연한 장마리. 그에게 “캠페이너란 직업이 어떤 직업이냐?”라고 물었고, 장마리는 “캠페이너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안하고 그를 실제로 이행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동료시민’을 찾고, 그리고 그분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있게 계속 이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실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동료시민에게 우리의 활동들을 알릴 수 있으니까. 그린피스를 포함하여 시민사회에서 일을 한 게 15년 정도 되는데,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 시민단체활동, 사회공익적활동이기 때문에, 우리가 내는 성과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우리가 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훌륭한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저는 굉장히 경계해요. 왜냐하면 계속 진보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야, 우리 힘이 더 강력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되는 것이 의미가 없다기보단, 더 많은 내 편,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을 찾기 위해서, 또 다른 생각을 하는 시민분에게 더 가까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그런 의미에서 결실이 눈에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요. 그 생각의 정점을 이룰 때, 어떻게 이 의미 있는 활동들을 드러나게 하고, 보다 많은 동료시민과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그린피스를 만나게 된 거죠.


캠페이너,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직업과 직함’이지만. 지금까지 장마리가 말하고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렵고 복잡한 기후에너지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모르는 이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쉽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라는 말들이 훨씬 잘 이해되기 시작한다. 장마리는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확대하고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을 늘려나감으로써 힘을 키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는 낯선 하나의 단어를 꺼냈고, 나는 캠페이너 장마리가 강조한 ‘동료 시민’에 대해 다시 물었다.


동료시민을 기다리는 장마리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장마리의 입에서 ‘동료시민’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종이에 큼지막하게 따라 적었고,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동료시민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게 어떤 뜻으로 사용하신 거예요? 사실 너무 생경하고 낯선데, 장마리 캠페이너가 하는 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과 연결되는 단어 같아서요.”


음... 우리가 각자 어느 지점에서 하나의 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론 나와 내 주변이 좋게 변하도록 하는 일을 저마다 하잖아요. 우리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뿐이죠. 그렇지만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들은 나의 동료시민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살아왔어요. 저처럼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저는 모든 동료시민이 활동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딘가에 있을 다양한 시민활동가이자 캠페이너들을 만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제가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분들도 저를 동료시민이라고 불러주면 좋겠고요.


장훈교는 책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에서 박상훈의 말을 빌려,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언어’로 서로를 평등한 시민 구성원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장마리도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활동, 캠페인을 하고 있을 동료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가 하는 캠페인의 결실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만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도 더 가까이,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캠페인(그린피스 제공)


거리감이 가장 중요나의 문제로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     

자연스럽게,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먹거리와 관련이 있기에 보다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반대로 국내 원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다. 우문현답,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에 장마리는 의미 있는 답을 보여주었다.


저는 이게, 거리의 문제인 것 같아요. 공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파악이 있어야 하죠. 근데 제 생각은, ‘알고 모르고, 인지하고 아니고’의 차이라기보다는 나와 이게 얼마나 직접적이냐, 그 거리에 있어서 국내 원전은 여전히 굉장히 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공감과 이해의 차원’으로만 생각하기 전에, 나에게 ‘멀리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어떻게 조금 더 ‘가깝게’ 만들까, 이렇게 접근하면 어떨까요? 사실은 후쿠시마보다 국내 원전 문제가 우리에게 더 가까운 문제잖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의도가 섞여 있는 왜곡된 정보와 사실들이 겹겹이 쌓이고 점철되면서 정말 시민들에게 가까이 닿아 있어야 하는 원전의 안전 문제가 너무 등한시되고 가려져 있는 거죠.’ 그래서 공감과 이해를 구하기보단 한 명의 캠페이너로서, 이 심각한 문제를 그분들에게 얼마나 가깝게 드러낼 것인가, 사실 이게 저의 중요한 역할이고요. 그래서 월성 캠페인을 하면서, 많은 문제를 시민들이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시민들에게 ‘이거 고쳐야 하는 문제네, 잘못된 거네’라고 사안 자체를 우리의 문제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장마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국내 원전 문제를 각각의 이슈로 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두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국내 원전을 단적으로 비교해서, 마치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고 아닌지를 말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에게 가깝게 느끼고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말하면 되는 거잖아요. 후쿠시마 오염수가 지금으로서는 목전에 와있고 굉장히 급한 문제면서도,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원전 사고가 나면 이처럼 오염수가 발생하거나 폐기물이 쌓이는데. ‘이웃나라에서 사고가 나도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구나’, ‘내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구나’라는. 두 번째는 지난 3~4년 동안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때문에 세슘이나 스트론튬,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물질에 대해 시민들이 가장 많이 들었을 거예요. 저는 그것 역시도 국내 원전 안전문제를 알리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는 아직 후쿠시마와 같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차이가 굉장히 크기도 하고요.


방사선 조사 중인 그린피스 캠페이너(그린피스 제공)


후쿠시마에 가다생명의 잔치였던 황금들판이 고요한 죽음으로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현재까지 현지 방사선 준위를 측정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아베, 스가 정부가 “제염은 효과적으로 완료되었고, 방사선 준위가 안전한 수준”이라고 주장한 것에 비해, 그린피스 보고서는 이러한 주장을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제염을 실시한 곳 대부분이 “여전히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그 이유로 후쿠시마 현의 상당부분이 제염이 불가능한 산림지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마리는 2019년 가을에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미나미소마시에 갔다.


저는 그때 후쿠시마에 조사하러 처음 갔어요. 음... 무섭지는 않았어요. 무섭다는 감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알고 싶다, 보고 싶다, 경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우선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앞으로 내가 이 캠페인을 하면서 오염수 방류를 막아야 하는데, 만약 후쿠시마를 가보지 않은 내가, 후쿠시마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냐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할 수 없진 않겠죠. 근데 문제의 실체를 경험하고 직접 내 눈으로 본 것과는 다를 테니까. 지금까지도 그 경험들이 영향을 주고 있고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나 그린피스는 현지에 앵커를 두고 오염상황을 면밀히 보고 현장에서 조사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가지 않을까요.


제염토를 바라보는 그린피스 캠페이너(그린피스 제공)


일주일을 머물렀던 장마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은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위험 앞에서 장마리는 무엇을 느꼈을까.


동료들은 1~2주를 더 보내고 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 일을 알리기 위해 조사하는 동료들과 그곳에서 살았던 주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어요. 그리고 곡식이 익은 너무 아름다운 황금들판이 계속 생각났죠. 개인적으로 추수기에 농촌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다 익은 곡식이 논을 꽉 채우는 논밭을 보면 생명이 살아있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그 쌀을 먹고 또 누군가는 그 벼를 키움으로써, 생명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마치 ‘생명의 잔치’처럼. 후쿠시마에 가을에 갔는데, 아무도 보살피지 못하는데도 벼가 중간에 자라있어요. 근데 그 근처에는 검은색 제염토 봉투들이 있는 거예요, 핵폐기물이 황금들판에 함께 있는 거죠. 제가 항상 마음과 눈에 담아두었던 가장 풍요로운 장면이 지금 이곳에서는 생명을 살아가게 하고, 연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농촌이라는 아름다운 일상이자 노동의 공간이자 살아가는 생명을 이어주는 공간이, 여기서는 ‘죽음의 공간’이고 너무 이질적이니까.


장마리는 조사를 마치고 “황금빛 논을 지나가는데 저와 동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입고, 방사능 측정기를 손에 들고 그곳을 지나갔어요. 노을이 지는데,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요로운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가 ‘고요한 지옥’이다, 물론 후쿠시마 주민들에겐 아픈 상처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지역이 빨리 제염이 되어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면서도, 황폐하고 건물이 다 무너져있는 곳만이 지옥이 아니라, 여기는 정말 고요한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이 같은 모습일 수 있구나. 사실 지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재난이나 황폐한 상황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렇게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옥처럼 비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거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고, 지금도 생생해요.


들판에서 조사 중인 그린피스(그린피스 제공)


제기하지 않았던 핵발전소 안전과 관리에 대해     

후쿠시마 외에도 국내 원전 캠페인을 함께 하는 장마리 캠페이너에게 문재인 전 정권에서 시도했었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물었다.


당시에는, 원전의 안전 문제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고, 원전을 마치 쓰냐 안쓰냐, 한국의 기술이냐 아니냐, 사고가 날 것이냐 안 날 것이냐 등 모두가 탈원전과 친원전으로 나뉘어서 싸우고만 있었잖아요. 근데, 문재인 정권이 탈원전 정책을 성공했어도 우리는 2080년까지 원전과 함께 살아야 하고, 미래세대는 수만 년동안 핵폐기물을 안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그 필요한 논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 요인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원전이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전을 운영함으로써 생겨나는 ‘핵폐기물과 사고가능성, 기후리스크’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관리하고 감독할 것인지, 즉 모든 이슈를 다뤄야 하는데 한 쪽만 다뤄지고 있잖아요. ‘안전하고, 사고가 절대 날 수 없다’는 말만 하면서. 전 그들의 과학도 과학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원전은 안전하다” 그게 끝이에요, 저는 그게 ‘비과학적이고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어떤 구조를 만드는 집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안전한 에너지를 사용하자고 말할 때, 그 요구를 막아버리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 주체는 누구인지예요. 누가, 왜 내가 원전의 안전문제를 알려야하는 시민들을 얼마나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만 주입하고 있는가... 제 입장에서는 그게 더 중요해요.


장마리는 “원전의 안전문제를 더 가깝게, 나의 문제인 것처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우리가 사용후 핵폐기물의 위험이나 사고가능성을 고민할 필요 없이 재생에너지가 가진 장점을 더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이 모든 것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겐 과제로 남은 거죠. 그 사이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이 고착화되고, 지역에서 이격거리나, 재생가능에너지가 정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렸고, 한편에선 원전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들은 ‘돈을 받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타파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마리는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구조와 그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로막는 필요한 논의들을 하나하나 강조했다. 그중에서 ‘돈을 받는 대상’으로 지역주민들을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에도 동의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보통 ‘지역주민들은 돈 때문에, 지원금 때문에 원전을 유치하고 지지한다’라고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장마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안전이 아닌 이권’을 알려준 누군가가 있는 거죠. 그리고 주민들의 모든 자발적인 선택을, 보상이든 반대든 존중받아야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결정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저는 그게 본질적인 문제라고 봐요. 원전을 지으려는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원전이 들어서면 누군가는 걱정하고 그 걱정이 결사반대로 이어질 수 있고. 원전을 짓기 위해선 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다면 원전은 안전하다고 믿게 만들고, 또 원전이 들어오면 이권이 생긴다고 믿게 만들고, 이것이 가장 쉽고 논리적인 방식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원전을 유치하는 주민들이라고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기보다는,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독점된 정보를 통해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정해진 결정을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장마리가 캠페이너가 된 이유

끝으로 장마리는 가끔, 이 일이 힘들 때, 성과나 가야 할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왜 내가 시민단체 캠페이너가 됐을까? 왜 내가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을까”를 묻는다고 말했다. 왜 장마리는 캠페이너가 되고 싶었을까?


아무 객관적인 평가나 이유 없이 저는 시민사회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시민사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죠. 지금도 그래요. 저는 시민들의 힘을 믿어요. 전 세계의 지역과 주민과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만들어내는 좋은 변화, 그 좋은 변화로 이끈 동력 중에는 항상 시민들의 연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시민들의 힘이 변화를 추동했다는 근거와 실제 사례들이 너무 많은 거죠. 저는 그래서 이것을 진리이자 과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입증된 사회과학인 거죠. 저는 가끔 어떤 분이, 국회를 가라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분들도 소임이 있지만, 시민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금이 제가 가장 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 동료시민과 함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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